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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에서 호접난 농장을 하다 새로운 활로 개척을 위해 미국에 정주하게 된 '코러스 오키드'의 황병구 사장.
울산 북구에서 호접난 농장을 하다 새로운 활로 개척을 위해 미국에 정주하게 된 '코러스 오키드'의 황병구 사장. ⓒ 김정숙
90년대 후반 한국 난초 시장의 굴곡이 심해 수지 타산이 맞질 않았고 북구 호접난 농장주들은 "수출밖에 살 길이 없다"고 판단, 지난 2000년 '농소난수출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다. 이것이 전초였다. 황 사장을 비롯한 영농조합 회원들은 곧 농림부 등 각계에서의 자료 수집을 통해 미국 시장이 가장 안정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대미 수출 사업을 본격 추진하게 된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참 '무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어딜 가든지 사람 사는 곳이면 상식이 통하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왔거든요. 목표와 자신감만 있으면 다 될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와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어렵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황 사장은 울산에서 20년 넘게 화훼사업에만 매달려온 본인 말대로 하자면 "화초와 흙밖에 모르는 무지렁이"다. 다 못한 얘기는 이메일로 나누자는 말에 "이메일도 써 본 적이 없다. 영어는 더더욱 모른다. 그런 내가 미국까지 왔으니 처음 왔을 때 겪은 일들은 구구절절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그런 황 사장이 이제는 코러스의 기초공사를 다졌다고 자부할 만큼 미국에서의 호접난 재배를 안정적으로 뿌리내렸다. 미국 시장에서 지난 2004년 70만 달러 판매에 이어 지난해는 100만 달러, 올해는 120만 달러까지 판매액을 끌어 올리고 있다.

현재 6000여 평의 땅에 3000여 평 규모의 그린하우스가 있는 '코러스 오키드'에 내년까지 3000여 평의 그린하우스를 더 확충하면 200만 달러까지도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머지않아 북구의 호접난이 미국 곳곳에서 꽃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황 사장. 미국 정착 초기에 겪었던 숱한 어려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같은 확신도 가능한 것이리라.
"머지않아 북구의 호접난이 미국 곳곳에서 꽃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황 사장. 미국 정착 초기에 겪었던 숱한 어려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같은 확신도 가능한 것이리라. ⓒ 김정숙
처음부터 황 사장이 미국에 정주할 것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2001년에 '코러스 오키드'라는 이름으로 현지 법인을 설립했을 때는 울산 북구 '농소난수출 영농조합법인' 회원들이 한달에 한 번씩 윤번제로 아팝카시에 머물렀다.

그러나 호접난도 '사람과 교감해야만 잘 크는 식물'이기에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재배를 하자 적응을 못해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더란다. 부푼 꿈을 안고 미국땅까지 왔건만 정작 난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기에 '농소난수출 영농조합법인' 대표였던 황 사장이 '총대'를 멨다.

2002년 7월 황 사장이 상주해 '코러스 오키드'를 맡았고 2003년부터 현재 공동대표가 된 이진화 사장이 합류했다. 상주 이후에도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한국에서의 하던 기술대로 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미국 자체의 자연 환경을 생각하지 못하고 재배하다 꽃들이 시들어 버린 일도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너무 밝은 조명 아래 두거나 운송 중에 시달린 난의 뿌리들을 제대로 복원하지 못해 상했던 일도 부지기수다.

또 현지에 더 좋은 비료나 농약도 많은데 영어를 모르니 쓰임새도 당연히 몰라서 난들에게 더 나은 처방과 치료를 못해 주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한국에서 너무 자란 호접난을 들여와 현지에서는 팔지도 못하고 흐드러지게 핀 난들을 그저 속수무책 지켜봐야 했던 일 등 그 사연들은 열거하지 못할 만큼 많다.

'코러스 오키드' 농장을 방문한 울산 북구청 일행에게 호접난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황 사장.
'코러스 오키드' 농장을 방문한 울산 북구청 일행에게 호접난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황 사장. ⓒ 김정숙
그런 어려움을 뒤로 하고 이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은 무엇보다 황 사장의 열정과 부지런함이 큰 몫을 했을테지만 그 공을 두루두루 돌린다.

"회원들이 단합해서 한마음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간 게 큰 힘이 됐습니다. 무엇보다 북구 농소농협에서 과감하게 투자하지 않았다면 처음에 시작도 못했을 겁니다. 사람 하나 믿고 선뜻 나서주신 거지요. 그리고 북구청에서 행정적인 뒷받침을 많이 해줬구요. 국내에서 이렇게 든든한 '백 그라운드'가 있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또 김성엽 전 애틀란타 총영사가 미국 전역의 호접난 자료를 구해 주고, 미국 내 중요한 요직에 있는 인사들에게 직접 난을 선물해 홍보를 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현지 교민들도 코러스 농장이 안착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같은 각계의 노력이 결합돼 'KOREA+U.S.A'의 합성어인 '코러스(KORUS)'가 그야말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노래로 태어난 'Chorus(코러스·합창)'로 거듭난 것이다.

그런 덕분에 처음에는 꽃박람회에 가도 '황색인'들이 만든 꽃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최고로 아름답게 핀' 호접난을 터무니없이 싼 값에 사가겠다고 무시하기 일쑤였던 미국 도매상들이 이제는 자기들이 먼저 찾게 됐다고 한다.

황병구 사장과 현지의 이진화 사장이 공동대표가 돼 꾸려가고 있는 '코러스 오키드' 농장 내부 모습.
황병구 사장과 현지의 이진화 사장이 공동대표가 돼 꾸려가고 있는 '코러스 오키드' 농장 내부 모습. ⓒ 김정숙
"앞으로 시설 투자 등을 통해 코러스 인근이 미국 내 호접난 생산의 최대 주산지가 될 거라 확신합니다. 북구 농소 호접난 향기가 미국 곳곳을 채울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황 사장은 그 확신과 함께 '눈물'을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청춘을 바친' 울산 북구의 농장을 뒤로 하고 미국 땅에 와서 어려움과 장벽이 생각보다 너무 커 "이건 안되는 일인가 보다"하고 낙담하며 8개월째 되던 때, 딱 한번 흘렸던 그 눈물. 그 눈물이 상처 속 단단한 진주가 되는 것처럼 험난한 길을 걸어온 황 사장의 호접난도 미국 최고의 '진주'가 될 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울산 북구 웹진 <희망북구>(www.hopebukgu.ulsan.kr)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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