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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창원 중심 상업 지역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실과 편의점 형태의 마트를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토요일인 지난 19일 저는 전남 광주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전 10시 40분에 함께 동행할 일행들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사정으로 며칠 전부터 남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오전 10시부터 가게를 봐 달라고요.

평소 저에게 특별한 볼 일이 없는 경우에는 오전부터 오후 2시까지 저 혼자서 가게를 맡고, 오후에는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나 3시까지 남편 혼자서 가게를 맡습니다.

토요일인 어제도 새벽 2시 30분까지 마트를 보느라 피곤했을 남편이 저의 부탁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먼저 가게로 나섰습니다. 저 또한 남편보다 10분 정도 늦게 집을 나와 가게에 들렀습니다. 제가 가게 앞에 차를 주차하고 있을 때 남편이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통화 내용을 듣자니 금전등록기를 판매하는 사장님에게 새 금전등록기를 주문하는 전화였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금전등록기를 주문하는 까닭이 궁금해서 카운터를 바라보니, 세상에나 카운터 위가 휑하니 텅 비어 있었습니다.

▲ 금전등록기가 사라진 텅 빈 계산대
ⓒ 한명라
세상에 이런 일이... 저희 마트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금전등록기 전선이 칼로 절단이 되어 있었고, 출입문 잠금 장치 두 곳이 고장이 나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교묘한 방법으로 잠금장치를 열었는지 남편과 저는 황당한 상황에서도 감탄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그래도 그 절도범은 금전등록기 하나만 달랑 들고 가 버렸고, 다른 피해는 없었습니다.

▲ 잘려진 금전등록기 전선
ⓒ 한명라
남편은 저에게 예정대로 광주에 다녀 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수선한 상황에 설령 광주에 간다고 해도 제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출발해도 약속 시간 내에 충분히 일행들과 만날 수 있었지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우리 가게에 피치못한 일이 생겨서 함께 동행하지 못하겠다고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금전등록기에는 모든 상품의 가격이 입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굳이 상품 가격을 외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금전등록기가 없는 그때 손님이 온다 해도 상품 가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영업을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거래명세서에서 제품 가격을 확인하고 불러주면 저는 상품에 일일이 가격 표시를 했습니다.

또 10여만 원 안팎의 동전과 현금도 금전등록기와 함께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거스름 돈으로 써야 할 동전도 서둘러서 확보를 했습니다.

▲ 금전등록기가 있던 자리에 임시변통으로 동전통과 전자계산기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 한명라
남편과 함께 상품에 가격표시 작업을 하던 중, 불현듯 저의 머리속에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 생각은 지난 1년 전 135만 원에 구입한 금전등록기가 아까워서도 아니었고, 출입문에 다시 보안장치를 해야 하는 경비가 아까워서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경찰서에 신고를 함으로써 경찰서에서도 똑같은 사건이 재발되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나름대로 신경을 써 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12에 신고 전화를 한 지 10여 분이 지나서 두 분의 경찰관이 저희 마트에 도착했습니다. 담당 경찰관은 저희 부부에게 사건 현장을 발견하자마자 곧 바로 신고를 하지 그랬느냐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피해 상황과 처음 현장을 발견한 시간들을 질문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서에 나와 달라고 했습니다. 참고인 조사 작성과 여러가지 서류도 작성해야 하고 제가 서명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으로 낯선 경찰서를 찾아가서 경험하지 않아도 될 절차를 밟고 왔습니다.

▲ 새로 장만한 금전등록기입니다. 지금은 낯선 이 금전등록기에 익숙해질 때면 놀란 가슴도 가라앉겠죠?
ⓒ 한명라
경찰서에 다녀 와서도 오후 5시까지 남편과 저는 가격 표시 붙이는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가까스로 그런 작업이 끝나고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새롭게 잠금장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밤 11시가 되어 새 금전등록기가 저희 가게로 배달되었습니다.

또 다시 저희 부부와 금전등록기를 판매하신 사장님은 오늘 새벽 3시 30분까지 금전등록기에 상품 가격을 입력하는 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1년여 동안 저의 손에 익숙했던 예전 금전등록기와는 다르게 새 금전등록기가 여간 낯선게 아닙니다. 아마도 새 금전등록기가 제 손에 익숙해 질 때쯤이면, 절도사건에 의해서 놀란 제 가슴도 진정이 될까요?

금전등록기에 상품 가격을 입력하던 일을 웬만큼 마치고, 저희 부부와 금전등록기 판매점 사장님은 조개구이집에 들러 소주 한잔씩을 기울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남편은 그래도 이정도여서 다행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록 새 금전등록기를 구입하고 보안장치를 새로 하느라 적지 않은 돈이 들었지만, 금전등록기 하나만 달랑 들고 간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고 합니다.

남편의 그 이야기에 사장님은 남편의 전화를 받고서 처음 우리 가게에 달려 왔을 때,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두 부부가 웃고 있기에 사장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에 화를 내봤자 달라질 일이 있느냐고,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남편과 저는 스스로를 위로 했습니다.

그런 황당한 일을 겪으면서 행여 우리가 살아오면서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는 남편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어제 새벽에 우리 가게에 다녀 간 그런 손님은 정말 반갑지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 가게든, 다른 분의 가게든 그런 손님은 절대 찾아오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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