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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둥 하나만 달랑 남은 아르테미스 신전
ⓒ 김정은
버려진 도시에서 로마시대 보물로 재탄생

이즈미르로부터 74km 거리에 위치한 고대도시 에페소는 지금은 바다와 떨어져 있지만 바울이 활동하던 4세기 당시 소아시아 서부지역의 수도이자 상업과 교역의 중심으로 번영을 누린 항구도시였다.

그러던 이 곳은 AD 6세기경 멘데레스 하구의 흙이 유입되어 늪지대가 되자 들끓는 모기떼로 인해 말라리아가 창궐하게 되면서, 이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주민들의 셀주크 이동으로 버려졌고, 급기야 AD 17년 대지진으로 과거의 영광을 고스란히 흙에 묻은 채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묻혀졌던 폼페이의 경우처럼 이 곳 또한 인간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다는 것이 지금에 와서 얼마나 축복(?)이었는가를 새삼 느낄 만큼, 에페소야말로 구석구석 로마시대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유적지라는 것을 직접 목격하다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해서 오래 살게 되면 그들은 생활의 불편함을 이유로 기존에 있던 것들을 좀더 편하고 새롭게 바꾸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 와중에서 옛 흔적은 점점 사라져가기 마련이다. 게다가 전쟁으로 인한 파괴가 심했다면 더욱 더 옛 흔적은 사라진다. 상전벽해가 되어버린, 19세기의 서울과 현재의 서울처럼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적지 보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으로 모든 개발을 제한하게 되면 이 때문에 야기되는 삶의 질 저하에 관한 주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개발제한에 관한 대표적인 곳으로 신라의 고도 경주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지역경제를 살려야 하다는 명분으로 고속전철 정류장 건설 지지에서부터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 찬성에 이르기까지의 경주시민들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과연 어떤 것이 합리적인 해결이 될 수 있을지 난감해진다. 유적지 보존도 물론 중요하고 주민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린벨트식으로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행정편의적인 보존논리는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에페소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축복받은 유적지임에 틀림없다.

로마신화와 기독교의 절묘한 결합

▲ 에페소 시민들이 숭배했던 아르테미스 여신상
ⓒ 김정은
현재 내 눈 앞에 구현된 에페소는 BC 3세기와 AD 6세기 사이 로마시대의 것이다.

에페소 유적의 가장 특이한 것이라면 사도 요한과 성모마리아의 자취로 대변되는 그리스도교의 흔적과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로 대변되는 로마 신화의 흔적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는 사도 요한과 성모 마리아의 자취, 요한 계시록, 누가의 무덤과 사도 바울의 포교활동으로 인해 AD 4세기경 에페소는 소아시아에서 그리스도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431년 이곳에서는 예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신학적 지위에 대한 분쟁의 종지부를 찍고 성모로서의 지위를 재확인한 에페소 종교회의(Council of Ephesus)가 열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구분하였던 네스토리아파가 파문을 당했던, 기독교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 누가의 묘를 설명하는 한글간판 이 정겹다.
ⓒ 김정은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에페소 들어가기 전 초입부터 한국 사람들을 반겨주는 생뚱맞기까지 한 '누가의 묘'라는 한글 간판의 용도가 이곳으로 성지순례를 오는 수없이 많은 한국인 크리스챤 때문이라는 것을….

그러나 크리스챤이 아닌 나의 눈에 보이는 에페소는 솔직히 기독교의 흔적보다는 그네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로마신화의 신을 끌어들인 로마시대 보통 사람들의 자취가 더 흥미롭다.

시민들의 삶에 밀착된 각양각색의 로마신

가장 먼저 내 시선을 끈 것은 바로 이곳 에페소에서 주신으로 숭배했다는 아르테미스 여신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타나는 아르테미스 여신은 제우스와 레토의 딸로, 아폴론과는 쌍둥이 남매간이다. 산과 들에서 사슴을 쫓는 활의 명수이며, 자신의 나체를 보았다는 이유로 멀쩡한 인간을 사슴으로 변하게 한 악타이온 신화나 자신을 범하려 한 오리온을 철저히 징벌한 오리온 신화에서 보듯 처녀의 수호신으로서, 순결 정절의 상징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곳 에페소에서 본 여신의 모습은 그리스 신화에서의 모습과 사뭇 다른 유방이 24개씩이나 달린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 승리의 여신 니케
ⓒ 김정은
자세한 이유는 알 길이 없으나 나름대로 추측해본다면 로마시대로 들어오면서 태양의 신 아폴론과 대비한 달의 여신으로 숭배된 아르테미스 여신이 소아시아인 이곳 에페소에 와서는 대지를 주관하는 모신(母神)으로서 인지되었으리라고 본다. 이로 인해 동식물의 다산과 번영을 주관하며 출산과 어린이의 발육을 수호하는 신으로 알려져 가슴에 무수한 유방을 가진 모습으로 숭배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아르테미스 여신에 대한 에페소 사람들의 숭배는 거의 광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실제 사도 바울이 에페소에서 기독교 포교를 하다보니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은으로 만들어 팔던 은세공업자의 생계는 당연히 타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은세공업자와 그의 추종자가 아르테미스 여신을 연호하며 대극장에서 포교 중인 사도 바울과 제자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곳 사람들의 열렬한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 흔적은 지금은 기둥 하나 덜렁 남겨진 채이지만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

▲ 헤라클레스상
ⓒ 김정은
첫번째 아르테미스 신전은 BC 6C 경 총 127개의 기둥에 높이가 19m인, 이오니아 방식으로 120년 걸려서 지은 거대한 사원이었는데 BC 356년 한 정신병자가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사원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그 후 불타 버린 신전의 재건을 위한 에페소 시민들의 정성은 극진했다. 여인들은 보석 등을 팔아 건립자금에 보탰고, 왕들은 기둥 하나씩을 기증할 정도였는데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파르테논보다 2배 정도 더 크고 아름다운 아르테미스 신전을 건립하는 일이었다.

특히 아시아 원정길에 올랐던 알렉산더 대왕이 한창 완성 단계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만일 에페소인이 이 신전을 나의 이름으로 세워준다면 모든 비용을 내가 내겠다"고 제의했으나 에페소 시민들은 이를 단번에 거절했을 만큼 자긍심이 배어 있는 건물이었으니 세계 7대 불가사의로서 손색없다고 할밖에….

드디어 이들의 자긍심과 노력이 모여 BC 4세기경 127개의 대리석기둥이 아름다운 아르테미스 신전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신전 또한 AD 5C에 기독교가 공인되고 나서 승리를 자축하는 군중들에 의해 파괴되고 지금은 127개의 기둥 중 단 하나만이 그 자리를 지킨 채 세계 7대 불가사의란 과거의 영광만을 씁쓸히 기억하게 하고 있다.

▲ 하두리아누스 황제의 신전에 새겨진 행운의 여신 티케
ⓒ 김정은
이밖에도 에페소에서는 유적 구석구석에서 아르테미스 여신 말고도 로마신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신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를 보면 당시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어떻게 민중들의 생활 속에 친근하게 어우러졌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조각은 폐허가 돼 옛 흔적만 남은 도미티안 사원 터에 앞뒤가 부러진 채 전시되어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조각이었다.

실체는 훼손되어 조각만 남았지만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날개를 타고 흐르는 부드러운 옷자락이 금방이라도 펄럭거릴 것 같다.

그뿐인가? 제우스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 헤라클레스가 지금 막 암피트리온의 소를 습격한 키타이론산에 사는 사자를 퇴치하고 사자머리를 자랑스럽게 한 손에 든 영웅의 모습으로 양 기둥에 새겨진 채 수호자의 의미로 위풍당당하게 대리석 도로를 내려다보고 있다. 사자머리에서 금방이라도 피가 흐를 것 같은 생동감 있는 모습이다.

조각의 정교함과 섬세함을 만끽하려면 하두리아누스 황제의 신전에 새겨진 각종 조각들이 제격이다. 특히 이스탄불의 지하물저장소 물 속에 갇힌 메두사는 이곳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신전 정중앙에 보다 더 매혹적인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행운의 여신 티케가 그녀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운을 가져줄 것 같은 정교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다양한 사연들을 간직한 로마신들이 새겨진 조각들을 보며 신들과 함께 어울린 당시 에페소 시민들에게 있어서 신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유일신을 강조하는 신흥 외래 종교 기독교의 무서운 성장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그들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혹 우리네 도깨비나 칠성당의 칠성과 같은 외래종교에 맞선 최후보루는 아니었을까?

화도 잘 내고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도 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로마 신의 생존을 위한 변신의 흔적을 목격하면서 나도 모르게 변화하는 문명의 물줄기 안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터키 7박 8일 여행기 15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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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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