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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현역 김희라(59)씨
여전한 현역 김희라(59)씨 ⓒ 이동환
박노식, 허장강, 장혁 같은 분들은 이미 고인이 됐다. 내 소년기 추억 속 한 구석을 차지했던 배우 김희라. 그가 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70년대에 소년이었던 나는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김희라씨 역시 세월의 뒤안길에서 원로배우가 되었다. 그 사실이 새삼스레 추억 한 자락에 불을 지핀 까닭이다. 지난 11월 15일. 서초동 자택으로 그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그래서 조금 들떠 있었다.

- 선생님. 요즘 건강은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지셨다고 하던데요.
"날씨가 추워지니까 좀 그래. 차 많이 마시면서 조심하고 있어."

1947년생인 김희라씨는 1969년 임권택 감독 작품 <비 나리는 고모령>으로 데뷔해 현재까지 1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1970년에는 <동춘>으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1975년에 파나마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1976년에는 <마지막 포옹>으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최우수남우상을 수상했다. 80년대 후반에는 KBS 2TV 주간 연속물이었던 <손자병법>에 '장비'로 출연, 큰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

선이 굵은 연기와 포효하는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 호탕한 웃음과 큰 동작으로 한 시대를 쥐고 흔들었던 그에게 시련은 90년대와 함께 찾아왔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뒤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부인과도 별거하고 만다. 이후 고혈압과 당뇨에 시달리던 그는 뇌경색으로 거의 폐인에 가까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3년 전, 12년 가까이 떨어져 살았던 부인과 화해하며 가족과 재결합한 그는 부인의 헌신과 보살핌 그리고 자식들의 응원 덕분에 재기의 의지를 불사르고 있다. 지난 봄 학기부터 전북과학대학교에서 '영화연기론'을 강의하며 후학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된 것도, 지난 10월 23일에 촬영을 시작한 영화 <사생결단>에 출연하게 된 것도 모두 가족의 응원 덕분이라고 말하는 김희라씨. 영화 출연은 1998년 <찜> 이후 7년만이다.

- 선생님 젊으셨을 때와 비교해 요즘 젊은 배우들은 어떤 점이 다르죠?
"공부들을 잘 안 하는 것 같아. 우리 젊을 때는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지경까지 연구하고 공부했거든. 그리고 예의도 좀 부족한 것 같고. 하기야 요즘 시대가 그러니까 뭐라 할 말 없지만 좀 그래. 물론 모두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허허!"

내년 4월 개봉할 영화 <사생결단> 예정 포스터. 이 영화에서 김희라씨는 류승범(상도 역)씨 삼촌으로 나온다. 혈기만 믿는 젊음을 바라보는 안타까움과 뒷골목 인생의 애환을 연기한다고.
내년 4월 개봉할 영화 <사생결단> 예정 포스터. 이 영화에서 김희라씨는 류승범(상도 역)씨 삼촌으로 나온다. 혈기만 믿는 젊음을 바라보는 안타까움과 뒷골목 인생의 애환을 연기한다고. ⓒ MK 픽처스
내년 4월 개봉 예정인 <사생결단>은 1998년 부산 뒷골목을 배경으로 마약판매상과 형사의 생존 싸움을 그린 영화다. 김희라씨는 마약판매상 상도(류승범 분)의 삼촌으로 나온다. 자신이 살아온 밑바닥 인생을 조카만큼은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인물이란다.

"젊었을 때 맞는 역할은 좀체 안 해 봤거든?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조카와 다투다가 맞는 장면이 나와. 예전 같으면 어림없지(웃음)."

3대가 연예계에 몸을 담다

그의 선친은 5·60년대를 풍미했던 명배우 김승호(68년 작고) 선생이다. 흑백화면 속에 꽉 찬 넉넉함으로 그 시대 아버지 상을 그려냈던 영화 <마부>와 <박서방>은 가히 김승호 선생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장면마다 넘쳐나던, 쓸쓸하면서도 인생을 달관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웃음은 아직까지 내 기억 속에 뚜렷하다.

김희라씨는 누가 봐도 외모는 물론 선친의 정열과 혼까지 그대로 이어받았다. 1남 1녀를 둔 김희라씨는 아들이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될 줄 몰랐다고 한다. 자식 둘을 다 미국에서 공부시켰는데 아들이 품고 있는 뜻이 가수라는 사실을 귀국한 뒤에야 알았다고. 한국에서 활동하려거든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군대부터 다녀오라고 아들을 설득해 만기제대를 시킨 뒤 가수활동을 인정했단다.

"한국 남자가 군대 가는 거 당연하지. 내 아들이 귀하면 남의 아들도 귀한 법이야. 내 아들은 이리저리 빼고 남의 아들이 지켜주는 나라에서 산다? 나는 그렇게 못해!"

부인, 아들과 함께. 아들 김기주씨는 내년 1월에 2집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부인, 아들과 함께. 아들 김기주씨는 내년 1월에 2집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 이동환
그의 아들 김기주씨는 지난 2001년에 1집을 발표하며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1집에 수록한 12곡 가운데 <다시 시작해> <남자의 이름으로> <두 번의 이별> 같은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금 한창 2집 녹음 중인데 내년 1월이면 새 앨범이 나온다고 한다.

"다시 연기를 시작하는 아버지께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가족 모두 아버지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운동도 더 열심히 하시면 좋겠고요."

"물어보나마나 아내가 고맙지"

대학교에 출강할 때나 촬영지에 갈 때 운전뿐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챙겨주는 부인이 고맙지 않으시냐고 묻자 김희라씨는 씩 웃는다. 부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그때서야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어보나마나 고맙지. 항상 생각해"한다. "원래 조곤조곤 속마음 표현하는 편이 아니시지요?"하자 부엌 쪽에서 찻잔을 들고 오던 부인이 살며시 웃는다.

국회의원 낙선과 사업실패, 연이어 찾아온 병마로 그가 주춤거릴 때 영화계 일각에서는 거의 폐인 취급을 했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를 비웃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말이다. 그렇게 일어설 수 있던 바탕에 그의 가족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족이 가족을 지켜주는 사랑!

김희라씨는 부인이 정성껏 끓여주는 허브차와 녹차를 즐겨 마신다고. 사진은 집에서 항상 옆에 두고 있는 찻그릇들. 따뜻한 찻물 한잔한잔 부인의 애틋한 마음이 녹아 있다.
김희라씨는 부인이 정성껏 끓여주는 허브차와 녹차를 즐겨 마신다고. 사진은 집에서 항상 옆에 두고 있는 찻그릇들. 따뜻한 찻물 한잔한잔 부인의 애틋한 마음이 녹아 있다. ⓒ 이동환
내 소년기 추억 속에 멋진 사나이로 각인되어 있는 배우 김희라. 그는 행복한 사나이다. 여러 차례 좌절을 겪었지만 여전히 최고 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며 어엿한 현역 배우다. 그의 아들 바람대로 더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을 다져 내년에는 그의 선친처럼 이 시대 아버지 상을 연기하며 여러 영화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내 바람을 얘기하자 김희라씨는 그저 씩 웃는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빛을 보니 여전히 70년대 그 눈빛, 그 카리스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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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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