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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을 지나 소설(小雪)을 목전에 둔 늦가을의 끝자락. 요즘 거리를 걷다보면 노랑색 붉은색 형형색색의 눈꽃을 볼 수 있다. 단풍나무에 열려 있던 울긋불긋한 잎사귀가 매섭게 몰아치는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며, 마치 첫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풍경을 미리 선사하는 듯한 감동을 주고 있다.
어제(13일) 오후 막바지로 치닫는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공원을 찾았다. 애초에는 일산에 있는 호수공원을 향해 집을 나섰지만 너무 늦은 시각 탓에 할 수 없이 이곳을 택하게 된 것이다.
'꿩 대신 닭'이라 했던가. 그런데 웬걸 '닭 대신 꿩', 아니 꿩 먹고 알까지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척에 있어 왕복 40분이면 충분한 거리에 조그마하지만 예쁜 잉어가 노니는 연못은 물론, 빨갛게 혹은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단풍나무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공원은 마지막 단풍놀이를 즐기기 위한 시민들과 인라인스케이트와 자전거 등 운동으로 추위를 이기려는 젊은이들로 흥겨운 분위기였다. 전날 비가 내린 후 확연히 떨어진 기온에도 불구하고 얼마 남지 않은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듯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뭐 하느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바빠서, 아니 바쁘다는 핑계로 단풍구경 한번 제대로 못한 한을 여기서라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저기 부산하게 발걸음을 옮겨가며 마지막까지 단풍나무에 매달려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잎사귀를 감상해 본다.
어느새 나무 밑에는 그 명을 다한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읽었던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며'의 문구가 아련하게 머릿속을 맴돈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엣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자욱해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猛烈)한 생활의 의욕(意慾)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 이효석 '낙엽을 태우며' 중에서 -
이 수필의 저자처럼 낙엽 태우는 냄새에서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낄 수 있을진 몰라도, 나무 아래 쌓인 낙엽을 보면 허무하게 스러져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단면을 엿보는 것 같아 왠지 쓸쓸해진다. 그럴수록 더욱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야 하리라.
공원 한 편에선 '전국 대학생 아마추어 천문회'에서 학생들이 나와, 일반인들은 평소 구경하기조차 힘든 고가의 천체망원경을 전시해 놓고 체험의 장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지나던 사람들은 신기함을 감추지 못한 채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미처 알지 못했던 우주의 신비를 느끼면서 즐거워한다.
요즘에는 워낙 짧아진 낮의 길이 때문에 오후 네시 반 정도만 돼도 어둑어둑해지며, 저 멀리 서쪽하늘엔 낙조의 기운이 슬그머니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 다섯 시가 되니 뉘엿뉘엿 지는 노을빛이 붉게 물들며 빨간 단풍잎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쌀쌀해지는 기온을 감당하지 못해 서둘러 차를 타고 여의도를 빠져 나온다. 얼마 전까지도 시원하게 보이던 한강물이 차갑게만 느껴진다. 아침 체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가운데 방한 코트와 오리털 점퍼를 입고 종종걸음으로 출근길을 재촉하는 이들을 보며, 며칠 후면 스러져 갈 나름대로 계절의 여왕인 가을을 아쉬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