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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신데렐라 그림책과 인형입니다.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신데렐라 그림책과 인형입니다. ⓒ 이효연
딸아이가 요즘 부쩍 동화에 관심을 많이 갖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전에도 동화를 읽어줘야 잠이 들고 그 중에서도 신데렐라 이야기를 가장 흥미있어 해 책도, 장난감도 신데렐라만 고집합니다.

호박이 마차로 변하는 장면에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신기해 하고 괘종시계가 열 두 번 '댕, 댕' 울릴 적에는 저도 큰 소리로 '댕, 댕' 외치며 신나합니다. 마침내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 극적으로 왕자님과 결혼하는 대목에서는 마치 제 일인양 짝짝 박수를 치면서 좋아합니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받던 신데렐라가 어느날 요술할머니의 도움으로 무도회에 가게 되고 잃어버린 유리구두를 찾아 왕자님과 결혼을 한다는 스토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요. 하지만, 얼마 전 제가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연사로 나왔던 동화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기존의 동화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아이에게 전해주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하자면, 기존의 이야기는 일방적으로 신데렐라의 입장에서만 씌여진 것으로서 계모나 언니들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정관념을 깨고 조금 다른 시각에서 동화를 읽다보면 왜 그들이 신데렐라를 미워하고 질투할 수밖에 없었는지, 신데렐라에게 부족한 부분은 없었는지 등에 대한 부분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고 그러다보면 아이들의 사고와 이해의 폭도 훨씬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설공주나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 등 다른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를 읽고 계모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갖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고 선녀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옷을 도둑질까지 했던 나뭇군의 태도도 결코 옳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알려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싶어서 익히 널리 알려진 명작동화를 읽여줄 때면 나름대로 약간의 스토리 각색을 하면서 그 동화작가가 알려준 대로 '교육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 매일 저녁 적지 않은 애를 써 왔지요. 그러다보니 아이도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고 수백 번 읽어 익히 내용을 알고 있는 동화지만, 때로는 어른인 저도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무척 만족하고 있는 중입니다.

좀 어려운 것은 자꾸만 이야기가 곁길로 새는 것입니다. 아직 딸아이가 너무 어려서 논리적으로 동화를 이해하는 힘이 부족한 데다가 호기심은 또 엄청나게 많아서 끊임없이 엉뚱한 질문에 답하다보니, 이상한 이야기까지 끌어다 붙이곤 하니까요.

가령 '신데렐라는 무도회에 못 가고 감자를 깎고 있었대요'라고 얘기해주면 대뜸 '그럼 신데렐라 오빠도 무도회에 갔어?'라고 묻는다든지, '백설공주는 왕자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끝을 맺으면 '그럼 아빠도 왕자님과 결혼해?'라고 물어 저를 난감하게 만드는 겁니다.

신데렐라 이야기에는 신데렐라의 오빠 두 명이 등장해야 하고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할 때면 멍멍이를 비롯한 아이가 아는 모든 동물들이 함께 나와 뛰어줘야 하며 호랑이에게 쫓기던 떡장수 할머니는 도라에몽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것이 아이가 좋아하는 스토리입니다. 신데렐라의 원작자 페로가 알면 맘대로 신데렐라의 족보를 바꾸었다고 기함하고 주저앉을 일이지요.

동전보다 작은 신데렐라 구두를 신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를 보며 얼마나 난감했던지요.
동전보다 작은 신데렐라 구두를 신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를 보며 얼마나 난감했던지요. ⓒ 이효연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아이의 주문에 따르자니 가뜩이나 굳어버린 머리를 돌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부지런한 엄마들은 창작동화까지 만들어서 들려준다고 하는데 '이 정도야 못하랴'란 생각으로, 또 때로는 기막힌 상상력을 펼쳐내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해 '헉헉' 대며 아이의 이야기를 좇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네요.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꾸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오늘은 신데렐라 인형이 신고 있는 구두를 벗기더니 그걸 신겠다고 낑낑대지 뭡니까? 동전보다 작은 그 구두가 아이 발에 들어갈 리는 만무하고, 아이는 구두가 발에 안 들어간다고 울고 불고 하더니 조금 전에 잠이 들었습니다. 아직 동화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딸 아이의 어리숙함이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잠든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볼에 입을 맞추면서 속삭여주었습니다.

'안나야, 이담에 커서 어른이 되어도 동화같은 예쁘고 맑은 마음은 잃어버리지 말렴.'

덧붙이는 글 | 때로 피곤한 날이면 이 '동화만들기 작업'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먼 훗날 아이가 커서 지금을 돌이켰을 때 엄마와 함께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만들던 추억에 흐뭇해 할 것 같아 매일 밤 씨름을 하게 됩니다. 내일은 또 어떤 엉뚱한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궁금하네요.^^

이 글은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이야기(http://blog.empas.com/happymc)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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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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