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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는 강조하고 '독재자'는 빼고...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6월 11일 새벽(한국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한미정상회담을 벌인 뒤 북핵문제 등에 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Mr'는 강조하고 '독재자'는 빼고...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6월 11일 새벽(한국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한미정상회담을 벌인 뒤 북핵문제 등에 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 1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제4차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서 다시 한번 '미스터 김정일'(Mr. Kim Jong Il) 발언을 이끌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부시 대통령은 이에 앞선 지난 5월 기자회견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미스터'라는 호칭을 처음 쓴 바 있다.

그러나 당시 한·미 정상회담을 수행한 복수의 당국자들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부탁에 '언론 플레이'용으로 마지못해 '미스터'라는 호칭을 사용했을 뿐, 정상회담에서 북한인권문제를 거론하며 네번이나 김정일 위원장을 '독재자'(dictator)라고 표현하는 등 근본적인 불신감을 피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한국 정부는 당시 이와 같은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와 반기문 외교부장관은 당시 언론 브리핑 때에 부시 대통령의 'Mr. 김정일' 발언만 소개하고 '독재자'(dictator) 발언은 숨겼다.

따라서 최근 제5차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나온 부시 대통령의 '폭군'(tyrant) 발언은 '실수'가 아니라 그의 '본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부시 대통령은 6일 브라질 차세대 지도자들과의 대화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겨냥해 '폭군'이라고 표현했다.

청와대, 'Mr. 김정일' 발언만 소개하고 '독재자'(dictator) 발언은 숨겨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복수의 정부 당국자 발언을 종합하면, 노 대통령은 6월 10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 "지금은 협상의 조건에 대해 얘기하는 것보다는 지난번(5월 기자회견)의 'Mr. 김정일'이라는 표현 같은 것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먼저 부시 대통령에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그 점은 그가 얼마나 절박한 지를 보여주는 것"(That just shows how desperate he is)이라고 답해 사실상 김정일 위원장에게 비웃음을 던졌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이런 정도로 합의한 것으로 하고, 나중에 김정일에 대해 'Mr'라는 표현 사용을 부탁드린다"고 다시 한번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웃으면서 "만일 그것(미스터 호칭)이 돌파구를 마련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마지못해 들어준 것으로 밝혀졌다.

부시는 이어 "그러나 그것은 그가 얼마나 속 좁은 지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다"(But, it just shows how flimsy he is)고 말해 호칭의 변화와 상관없이 자신의 '본심'은 조금도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오전에 가진 1차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며,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두번이나 김정일 위원장을 독재자라고 표현했다.

"전쟁 얘기는 순전히 프로파간다(선전)의 결과이다. 그(김정일)는 프로파간다에 능하고, 그것이 그의 전략의 일부이다. 그리고 독재자이기 때문에 원한다면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다. 그의 전략이라는 것은 '미국은 나쁘고 우리를 공격할 것이므로 부시로부터 우리를 구해달라'는 것이다.

전세계가 그가 핵무기를 갖지 못하게 하려 하지만 그는 문제 해결을 피하면서 프로파간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독재자이기 때문에 각하나 저처럼 책임을 져야 할 필요도 없고, 정치적 반대와 시민사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파간다를 일삼고 있으며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


부시 "그것(Mr 호칭)이 정말 효과가 있다면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부시 대통령은 그후 2차 오찬회담에 앞서 가진 간단한 막간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요청한 대로 기자들 앞에서 '미스터 김정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곧바로 가진 오찬회담에서 "아까 기자회견 때 'Mr. 김정일'이라고 했다"고 전제하고, 웃으면서 "그것이 정말 효과가 있다면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빈정거리는 투로 말해 '미스터' 호칭은 마지못해 한 '언론용'이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당시 정상회담을 수행한 한 관계자는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진지하게 'Mr라는 호칭이 동북아에서의 새로운 평화를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자, 이에 부시 대통령은 놀란 표정으로 '정말 그렇다고 보시냐'고 반문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의 호칭에 대한 '효과'를 둘러싼 인식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이어 "저희가 북한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무기문제이며, 두번째는 인권문제다"라고 북한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다시 두번 더 김정일 위원장을 독재자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저희는 그가 독재자라는 점이 걸린다"면서 "독재자이기 때문에 책임도 안지고 선거를 통해 선출될 필요도 없고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김정일 위원장을 비난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것에 대해 전세계인들이 그다지 신경을 안쓰고 지켜보고만 있다는 것은 안타깝고 한심한(pathetic) 현실이다"면서 "하지만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과 걱정을 하고 있으며 각하도 걱정하고 계신다"고 말해 북한 인권 현실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한·미 정상회담 당시 부시 대통령의 '미스터 김정일' 발언이 언론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그와 관련된 구체적 발언 내용과 배경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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