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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리철진>은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체포된 부부간첩이 남파된 목적 중의 하나가 고첩과 접선해 김순권 박사가 개량한 '슈퍼 옥수수' 종자를 입수해 오는 것이었다는 점에 착안해 '슈퍼 옥수수' 대신에 '슈퍼돼지 DNA'로 바꾼 것이다.
<간첩 리철진>은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체포된 부부간첩이 남파된 목적 중의 하나가 고첩과 접선해 김순권 박사가 개량한 '슈퍼 옥수수' 종자를 입수해 오는 것이었다는 점에 착안해 '슈퍼 옥수수' 대신에 '슈퍼돼지 DNA'로 바꾼 것이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 칠 때 떠나라>로 한창 '뜨는' 장진 감독이 99년에 만든 영화 <간첩 리철진>은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과 남한 사회의 황금 만능주의를 대비시킨 '블랙 코미디'이다.

기아와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는 북조선의 대남공작 당국은 남조선에서 '슈퍼돼지 DNA'를 개발한 사실을 알고 이 DNA를 탈취해 식량난을 해결할 목적으로 '리철진'을 파견한다. 간첩 리철진은 남한 침투에 성공하지만 고첩(고정간첩) '오선생'을 만나기 위해 택시를 탔다가 그만 택시강도를 당하고 만다.

어리버리한 간첩 리철진은 졸지에 '남조선 떼강도'를 만나 공작금과 권총, 독침 등 간첩활동에 필요한 가방을 통째로 빼앗긴 채 거지꼴이 되어 오선생과 가까스로 접선에 성공한다. 남파된지 어언 30년, 구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및 경제난으로 '고난의 행군'을 거듭한 조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이 끊긴 채 '자력갱생' 해온 오선생은 '새내기(신세대) 직파간첩'으로부터 은근히 공작금을 기대했으나 택시강도를 당했으니 '말짱 황'이었다.

간첩 검거실적 통계, '북 대남공작망 붕괴' 입증

북한이 90년대 들어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대남공작망이 붕괴되었다는 분석은 정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었다. 실제로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체포된 부부간첩이 남파된 목적 중의 하나는 선이 끊긴 고첩망을 검열하고 특히 고첩인 고영복 서울대 명예교수와 접선해 김순권 박사가 개량한 '슈퍼 옥수수' 종자를 입수해 오는 것이었다.

<간첩 리철진>의 영화적 상상력은 바로 여기서 착안해 '슈퍼 옥수수' 대신에 '우스꽝스런 그림'이 되는 '슈퍼돼지 DNA'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대남공작망이 사실상 붕괴되었다'는 분석이 단지 시나리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라 '실제상황'임을 입증하는 실증적인 통계가 처음 나왔다. 그것도 간첩 잡는 것을 본업으로 삼는 국가안전기획부가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자료이다. 그러니 안믿을 도리가 없다.
연도별 자수간첩 현황

 

'98년

'99년

'00년

'01년

'02년

'03년

'04년

'05년

자수간첩

5

3

2

3

2

0

2

1

18

검거간첩

4

5*

1

1

0

3

1

0

15

합계

9

8

3

4

2

3

3

1

33

 

ⓒ *김영환 등 민족민주혁명당 관련자 5명(출처 : 국가정보원)

<오마이뉴스>가 최근 국정원의 '98년 이후 연도별 간첩 검거실적'(2005년 8월 현재)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고첩의 '노령화'에 따라 자수한 간첩 수가 검거된 간첩 수를 추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취해온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북한의 경제난과 맞물려 사실상 북한의 대남 공작망이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우선 '98년 이후 연도별 간첩 검거실적'에 따르면, 국정원은 98년부터 2005년 7월까지 ▲고정간첩 9명 ▲우회침투간첩 24명 등 총 33명의 간첩을 검거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회침투간첩'은 북한 당국이 공작원을 곧바로 남한으로 침투시킨 '직파간첩'과 달리 제3국을 통해 침투시키는 간첩을 가리킨다.

그런데 98년 이후 간첩 검거실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거간첩은 15명인데 비해 자수간첩은 18명으로, 국정원이 검거한 간첩 수보다 자수한 간첩 수가 더 많았다. 자수간첩 수가 검거간첩 수를 추월한 것으로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수간첩 수가 검거간첩 수 추월한 것으로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

게다가 국정원 자료 가운데 국정원이 '검거간첩'으로 분류한 한○근(34)씨의 경우 등을 엄밀히 분석하면 실제 자수간첩 수는 이보다 더 늘어난다.

예를 들어 국정원은 한씨를 북한의 지령을 받아 중국에서 주요 탈북자 20명을 체포해 북송하고, 중국 체류 한국인 등에 대해 납치공작을 기도한 '북한보위부 간첩'으로 규정했지만 한씨는 2003년 1월 남한에 입국한 뒤 자수해 같은 해 8월 검찰에 불구속 송치되어 올해 6월 검찰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자수간첩'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검거간첩은 14명이고 자수간첩은 19명인 셈이다.

특히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자수간첩의 비율이 늘어난 반면에 검거간첩은 거의 전무한 것으로 드러나 김대중 정부가 취해온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남파간첩을 억제하는 데 일정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이 기간에 자수한 간첩은 28세부터 82세까지 노·장·청에 두루 걸쳐 있지만 평균연령이 약 58세로 '고령화'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세분하면 ▲청년(20∼30대) 자수간첩은 4명 ▲장년(40∼50대) 자수간첩은 5명인데 비해 ▲노년(60대 이상) 자수간첩은 10명으로 전체의 52.6%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는 특히 69세 여간첩(98년 자수)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표 2> 자수간첩의 연령별 현황

 

연령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

인원

1

2

2

3

6(1)

3

1

18

 

ⓒ 주 : 괄호안은 여성(출처 : 국가정보원)

이를 98년부터 연도별로 살펴보면, 99년과 2003년 제외하고는 해마다 자수간첩 수가 검거간첩 수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99년의 경우, 체포 간첩수가 5명으로 역대 최대이지만 이들은 전원이 이른바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사건 관련자들이다.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씨 등 주사파였던 이들은 전통적 의미의 간첩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을 다시 사건 유형별로 살펴보면, 외국(독일·프랑스·일본) 유학중 북한에 포섭되어 지하당 구축을 기도하거나 국내정세를 수집 보고해온 자수간첩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북한 노동당계나 재일 조총련계 자수간첩이었다. 이 자수간첩들은 대부분 기소유예나 공소보류 처분을 받아 풀려났다.

간첩혐의 대부분 '국내정세 수집보고'... '동조자 포섭' 극히 드물어

한편 검거간첩들의 사법처리 결과를 보더라도 '공소보류'부터 징역형까지 다양하지만 최고형이 징역 8년형으로 군사정부 시절에 비해 형량이 대폭 낮아졌다. 2000년에 검거된 체포된 한○석(76)씨의 경우,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한 북한 노동당계 간첩임에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고령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간첩 유형과 형량의 변화는 과거처럼 '독침'을 품고 요인을 납치·암살하는 목적을 띠고 남파된 '무시무시한 간첩'이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정원이 파악한 이들의 간첩혐의를 보면 대부분이 '국내 정세 수집보고'이고 '동조자 포섭'은 극히 드물었다.

간첩수사는 대부분 신고를 통해 시작되는데 90년대에 들어 신고 건수가 매년 30%씩 줄어들어 신고에 의한 수사착수 건수는 1년에 10건을 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대공수사관들은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해이해졌다고 하지만, 국민생활 및 의식수준이 높아져 간첩이 침투할 토양이 점점 없어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지난 2002년 10월 언론사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북한정세보고회에서도 국정원 수뇌부는 비보도를 전제로 "북한 당국이 남한에 있는 고정간첩들에 대한 자금지원을 전면 동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국정원은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국정원이 고유업무인 간첩 잡는 일을 사실상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간첩을 안잡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간첩활동을 하는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 못잡는 것"이라며 이같이 답변했다.

국정원은 이어 이처럼 간첩활동을 하는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1차적 배경에 대해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가 급진전을 보이면서 북한 당국이 남한에 있는 고정간첩들에게 자금 지원을 전면 동결했다"면서 "남한의 고정간첩들이 입수하는 첩보 수준이 너무 조악해서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의 남파간첩은 줄어드는 반면에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산업스파이는 갈수록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국정원의 업무영역도 '수요'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정원이 국내에서 발생한 산업스파이 사건을 유형별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은 1998∼2005년 6월간 총 82건을 적발해 업계추산으로 약 76조9천529억원의 피해액을 예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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