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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난 큰언니와 형부.
박수근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난 큰언니와 형부. ⓒ 이승열

미술관 내부 전경. 플래쉬를 사용하지 않고 기록했다. 왜 사진 촬영을 금하나 여행때마다 의문이다.
미술관 내부 전경. 플래쉬를 사용하지 않고 기록했다. 왜 사진 촬영을 금하나 여행때마다 의문이다. ⓒ 이승열
왜 기억이 나지 않겠는가? 등 뒤로 신발을 감추고 앞문으로 들어와 뒷문으로 살짝 빠져나가며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하던 큰언니를 껌딱지처럼 붙어다녀 눈총을 받았던 그 시절이….

아무리 희생적인 엄마였다 한들, 부지깽이도 한몫 해야 하는 시골에서 올망졸망한 아이까지 챙길 수는 없었다. 윗 논의 물이 아랫 논에 자연스럽게 흘러야 농사가 가능했듯, 동생들을 건사하는 것은 맏이인 큰언니 몫이었다.

큰언니는 언제나 엄마 대신이었다. 순전히 큰딸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허구헌날 큰언니 등짝은 빌 틈이 없었다. 하나가 등짝에서 떨어져 나가면 다음 동생이, 또 다음 동생이, 그렇게 여섯이었다.

'박수근 미술관'에 도착했을 즈음 양구를 온통 둘러쌌던 안개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국경이 되어 버린 국토의 오지답게 몇 개의 군부대를 지나야 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라 그리움에 눈이 깊어져 새벽길을 달려 애인 면회를 가는 길인 듯했다.

미술관 풍경. 세월이 빨리 흘러 내가 노인이 됐으면 좋겠다.
미술관 풍경. 세월이 빨리 흘러 내가 노인이 됐으면 좋겠다. ⓒ 이승열

미술관 위로 올라오면 파란 하늘이 있고, 그의 묘는 미술관과 연결되어 있다.
미술관 위로 올라오면 파란 하늘이 있고, 그의 묘는 미술관과 연결되어 있다. ⓒ 이승열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그가 태어나 밀레와 같은 전원의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곳에 '박수근이 미술관'이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 땅의 여느 풍경처럼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야트막한 산이 마을 뒤를 병풍처럼 감싸고, 그 앞에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만난 박수근의 그림은 그곳 풍경처럼 우리 자매들의 30년 전 기억 속 일상이었다.

들마루에 앉아 세상 소식을 전해주던 기름장수 아낙, 봄볕에서 나물 캐던 아낙, 방망이질 소리 들렸던 빨래터 풍경, 팽나무 아래에서 뒷짐지고 수염을 쓰다듬던 노인, 잎을 다 떨군 나무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가난했지만 당당하고 아름다웠던 서민들의 삶을 단순한 선으로, 결국 그 단순함이 인간의 진정한 모습임을 표현한 화가 박수근. 그의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끝없는 애정이 그림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2002년 10월 25일 개관한 '박수근 미술관'은 그의 그림 속에서 늘 만나게 되는 거칠지만, 따뜻하고 익숙한 화강암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개관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아 미술관의 화강암은 지나치게 곱고 깨끗했다. 세월의 켜가 쌓이면 따로 그의 그림을 기억할 필요도 없이 미술관 자체가 그의 그림이 될 것 같았다.

그림을 걸어놓고 살고 싶었다. 생전의 박수근처럼 이름없는 화백 이세백의 고향풍경과 장욱진의 가로수. 408/500 이라 연필로 써 있다. 우리집 벽에 걸려있는 그림 두점.
그림을 걸어놓고 살고 싶었다. 생전의 박수근처럼 이름없는 화백 이세백의 고향풍경과 장욱진의 가로수. 408/500 이라 연필로 써 있다. 우리집 벽에 걸려있는 그림 두점. ⓒ 이승열

이땅 어디에고 굴러다니는 화강암, 그 돌맹이에 새겨진 박수근
이땅 어디에고 굴러다니는 화강암, 그 돌맹이에 새겨진 박수근 ⓒ 이승열
'대지에 미술관을 새겨나간다'. 맨 처음 대지에 미술관 계획을 시작했을 때 떠오른 말이라고 건축가 이종호는 고백했다. 박수근이 경험했을 풍경을 매개로 그의 그림 이전에 건축 그 자체로서 박수근을 만나게 하고 싶었던 건축가의 꿈은 그대로 들어맞은 셈이다. 나같은 그림의 문외한도, 미술관이 평생 처음이었을 큰언니도 박수근의 눈으로, 박수근의 마음으로 모든 풍경을 바라보며 담박에 그 시절로 돌아가 버렸으니….

이 땅에서 최고의 그림 값을 기록하는 작가답게 대작은 거의 없이 소품으로 미술관이 채워져 있었다. 대작과 소품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 감동이 주는 크기가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지만 미술관에서 우리는 충분히 박수근을 만났고 크게 감동 받았다. 그의 손때가 묻어 있는 유품, 편지, 메모, 스크랩북, 안경, 어린 자녀를 위해 직접 그림 동화책 등 미술관은 소박하고 정감이 어렸다.

흰 색 벽에 불현듯 그의 생전 모습이 보였다. 막내딸 인애를 안고 있는 그의 아내 김복순, 한 발짝 떨어져 구부정하게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선량한 그의 눈빛, 메리야스 입은 그의 뒤에 땅바닥에서 공기놀이를 하는 내가 있었다. 내 친구도 있었고, 내 동생도 있었다. 막내를 업은 큰언니의 뒷모습도 있었고, 곡예를 하듯 두 손을 놓고 광주리를 이고 걷고 있는 아낙도 있었다.

"초상화부엔 다섯 명 정도의 궁기가 절절 흐르는 중년 남자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업주는 그들을 훗두루 간판쟁이들이라고 얕잡아 보고 있었다. 박수근 화백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남보다 몸집은 크지만 무척 착해 보여서 소 같은 인상이었다. 착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 자칫하면 어리석어 보이기 십상인데 그는 그렇지가 않았다."

전쟁 후 미군부대에서 초상화 그리던 시절 그를 만났던 박완서도 있었다.

그의 묘 아래에서 고무신을 신은 그가 미술관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묘 아래에서 고무신을 신은 그가 미술관을 바라보고 있다. ⓒ 이승열

박수근 묘 가는 길. 그의 묘가 없이 기념석이 그의 묘를 대신하는 줄 알았다.
박수근 묘 가는 길. 그의 묘가 없이 기념석이 그의 묘를 대신하는 줄 알았다. ⓒ 이승열
그는 이제 신화가 되어 미술관 뒤 야산에 잠들어 있었다. 2004년 이장한 그의 묘는 미술관 바로 뒤에서 미술관을 감싸고 있었다. 생전 삶에 비해 너무 큰 석물이 둘러진 그의 묘가 평생 가난했던 그의 삶을 조롱하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 그의 무덤 앞에 놓아둔 국화꽃이 내게도 위안이 됐다. 화강암에는 그의 그림이 조각되어 있었다. '화백 박수근, 전도사 김복순 지묘'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내 이름자 앞에는 무엇이라 새겨질까? 아니, 난 그냥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 바람결에 실려서, 우리 엄마 소원처럼….

박수근 미술관 가는 길 만난 담쟁이, 미술관 화강암 벽에 담쟁이가 있었다.
박수근 미술관 가는 길 만난 담쟁이, 미술관 화강암 벽에 담쟁이가 있었다. ⓒ 이승열

이젠 큰언니 등짝에서 내려온 조카 한진호. 큰언니의 등이 이젠 좀 가벼워졌을까?
이젠 큰언니 등짝에서 내려온 조카 한진호. 큰언니의 등이 이젠 좀 가벼워졌을까? ⓒ 이승열
큰언니는 결혼을 하면서 맏이로서의 역할에서 일순 벗어나는 듯싶었다. 수원으로 시집오며 평생 등짝을 무겁게 짓눌렀던 동생들에게서 비로소 벗어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오빠가 서울로 대학을 오고, 내가 서울로 올라와 큰언니집 작은방을 차지하며 30년 전처럼 큰언니 등짝에 매달린 짐이 되었다. 나와 오빠가 각자의 짝을 찾아 떠난 뒤, 큰언니는 비로소 동생들이 아닌 자신의 아들, 딸을 포대기에 싸서 그림 속의 아낙처럼 업고 다녔다.

큰언니의 아이들이 자라고, 이젠 진정 포대기의 쓰임새가 다한 줄 알았다. 그 고된 맏이란 업보에서 벗어나 올곳이 자신의 삶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던 동생이 결혼과 동시에 수원으로 올라왔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등을 내줬던 큰언니의 등에 다섯 동생들 대신 동생의 아들 진호가 업혀졌다. 도서관 사서인 동생을 대신해 큰언니가 어린 조카 진호를 그림 속의 아낙처럼 다시 업고 다녔다. 이 땅에서 어머니 다음으로 슬픈 이름이 큰언니이다. 진호를 끝으로 큰언니의 삶을 평생 고단하게 했던 모든 짐이 다 내려진 것일까? 혹 그림 속의 아낙처럼 영원히 동생들을 업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박수근 미술관 안내문을 참고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1월1일, 추석, 설날은 휴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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