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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재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28일 총사퇴를 결정한 열린우리당 지도부.
10.26재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28일 총사퇴를 결정한 열린우리당 지도부.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4월 출발한 문희상 체제가 7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문 의장은 17대 국회 들어 4번째 집권여당의 수장으로 청와대의 뒷받침과 중도실용 노선을 내세워 리더십을 발휘해왔지만 끝내 '단명'했다. 1년6개월 사이 벌써 4명의 의장이 교체됐다.

이번 문희상 체제의 좌초는 표면적으론 연이은 재보선 참패에 따른 것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노선갈등, 당·정·청 엇박자, 연정론 등 잠복된 불만들이 폭발한 경우여서 파장이 쉽게 사그라들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은 연말까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며 임시전당대회 개최 시기와 정국운영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비대위원장으로는 임채정(열린정책연구원장·4선), 김한길(건설교통위원장·3선), 유인태(서울시당위원장·재선)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기국회는 정세균 원내대표 체제로 운영할 전망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상황

술렁... 열린우리당은 28일 오전 국회에서 중앙위원회·의원총회 연석회의를 갖고 당 지도부 진퇴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김한길, 이강래 의원 등이 연석회의가 열리는 도중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술렁... 열린우리당은 28일 오전 국회에서 중앙위원회·의원총회 연석회의를 갖고 당 지도부 진퇴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김한길, 이강래 의원 등이 연석회의가 열리는 도중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번에 구성될 비대위는 지난 1월 임시집행위원회(임채정 위원장)의 경우와 성격이 사뭇 다르다. 문 의장이 마지막 퇴임인사로 던진 "제2창당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말에서 시사되듯 열린우리당 내 위기의식이 각별하다.

사실 연석회의 전날까지만 해도 문희상 체제가 올 연말까지는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다. 노 대통령의 '당부'도 있었고, 대안부재론이 조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회의가 시작되자 지도부 사퇴는 일찌감치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였다.

나아가 당·정·청 전면 쇄신론이 제기됐고, 직접적인 화살은 청와대로 향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내각 총사퇴와 청와대 비서진 교체도 제기됐다.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신(神)인가"라는 노골적인 표현까지 나왔다.

당초 청와대는 문희상 의장이 최소한 올 연말까지는 버텨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의중도 당의 반발을 누르는데는 역부족인 상황에 이르렀다. 당·청 갈등은 청와대의 통제권을 벗어나 범여권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차기주자들의 조기 복귀 문제가 겹치면서 당권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른바 GT(김근태)계로 불리는 의원들이 전면에 나서 지도부 사퇴와 당 중심론을 설파했다. DY(정동영)계도 비대위 구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정·청 관계에 대해 '친노-반노' 간 입장차도 극명하다. 김혁규 의원은 "대통령은 이 나라 정치의 중심인데 대통령이 행정만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노 대통령이 정치 일선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반면, 정장선 의원은 "대통령은 더이상 정치문제에 관여하지 말고 민생에 전념하라"며 개헌·정당연합·선거구제 등은 당의 주도로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다.

당의 불만, 계파 이해관계-노선갈등 등에 따라 중첩

당·정·청 엇박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왔다. 특히 연정국면에서 불협화음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른바 '범노무현 지지그룹'은 대통령의 지역구도 타파 의지를 적극 설파하며 선거구제 개편으로 나아갔지만, 상당수 의원들은 마지못해 끌려가거나 침묵으로 반대해왔다.

진단도 엇갈렸다. 당·정 분리의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청와대의 독주'라는 불만이 더 컸다. 당은 당대로 청와대에 불만이 쌓였고, 노 대통령 역시 우왕좌왕 하는 당에 몇차례 불만을 드러냈다.

결국 연정은 물 건너갔고, 열린우리당은 정체성 혼란과 지지층 분열이라는 잿더미를 떠안았다. 지도부는 선거구제 개편으로 연정 불씨를 되살리려 했지만, 야당은 물론 당내에서조차 크게 힘을 받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재야파를 비롯해 호남권 의원들이 특히 노 대통령에게 불만을 갖는 대목이다.

전남의 한 중진의원은 "호남 개혁세력을 이런 식으로 내버려둔다면 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탈당을 시사했다. 한 수도권 중진은 "영남 개혁세력의 부활을 위해 다 내팽겨치나"라며 연정론을 대놓고 폄하했다.

의원들의 불만은 계파 이해관계, 노선갈등 등이 중첩되어 있지만 '이대로 가다간 정권 재창출은 어렵다'라는 위기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기호 1번으로 나가면 다 떨어진다", "지금 총선 치르면 10석도 못 건진다" 등등 절망적인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김영춘 의원은 "미지의 항해지만 떠볼 수밖에 없지 않나"라며 벼랑 끝에 놓인 심정을 토로했고, 김한길 의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사람 몇몇의 교체가 아니라 당의 근본틀을 바꿔야 할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미지의 항해를 떠나볼 수밖에"

격랑속 정국, 대통령의 선택은? 열린우리당이 연석회를 통해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지도부가 총 사퇴를 결정했던 28일, 노무현 대통령이 용산국립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격랑속 정국, 대통령의 선택은? 열린우리당이 연석회를 통해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지도부가 총 사퇴를 결정했던 28일, 노무현 대통령이 용산국립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이제 당이 주도권을 갖겠다고 나선 마당, 노 대통령의 정국운영 구상에 수정이 불가피하지 않겠냐는 관측과 함께 조기 레임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사실상 임기 시작부터 '인정받지 못한'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레임덕과는 다르다는 평가다.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를 거쳤고 연정을 제안하며 한나라당에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임기단축이나 조기퇴진은 노 대통령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레임덕을 두려워하지 않는 노 대통령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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