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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온몸을 내 맡기어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 선자령에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온몸을 내 맡기어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 선자령에 바람이 분다. ⓒ 서재후
가을은 시인을 만들고 시인은 가을을 노래한다고 했던가. 선자령 길은 한 편의 시이다. 선자령에 달이 높이 오르면 낮은 풀숲 아래로 풀벌레가 운다. 그 풀숲 위로 부는 선자령의 바람은 먼 길을 떠나온 자를 위로한다. 높아진 짙푸른 가을 하늘과 바람에 흔들리며 억새 위에 부서지는 햇살은 눈물나게 아름답다. 올 가을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어느 해보다 단풍이 아름답다고 한다. 선자령에서 가을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어보자.

한올한올 실낱같은 구름아래로, 꿈결같은 선자령의 오솔길이 아름답다.
한올한올 실낱같은 구름아래로, 꿈결같은 선자령의 오솔길이 아름답다. ⓒ 서재후
너무 녹녹하게 봤던 탓일까? 지난번 선자령 코스는 중간에 포기해야 했다. 무엇보다 늦게 출발한 탓이겠지만 산에선 해 지는 시간이 빠르다. 용감무쌍하게도 등산장비 없이 덤벼든 가을 산행, 얼마 가지 못하고 가던 길 되돌아와야 했다. 사실 선자령 길은 험하지 않아 특별한 장비는 필요 없다. 하지만 산에서 맞는 어둠은 얘기가 달라진다.

억새풀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 어디로 뻗어 있든 상관없다. 그저 길을따라 가면 그뿐이다.
억새풀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 어디로 뻗어 있든 상관없다. 그저 길을따라 가면 그뿐이다. ⓒ 서재후
선자령은 평창군과 강릉시의 경계에 있다. 이곳의 지형은 동쪽이 단애와 급사면을 이룬 반면 서쪽은 완만한 경사지를 형성하고 있어 대관령국사성황당~선자령~선자령나즈목~보현사 코스는 가을트래킹 코스로 일품이다. 성황당에서 조금만 오르면 선자령 3.2km 표지가 나온다. 여기부터가 실제 트래킹의 시작이다. 어린아이 키만큼 자란 풀숲을 지나면 나지막한 나무터널과 오솔길이 시작된다.

어른 하나 지날 만큼의 오솔길을 썩썩 걸으면 어느새 근심걱정은 사라지고 자연에 귀의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숲 속 오솔길을 걷다 낮은 언덕을 하나 넘으면, 눈이 부시게 하얀 억새 한가득, 바람 한가득 담은 넓은 초원이 보인다. 억새를 헤치며 오른 선자령 트래킹의 절정은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능선이다. 한편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한다. 남쪽으로는 발왕산, 서쪽으로 계방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북쪽으로 황병산이 바라다 보이고, 맑은 날에는 강릉시내와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등 전망이 일품이다.

선자령 트래킹의 절정은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산들의 능선이다.
선자령 트래킹의 절정은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산들의 능선이다. ⓒ 서재후
이곳은 어느 한 계절 빠지지 않는 절경을 뽐낸다. 좁은 선자령 길을 걷다 길옆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운이 억세게 좋으면 야생노루도 볼 수 있다. 이와 반대코스인 보현사에서 출발하여 대관령국사성황당까지의 코스는 자신의 부실한 다리를 원망하며 급경사를 올라야 한다. 계곡을 가운데에 두고 10번 이상 건너기를 반복해야 한다. 잠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명경 같이 맑은 계곡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재미도 솔솔하다. 국사성황당~보현사 코스보다는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이 있어 나름대로 안전하다.

산을 오르다 얼마나 남았는지 거리를 물어보지만 알면 어쩔 것이겠는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오르면 그뿐이다. 묻지 마라. 이렇게 참고 오르면 어느 순간 탁트인 넓은 공간이 보인다. 목적지인 선자령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자연은 인간의 기대에 쉽게 화답하지 않는다. 바로 선자령 나즈목이다. 2km 정도 더 길을 가야 선자령이다. 어느 길을 선택해도 물들어가는 단풍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가을은 징검다리 건너듯 푸른 산봉우리를 붉게 불태우며 우리에게 달려온다.

사부작, 사부작 부는 바람은 선자령을 하얀 억새파도로 만든다.
사부작, 사부작 부는 바람은 선자령을 하얀 억새파도로 만든다. ⓒ 서재후
대관령국사성황당~선자령~보현사 코스를 선택했다면 또 하나 볼거리가 있다. 허난설헌 솔밭길이다. 선자령 트래킹을 마치고 우리는 서둘러 강릉으로 2시간 남짓 차를 몰았다.

하늘과 구름 , 땅과 억새 , 그리고 사람... 모두가 조화롭다.
하늘과 구름 , 땅과 억새 , 그리고 사람... 모두가 조화롭다. ⓒ 서재후
허난설헌 생가는 강릉의 아름다운 경포호반과 생가 뒤의 솔밭을 끼고 위치해 있다.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명종 18~선조 22)은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이다. 난설헌은 호이고 본명은 초희(楚姬), 그리고 자는 경번(景樊)이다. 이달에게 시를 배워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했으며, 15세 무렵 김성립과 결혼했으나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신동소리를 듣고 자란 규방 아씨 초희는 곧 스승을 능가하고 인내와 순종을 강요하는 현실세계를 건너 뛰어 신선이 노니는 신선시(神仙詩)와, 애상적 시풍의 독특한 시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작품의 일부를 동생인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주어 1608년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었으며 1711년 분다이야 지로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애송되었다. 그후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격찬을 받아 당대의 세계적인 여류 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고 한다.

허난설헌 생가터
허난설헌 생가터 ⓒ 서재후
집을 보면 집 주인을 알 수 있다는 옛 말처럼, 허난설헌의 생가는 고래등 같은 99칸 집은 아니지만 건물들의 높고 낮음 없이 소박하게 앉아 있다. 집 밖으로 어른키만한 담장이 둘러져 있어 답답한 느낌이지만, 이곳 담장의 용도는 다양했으리라 생각된다. 허난설헌은 여자들에게 더 가혹했던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을 가볍게 뛰어 넘어 담장 밖으로 상상의 나래를 폈을 것이다.

담장 너머로 허난설헌 생가터 내부가 보인다.
담장 너머로 허난설헌 생가터 내부가 보인다. ⓒ 서재후
허난설헌 생가 뒤편엔 울창한 솔밭이 들어서 있다. 소나무들의 나이는 100년은 되어보이지만 허난설헌이 태어날 때부터 소나무 숲이 있었다고 하니 이곳 소나무 숲은 500년 전부터 있었던 셈이다. 바다 바람이 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소나무의 키가 크고 굵다.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이곳을 지켜온 솔숲의 고즈넉한 오솔길을 걸으면 이슬에 촉촉이 젖은 흙냄새와 솔숲 특유의 향기가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든다.

허난설헌 생가터 뒤 고즈넉한 솔밭길
허난설헌 생가터 뒤 고즈넉한 솔밭길 ⓒ 서재후
이맘때 쯤이면 골골, 샅샅 어느 한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가까운 도시의 가로수도 노랗게 물들이며, 가을의 운치를 더해가고 있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선자령 오르는 초입길
선자령 오르는 초입길 ⓒ 서재후

여행팁!

선자령트래킹은 대관령 국사성황당에서 출발하여 선자령까지가 좋고, 만약시간이 된다면 선자령에서 보현사까지 다녀와도 좋다. 보현사 아래엔 대관령 유스호텔이 있어 하룻밤 묵을 수 있다.

여기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아침 강릉 허난설헌 생가 터까지가 1박2일 코스이다. 또 한 가지 가벼운 트래킹이라도 산행이다. 바닥이 딱딱한 신발과 마실 물을 챙겨가기 바란다.

먹거리
횡계나들목을 나서면 성산방향 이정표가 보인다. 길들따라 쭉 직진하면 성산 먹거리촌이 나오는데 근처 대부분의 음식점들이맛이 좋지만 초원쌈밥집 들러보길 바란다(초원쌈밥집과 저는 전혀 관련없습니다. 그저 오가다 우연히 들렀던 음식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 오시면 더 많은 허접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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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잊고 살았던 꿈을 조금이나마 실현해보기 위해서라면 어떨지요...지금은 프리렌서로 EAI,JAVA,웹프로그램,시스템관리자로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어렸을때 하고싶었던일은 기자였습니다. 자신있게 구라를 풀수 있는 분야는 지금 몸담고 있는 IT분야이겠지요.^^;; 하지만 글은 잘 쓰지못합니다. 열심히 활동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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