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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영 경찰청장이 4·3 평화공원을 방문해 분향하고 있다.
허준영 경찰청장이 4·3 평화공원을 방문해 분향하고 있다. ⓒ 이승록
1948년 4·3발발 당시 군과 함께 제주도민을 '빨갱이'로 내몰아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역사적 과오'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경찰의 총수가 4·3발발 57년 만에 마침내 4·3영령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허준영 경찰청장은 27일 오후 4시 30분 제주 4·3사건 당시 희생당한 2만여 영령들의 위패가 안치돼 있는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우리나라 경찰총수로는 처음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령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제주특공대 발대식 참석차 제주에 내려 온 허준영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3시 제주대 국제교류센터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특별 강연을 마치고는 지방경찰청 버스로 당초 일정보다 30분 가량 늦은 오후 4시 30분 평화공원에 도착해 오문호 4·3사업소장의 안내로 위령재단에서 헌화·분향한 후 4·3당시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령과 순직경찰관들을 위해 참배했다.

허 청장은 참배 직후 망명록에 "4·3당시 무고한 희생을 당하신 양민들과 순직 경찰관의 영령들께 삼가 고개를 숙여 조의를 표합니다"라고 서명했다.

허 청장은 이어 2만여 희생자 위패가 봉안돼 있는 위패봉안실에 들어가 위패를 둘러본 후 취재기자들에 둘러싸여 4·3평화공원 방문소감과 제주4·3에 대한 경찰총수로서의 의견을 밝혔다.

허 청장은 "불행했던 과거사의 아픔을 도민과 함께 하고자 왔다"며 소감을 밝혔다.

허 청장은 "4·3은 내가 태어나기 직전에 발생한 사건이라 내용을 잘 몰랐으나 주위 여러분들이 말씀해서 잘 살펴보니 4·3당시 남로당 무장대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양민과 경찰이 순직했다"면서 "그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불행했던 과거를 털고 앞으로 미래를 위해 나가고자 평화공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허 청장은 "평화공원 참배를 공식적인 사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경찰관도 순직이 47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 문제는 정부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허 청장은 기자들이 "경찰은 47명이 순직했지만 도민은 3만여 명이나 피해를 당했다.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피해자의 입장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공식사과는) 대통령의 사과로 해달라"면서 "오늘은 추모차원에서 4·3위령공원에 왔다"며 거듭된 요구에서 불구하고 '사과'라는 표현은 피해 나갔다.

허 청장은 4·3관련 자료 공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경찰에서 공개를 안 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보탬이 된다면 있는 자료는 무엇이든 공개하겠다"며 4·3관련 자료 공개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뜻을 밝혔다. 허 청장은 이날 4·3평화공원에 10여 분간 머문 후 떠났다.

이번 허 청장의 평화공원 방문에는 경찰청 경비국장과 정보심의관리관, 홍보관, 류정선 제주지방경찰청장이 함께 했다. 또 경찰총수가 57년 만에 영령들에게 참배한다는 것을 의식한 듯 취재진만도 30여 명이나 몰렸다.

허준영 청장이 4·3평화공원 방명록에 "4·3 당시 희생된 양민들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썼다.
허준영 청장이 4·3평화공원 방명록에 "4·3 당시 희생된 양민들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썼다. ⓒ 이승록
평화공원 현장에서 허준영 경찰청장의 참배를 지켜 본 오승국 제주4·3연구소 사무처장은 "비록 경찰청장이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57년 전 4·3 토벌에 한축을 담당했던 경찰 총수가 평화공원을 방문해 참배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환영의 뜻을 밝히고 "과거 경찰의 잘못을 현재 경찰이 해결을 모색하자는 '결자해지'의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오 처장은 "경찰은 지난 10년간 4·3단체들의 계속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료공개를 거부해 왔다"면서 "오늘 허 청장의 평화공원 참배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4·3 해결에 힘을 보태고 경찰이 갖고 있는 4·3 자료까지 공개해 진실이 밝혀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제주4·3평화공원에는 그 동안 정부 고위 각료 중에는 고건·이해찬 국무총리, 강금실 법무부장관, 허성관 행정자치부장관 등이 참배한 바 있다.

다음은 허 청장과 나눈 일문일답 내용.

- 4·3평화공원을 참배한 소감을 밝혀달라.
"불행했던 과거사의 아픔을 도민과 함께 하고자 왔다."

- 4·3에 대한 공식사과로 받아들여도 되나.
"경찰관도 순직이 47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문제는 정부에서 한 것으로 안다."

- 오늘 방문은 사과의 뜻이냐.
"나는 저번에도 5·18묘역과 4·19묘역을 다녀온 적이 있다. 4·3은 내가 태어나기 직전이라 내용을 잘 몰랐다. 그런데 주위에 있는 여러분들의 말씀해서 잘 살펴보니 4·3당시 남로당 무장대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양민과 경찰이 순직했다. 그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불행했던 과거를 털고 앞으로 미래를 위해 나가고자 왔다."

- 4·3과 관련된 경찰이 갖고 있는 자료를 공개할 의향은 있는가.
"경찰에서 공개를 안 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보탬이 된다면 있는 자료는 무엇이든 공개하겠다."

- 경찰관은 47명이 순직했지만 도민은 3만여 명이 희생당했다.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피해자의 입장도 있지만…전체적으로 대통령의 사과로 (대신) 해달라."

- 4·3에 대한 경찰청장의 입장은 뭐냐.
"오늘은 추모차원에서 4·3위령공원에 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www.jejusori.net)에도 실려 있습니다.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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