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부시행정부가 이민법을 편법 운용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한 <유에스에이 투데이> 10월 3일자. 사진은 불체 노동자들이 카트리나 피해를 입은 지붕을 수리하고 있는 장면.
부시행정부가 이민법을 편법 운용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한 <유에스에이 투데이> 10월 3일자. 사진은 불체 노동자들이 카트리나 피해를 입은 지붕을 수리하고 있는 장면.
카트리나 늑장대응으로 엄청난 비난에 직면, 인기도가 바닥으로 내려앉은 부시 대통령은 하루속히 뉴올리언스 악몽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있다.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카트리나 복구작업에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사상최대의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해왔다.

부시 행정부는 이에 따라 피해지역인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그리고 플로리다의 공공건설 근로자 최소임금 제한법인 '데이비스-베이컨' 조항을 일시 정지했으며, 국토안보부도 체류신분에 관계없이 일정동안 일을 할 수 있도록 불법 체류자 고용에 대한 강력제재를 일시적으로 중지한 상태다.

이 틈새를 타고 미 전역에서 불법 체류자들이 루이지애나로 몰려들었다. 여기에 남미에서 올라오는 불법 체류자들까지 합세해 허리케인 피해지역은 불법체류 노동자들의 집합소가 되어가고 있다.

이들 불법 체류자들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미국의 육체노동 시장에 균형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육체적으로 고되고 힘든 '더트 워크'(육체노동)에 나설 미국 젊은이들이 없는 상황에서 불체자들이 제공하는 값싼 노동력은 미국의 건설업체들에게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부시 행정부가 느슨한 이민정책을 펼치고 있는 이유다.

뉴올리언스, 불체자로 재구성될 수도

현재 대부분의 남미계 불법 체류자들은 뉴올리언스 복구 작업에 대거 동원된 상태다. 그들은 시간당 8불씩의 저임금을 받고 하루 11시간씩 주6일간 일하며 뉴올리언스 외곽지역의 전기도 물도 없는 지역이나 값싼 모텔방을 빌려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다.

불법 체류자들은 복구 작업이 완료된 후에도 그 곳에 남아 뿌리를 내리길 희망하는 한편, 현재 휴스턴 대피소에 있는 대부분의 뉴올리언스 본토박이 미국인들은 다시 뉴올리언스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고 있어 뉴올리언스는 불법체류자들로 재구성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클린턴 전대통령이 얼마 전 <엔비시>방송에 출연해 "뉴올리언스는 다른 인구로 채워질 것"이라고 한 말이 현실화 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불법 체류자들이 매력적인 노동력 집단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미국사회에서는 이들에게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분위기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이 갖게 된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과 급격히 세력화되어 가고 있는 남미계 이민자들에 대한 견제 때문이다. 특히 지리상으로 미국과 가까울 뿐더러 초기 미합중국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미국-남미지역간의 갈등도 껄끄러운 부분이다.


"누가 뉴올리언스를 복구하고 있는가?"라는 타이틀로 불체노동자들의 복구현장을 다룬 <세인트피터스버그 타임스> 23일자. 사진은 남미계 노동자들이 건물의 바닥과 벽을 청소하고 있는 장면.
"누가 뉴올리언스를 복구하고 있는가?"라는 타이틀로 불체노동자들의 복구현장을 다룬 <세인트피터스버그 타임스> 23일자. 사진은 남미계 노동자들이 건물의 바닥과 벽을 청소하고 있는 장면.
더구나 최근 들어 남미 경제가 악화되면서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일부 지역은 이미 남미계 이민자들이 점령하다시피 했으며, 여기에다 최근의 미국의 재난 상황은 이들의 미국 이주를 더욱 가속화 하고 있다.

최근 뉴올리언스 복구 현장을 취재한 플로리다 <세인터 피터스버그 타임스> 손드라 엠레인 기자는 지난 23일 "최근 남미계 노동자들로 지역노동계가 급격히 대체되고 있다"면서 "복귀한 주민들은 도대체 이 도시가 누구의 도시가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래이 내긴 뉴올리언스 시장도 최근 비즈니스 복귀자들을 위한 포럼에서 "뉴올리언스가 멕시칸 노동자들에 의해 점령당하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냐"면서 지역건설업자들에게 미국 현지인 고용에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불체자들이 세운 나라

사실 허리케인 피해가 발생한 후 거주민 인구 이동이 발생한 것은 이전에도 있었다.

1998년 허리케인 미치가 중앙아메리카를 덮쳤을 때 많은 사람들은 북쪽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리고 이들이 남기고 떠난 빈 자리에는 자연스레 복구 작업을 하러 왔던 일꾼들이 삶의 둥지를 틀었다.

1992년 허리케인 앤드류로 인해 25만 명의 남부 플로리다 주민들이 살던 곳을 떠났고, 이 지역의 복구 작업에 남미계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인력난에 허덕이던 여러 미국 건설업체들이 이 같은 남미계 인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이 때문에 당시 남부 플로리다의 남미계 인구가 50%나 증가했을 정도였다.

이후로 남미계 노동자는 증가일로를 거듭, 2004년 남미계 건설인력은 미 전체 건설 인력의 17퍼센트를 차지했을 정도로 미국의 건축분야는 남미계 인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 남서부 지역뿐만 아니라 1990년과 2000년 사이 캘리포니아와 아칸소에도 대다수 남미계 인력이 동원됐다. 또 9·11 테러 당시 무너졌던 미 국방부 건물 복구에도 40퍼센트나 되는 남미계 인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중적인 미국의 이민자 정책

결국 역사적으로 미국에서 발생한 재난은 남미계 노동자들을 불러들인 셈이 되었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남미인들은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온 것이다.

이를 카트리나 재난으로 곤경에 빠진 부시 행정부의 실정에 맞추어 대입해 본다면, 부시가 허리케인 피해 복구에 "사상최대의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결국 불체 노동력을 미국시장에 풀겠다는 암시이며, 남미계 불체자들은 종전 경험으로 '일을 해도 된다'는 의미로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다. 불체 노동자는 현재 부시가 허리케인 궁지에서 빠져 나오는데 필요악 적인 존재들이 된 셈으로 오히려 이들의 '공헌'에 감사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부시는 여전히 이들의 공헌은 물론 존재조차 공식적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

<엘에이타임스>는 지난 2일 "멕시코 빈센트 폭스 대통령이 '멕시코인이 잘하는 것 중 하나가 건축이다'면서 뉴올리언스 재건에 멕시코 인력동원을 제안했을 때 부시 행정부는 시큰둥해 했지만, 그 시각 미시시피 빌록시에서는 이미 멕시칸 불법 체류자들이 일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어 부시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미국의 현재와 과거가 다른 점이 있다면 정부와 미국인들이 불법 체류자들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라 지적했다.

결국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의 인종-빈곤문제를 노출시킨 것만큼이나 이제 복구 단계에서는 '생산'만 남기고 '생산자'는 인정치 않으려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이중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대형 건설 프로젝트마다 동원된 이민 노동자들

미국이 건국 이래 값싼 이민 인력을 사용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세기 초엔 아일랜드 이민자 인력이 들어와 시간당 37센트라는 저임금을 받고 일했다.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다는 애리 운하가 이들의 손에 의해 건설됐다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 신화 같은 얘기로 들리고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였던 대륙횡단 철도건설이 시작된 1862년, 센트럴 퍼시픽 철도회사는 남북전쟁으로 인해 인력이 모자라자 중국인 이민자들을 동원했다. 1867년 센트럴 퍼시픽 전 직원 1만3500명 중 1만2천명이 중국인이었다. 그들은 주 6일 동안 하루 12시간씩 작업에 시달렸으나 임금은 주당 26~36달러에 불과했다.

이들에 이어 이탈리안 이민자들이 하루 1달러50센트 정도를 받고 뉴욕의 지하철 건설을 담당했다. 1890년대 뉴욕 공공장소 근로자는 물론 시카고 도로 근로자도 거의가 이탈리아인이었을 정도.

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미국 노동시장에 멕시코 인력이 쏟아져 들어와 사우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네바다 등지의 철도건설을 도맡았다. 1929년에 이들은 황폐했던 남서부지역의 토질을 바꾸는 작업에 동원되었는데, 현재 이 지역은 전 미 과일 및 채소 생산의 4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옥토로 바뀌었다. 멕시코 이민자들이 중부에 동원되기 전에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독일인 이민자들이 노스다코다의 초원지역을 밀어내고 경작지로 바꾸었다.

합중국의 건설에 매진했던 역대 미국 행정부들은 이 같은 이민자들의 공헌을 인정하고 기록으로도 남기고 있으나, 최근의 미 행정부들은 이를 모르는 체 하거나 은폐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