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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잡지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기사 중 하나가 모 재벌 아들과 모 장관 딸이 미국에서 만나 사랑을 키우다가 이번에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는, 잘나가는 사람들의 결혼 얘기다.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이 이 경우에 딱 맞는 말이다. 가진 사람들은 역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다른 존재의 진입에 인색하다는 걸 이런 류의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드라마는 끊임없이 신데렐라를 만들어왔다. 이걸 보면 드라마가 현실을 보여주는 기능보다는 없는 사람의 대리만족 기능에 충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 신데렐라 얘기는 드라마의 필수 코드로 자리잡아왔는데, 요즘은 남자 신데렐라까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남자 신데렐라가 양산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요즘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도 꽤 높은 드라마가 대부분 남자 신데렐라 얘기다. <프라하의 연인>에서는 서민 경찰이 대통령의 딸을 만나고, <슬픔이여, 안녕>에서는 백수가 부잣집 딸을 만나는 등 남자 신데렐라 얘기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 <비밀남녀>의 도경(권오중 분).
ⓒ mbc
<비밀남녀>의 '도경(권오중 분)' 역시 남자 신데렐라를 꿈꾸는 그런 인물이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시골 출신으로 서울에 입성해서 나름대로 잘 살아보자고 발버둥치는 그런 인물이다. 그런데 잘 살아보기 위한 방법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도 아니고 돈을 악착같이 모아서도 아니다.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행운을 잡으려는, 다소 허영에 들뜬 인물이다.

겉 멋만 잔뜩 든 인간이다. 남들 명품 입고 다니니까 그거 살 돈은 없지만 흉내는 내고 싶어서 짝퉁이라도 걸치고 다니면서 폼 잡는, 뭐 그렇고 그런 종류의 인간이다. 그러니 이 인간이 서울에서 남 보란 듯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으로 택한 것도 로또식이다. 처음에는 자기가 다니는 은행에서 횡령을 꾀했는데, 마음씨 좋은 상사를 만나 그래도 감옥행은 피하게 되고 직장에서 잘리는 것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그래서 다음 방법으로 택한 게 멋진 여자, 돈 많고 명예도 있는 그런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남자 신데렐라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여자를 꼬실만한 특별한 방법도 없이 그냥 여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여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짠'하고 타잔처럼 나타나 구해준다는 그런 설정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한심한 인간 '도경'에 대해서 꽤 관대하다. 작가의 관대한 시선은 어떤 면에서 우리 사회가 그만큼 이런 인물도 받아들일 여유가 됐다는 뜻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도경이 점점 상대편 돈 많은 여자의 조건보다는 진실한 사랑에 눈을 떠가고, 시골에 있는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는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비도덕적인 인물 도경을 구제할 상황을 모색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리고 상대 편, 돈 많고 명예를 가진 여자 또한 도경에게 은근히 마음을 주고 있으니 신데렐라가 되려는 도경의 꿈은 실현 가능할 듯싶다.

우리 드라마는 지금까지 남자 신데렐라에 대해 인색했다. 도경처럼 쥐뿔도 없으면서 행운을 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여자 신데렐라들은 무수히 만들어내면서 남자들에 대해서 인색했던 것은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 영향 때문이었다. 힘을 가진 건 남성이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남자가 여자한테 눌리는 그런 상황은 있을 수 없다는, 또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견고한 남성우월주의가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가난한 집 아들이 부잣집 여자와 결혼하기 위한 설정으로 이 남자들은 항상 두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대체적으로 남자들은 수재여야 하고, 고시나 뭐 이런 큰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만 바라보며 일편단심인 한 여자의 사랑을 받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집 아들이지만 남자가 별로 꿀릴 것 없이 힘의 균형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가진 게 없으면 머리라도 좋아 배운 거라도 많아야 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잘 살아보려는, 달동네를 벗어나려는 야망만 가진 인간에게 10여 년 전에는 지금처럼 관대하지 않았다. 이런 인물에 대해 냉혹했다. <비밀남녀>의 도경과 하등 차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서울의 달>의 '홍식'은 신데렐라가 되려다 쓰레기통 옆에서 죽는 꼴이 됐다.

▲ <서울의 달>의 홍식(한석규 분/왼쪽 끝)
ⓒ mbc
1994년 MBC에서 방영했던 <서울의 달>의 '홍식'. 한석규가 연기했던 홍식은 당시 거의 무명에 가깝던 한석규를 톱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을 정도로 뛰어난 등장인물이다. 완성도 높은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무늬만 보면 홍식과 도경이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홍식 또한 시골 출신으로 중학 중퇴가 학력의 전부이면서 잘 살아보고자 하는 방법으로 택한 게 여자 잘 만나 인생역전을 이루는 것이다. 돈 많은 과부 만나기 위해서 춤 선생한테서 제비수업을 받고 있었으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도경보다는 그래도 노력을 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홍식은 신데렐라가 되지 못하고, 그가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달동네 쓰레기장 옆에서 칼에 맞아 죽는다. 그의 꿈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여자를 만나 잘 살아보려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분상승을 꾀한 응보로 해석할 수도 있고, 당시 남자 신데렐라에 대해 인색했던 우리 사회의 견고한 벽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결말이었다.

남자 신데렐라가 양산되고 있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작가가 너무했다, 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결론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현실을 반영한 결론이었고, 지금의 사회적 현실 또한 도경보다는 홍식의 경우가 더욱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드라마가 점점 가벼워지고 단순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보여주기보다는 '욕망'을 보여주는 데 충실하고 있다. 멋지고 잘 생긴 남자를 만나고, 돈 많고 잘 나가는 여자를 만나는 것, 이 모두는 우리 속에 내재된 욕망인데, 이런 걸 볼 때는 공감되고 그래서 재미있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왜냐하면 현실은 그게 아니고, 인생은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도경'이 욕망이라면 '홍식'은 현실이다.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도 한 편 정도는 나올 법한데…. 10년이 지나서도 <서울의 달>처럼 여전히 기억될 수 있는 그런 드라마가 없다. 인생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시청자의 욕구를 반영한 그런 인물을 만들어냈을 뿐 우리 삶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부족하기에 드라마는 어떤 면에서 애들이 머리 식힐 때 보는 만화 수준으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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