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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텔레콤 노사가 대규모 명예퇴직 실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조합원들은 24일부터 파업 찬반 투표에 돌입했고 '단결투쟁'이 적힌 노조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다.
하나로텔레콤 노사가 대규모 명예퇴직 실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조합원들은 24일부터 파업 찬반 투표에 돌입했고 '단결투쟁'이 적힌 노조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훈
"외자 유치하기 위해서 그렇게 발벗고 뛰어다녔는데…. 외국 자본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지난 2003년 9월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가 돼 외자 유치전을 벌였던 하나로텔레콤 노동자들과 경영진들. 그러나 2년여 만에 노사는 등을 돌렸다. 하나로텔레콤 노동조합은 24일부터 사측의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방침에 반발, 파업을 예고하고 찬반을 묻는 조합원 투표에 돌입했다. 노조 집행부는 또 이날로 8일째 철야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서울 중구 본사 사옥에서 만난 노조원들은 사측의 인력 구조조정 방침의 배후는 외국인 대주주들이라고 굳게 믿는 분위기였다. 전체 직원의 25%를 정리하는 강도 높은 명예퇴직으로 하나로텔레콤을 좋은 매물로 만든 뒤 인수·합병(M&A) 시장에 내놓기 위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본사 건물 앞에서 만난 노조원 이아무개(36)씨는 "2년 전 유동성 위기에서 외자 유치안을 주주총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전체 직원들이 위임장을 들고 소액주주들을 찾아다닌 끝에 결국 해냈다"며 "그렇게 해서 회사를 살린 직원들을 이제는 내보내겠다고 하니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함께 있던 정아무개(34)씨도 거들었다. 정씨는 "당시 직원들이 발품 팔아 10만 소액주주를 한명 한명 찾아 다녔던 것은 10년 이상 장기 투자하겠다는 AIG-뉴브리지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지금 보면 이들이 장기적인 기업의 성장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는 투자자본이라기보다 단순한 투기세력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년 전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려던 LG를 정조준했던 '타도 LG' 노조원들의 구호는 이제 '투기자본 AIG-뉴브리지 타도'가 됐다.

"장기 투자 약속 믿었는데 배신감 느껴"

파업 찬반 투표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
파업 찬반 투표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 ⓒ 오마이뉴스 이승훈
하나로텔레콤은 지난 13일 창사 이래 첫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전체 직원 1500명 중 25%에 달하는 375명을 명예퇴직을 통해 감축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한 것이다. 명예퇴직 신청자에게는 기본급 1년치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지난 9월에는 임원 55명에 대해서도 일괄사표를 받은 뒤 선별 수리하는 방식으로 절반가량인 25명을 내보냈다. 사실 이 때부터 일반 직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두고 노조 측은 단기에 주가를 올려 매각차익을 극대화하려는 외국인 대주주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의 입김 때문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김정규 노조위원장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는 다양한 자구책이 있을 수 있고 인력 감축은 최후의 카드여야 하는데도 사측은 다른 방법을 찾지 않고 곧바로 인력 감축안을 내놓았다"며 "이는 주식을 팔고 손을 떼려는 외국인 대주주들이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먹음직스런 사냥감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은 미국계 사모펀드로서 하나로텔레콤 지분 39.6% 보유하고 있다. 회사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이사회 멤버는 8명중 5명이 외국인 대주주측 인사로 구성돼 있는 상태다.

실제로 하나로텔레콤의 구조조정은 올들어 상시적인 화두였다. 올 상반기부터 하나로텔레콤은 신규사업에 대한 투자를 보류하고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데 중점을 둬왔다.

외국인 대주주 입김에 올 들어 계속된 구조조정

지난 4월에는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삼으려던 휴대인터넷 와이브로 사업을 갑자기 포기했다. 정부로부터 사업권까지 따낸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핵심 수익기반인 초고속인터넷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실은 대규모 투자 부담과 성공 가능성에 회의를 느낀 외국인 주주들의 반발이 더 큰 이유였다.

이어 이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윤창번 당시 사장도 지난 8월 임기를 1년이나 남긴 상태에서 중도 퇴진했다. 윤 전 사장은 당시 회사의 구조조정 방향을 놓고 외국인 대주주들과 상당한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태 노조 정책실장은 "외국인 대주주들은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보다는 단기 수익을 얻기위해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존 초고속인터넷 사업에 안주하겠다는 선택을 했다"며 "이는 회사를 장기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생각이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노조 측은 다음 수순은 내년 1월 합병이 마무리되는 두루넷에 대한 구조조정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진은 대규모 감원은 회사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두원수 홍보실장은 "지금까지 누적 적자가 8600여억원이나 되고 올해도 1000억여원의 적자 발생 예상돼 총 누적적자는 곧 1조원을 넘길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회사도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등 노력을 해 왔고 이제 남은 건 인건비 절감밖에 없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자구 계획은 경영진이 마련한 것이지 외국인 대주주들의 의도에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매입시 주가 3200원을 사수하라

하지만 하나로텔레콤의 외국인 대주주가 매각을 염두해 두고 시세차익 극대화를 위한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AIG―뉴브리지가 하나로텔레콤과 두루넷을 묶어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한꺼번에 매물로 내놓을 것이라는 게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AIG-뉴브리지는 2003년 당시 주당 3200원에 하나로텔레콤의 주식을 인수했지만 최근 주가는 2700원대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뚜렷한 호재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뾰족한 성장 동력은 없이 핵심 사업인 초고속인터넷은 절대 강자 KT를 비롯, 데이콤과 종합유선방송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파워콤까지 가세하면서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미래 전망은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주가 부양책은 인력 구조조정뿐이라는 지적이다. 또 하나로텔레콤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기업들의 구미를 당기기 위해서도 인력 감축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뉴브리지캐피탈 측은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박병무 뉴브리지캐피탈코리아 사장은 "(이번 구조조정은) 회사의 장기적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하나로텔레콤 경영진이 결정한 것"이라며 "시중에 떠돌고 있는 매각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뉴브리지캐피탈 "매각설은 사실 무근"

사실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들은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해 대부분 인력 감축의 길을 걸었다. 국내에서만 해도 지난해 10월 미국계 펀드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에서는 직원 500명가량이 명예퇴직하는 등 외국계 펀드에 팔린 은행들은 대부분 대규모 인력 감축을 거친 후 다시 팔렸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이윤을 추구하는 사모펀드가 단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올리기 위해 인력을 줄이는 것은 가장 쉽고 일반적인 방법"이라며 "외국자본과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외자유치만을 외쳤던 것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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