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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산물을 살리기 위해 제주부터 서울까지 걸어올라오는 '소달구지 대장정'이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된 '쌀협상 비준동의안'은 농민의 한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조열제 (사)한국생협연대 가공 생산자 대표가 '소달구지 대장정'의 대전~공주 구간을 함께 한 뒤 '우리쌀 살리기'에 소비자가 나설 것을 촉구하는 소감문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우리쌀 지키기 우리밀살리기 소비자 1만인대회 추진본부'가 지난 20일 대전에서 '소달구지 순례단 중간보고 대회'를 열고 있다.
'우리쌀 지키기 우리밀살리기 소비자 1만인대회 추진본부'가 지난 20일 대전에서 '소달구지 순례단 중간보고 대회'를 열고 있다. ⓒ 심규상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오늘(22일)도 새벽 미명부터 걷고 계실 소달구지 행렬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히 아파옵니다. 마치 부정맥을 앓는 환자처럼 말입니다.

하루 반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오늘 오전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이부자리에서 뒤척였습니다. 군에서 행군을 한 뒤 처음 걷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 속도가 무려 시속 7~8km 정도라니 건강한 남정네도 쉽지 않았습니다. 같이 걷던 아들 녀석은 힘들면 소달구지나 얻어 탈 요량으로 참가했다가 '아버지에게 속았다'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답니다.

순례단 일행을 이끌고 계신 박종권 단장님과 소영석 총간사님은 이 길을 22일째 걷고 계십니다. 저를 포함해 일행의 대부분은 숙소에 도착할 저녁 무렵이면 파김치가 돼 밥 먹기 무섭게 눕기에 바쁩니다.

그렇지만 총단장님과 총간사님은 하루 평가회와 다음날 일정 준비 상황을 확인하고 지역 농민회 관계자, 생산자 방문을 접견하며 일행을 위로하는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서 자리에 주무셨습니다.

21일 밤 저는 몸이 극도로 피곤했지만,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저분들은 무슨 힘으로 저렇게 걷고 있을까? 왜 걸어야 하는 걸까? 걷기만 하면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들은 소달구지 행사를 시작할 때부터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들인데 그 밤에 반짝이던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22일전 해남에서 발대식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제주 출정식을 하고 다음날 발대식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동지들은 해남의 땅끝 마을로 모여들었습니다. 우리 쌀순이도 도착했고 보급간사 곽해상님은 소를 지키기 위해 풍찬노숙을 했습니다. 물론 추위를 이겨야 한다는 명목으로 소주도 엄청 드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소달구지는 30분만에 쌀순이의 무릎 관절염 때문에 사람이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기계로 농사를 짓는 요즘 시대에 달구지를 끄는 소도 드물 뿐더러 걸을 일도 별로 없었을 소의 형편을 생각하면 아스팔트를 걷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던 듯합니다.

이 일로 많은 분들이 과연 소달구지로 800km 대장정을 마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염려는 소달구지 행사를 넘어 현재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중첩됐습니다.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와 신자유주의 파고 속에서 이미 국제 경쟁력을 잃어버린 우리 농업을 살리자는 외침이 비교우위론에 젖어 있는 관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차를 타면 6시간이면 도착할 서울길을 30일에 걸쳐 소달구지와 함께 걷는 것이 저들에게 얼마나 무모하게 보일까. 속도와 성장과 국제 경쟁력에 사로잡힌 경제 관료들에게 우리의 행진은 얼마나 비경제적으로 보일 것인가."


"안타까운 눈물이 아니라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싶습니다"

대전 행사장에서 충남 생산자 대표 양선규님은 이렇게 울먹이며 호소했습니다.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어유, 소달구지 행렬을 보니 눈물이 나유."

해남 땅에서 밤새 소를 지키며 여물을 챙기시던 이 분의 눈물이 제겐 잘 걷지 못하던 쌀순이의 눈물 같아 보였습니다. "우리 생산자들 불쌍해유, 소비자 여러분이 지켜 주셔야 해유." 그리고 눈물만 주룩 주룩 흘리셨습니다.

그렇지만 흐르는 눈물에 비관만 담겨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남 땅을 출발한 소달구지 일행은 충남 공주를 지나 서울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걱정과 불안을 안고 출발했던 소달구지 일행은 지금 한국 농업 희망의 쌀부대를 싣고 홍천, 과천을 지나 서울 여의도에 입성하기 위해 오늘도 걷고 있습니다.

1000만 소비자 여러분, 그동안 400km에 걸친 대장정을 하느라 발가락 지문이 닳아 없어져 버리고, 발톱이 너덜거리고, 티눈에 물집이 겹쳐 너덜너덜해진 소달구지 일행들을 구합시다. 전국 농민의 탄식과 바램을 싣고 온 소달구지를 소비자 여러분이 구해 주셔야 합니다.

소달구지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한국 농업의 상징입니다. 소달구지는 농촌의 희망을 싣고 여의도를 향해 걷고 있습니다. 한국 농업의 희망은 우리 민족과 자손의 터전입니다. 여기에 여러분의 격려와 위로, 염원이 함께 담긴다면 경천동지할 함성이 울려 퍼져 비관과 불안과 비교 우위론, 패배주의가 단숨에 물러갈 것입니다.

저는 울보가 됐습니다. 양선규님의 말씀에서, 총단장님과 총간사님의 지문 없는 발바닥에서, 낙오할 것 같았지만 구간을 끝까지 완주했던 아들을 보며, 대전~공주 구간 걷기에 참여한 연로하신 진경희 회장님의 걸음을 보면서 바보같이 눈물이 자꾸 났습니다.

앞으로는 안타까운 눈물이 아니라 소비자 여러분의 참여와 격려로 인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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