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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지부(지부장 송경호, 이하 안양민예총)의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른다. 지난 10월 15일 재래시장 활성화란 기치를 내걸고 벌어졌던 제3회 장터문화제가 끝난 지 며칠도 되지도 않아 아직도 분주한 모습이다.

한 축제가 끝나면 정리할 요소들은 깔끔하게 해야 뒷일이 없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 올해 세 번째인 장터문화제는 적잖은 뒷얘기들을 남겼다. 시 당국의 차별과 소외로 이렇다 할 문화행사가 거의 없는 만안구에서 어느덧 3년째 계속되는 행사이기에 시민들의 기대와 호응 역시 뜨거웠기 때문이다.

시민들과 어린이들의 열렬한 참여, 그 한가운데서 뜨거운 열정으로 땀 흘린 예술인들, 불상사라도 생길새라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닌 진행자들. 그들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살펴보았다.

▲ 페이스페인팅과 도예체험을 하기위해 몰린 사람들.
ⓒ 김신
1. 장터문화제 일등공신, 재래시장 상인들과 시민

‘장터’문화제의 주인공은 역시 장터 사람들이다. 떡볶이 축제에서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떡볶이 아주머니들, 놀이패의 길놀이에서 흥겹게 춤을 추던 시장 상인들은 축제의 요소를 한층 배가 시켜주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아이들에게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구경거리다. 장터의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체험마당은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쪽 손이 없는 장애를 가진 회전관람차 아저씨는 불편한 몸으로 쉴 새 없이 관람차를 돌려야 했다.

고되지만 아이들과 노느라 힘든 줄도 모른다고 했다. 당초 일정은 오후 5시까지였지만 아이들의 성화에 힘입어 몸이 힘든지도 모르고 땅거미가 진 늦은 8시까지 관람차를 돌려주었다.
얼굴에 온갖 그림을 그려주는 페이스 페인팅이며, 생전 처음 만난 물레 체험은 아이들을 한껏 들뜨게 했다. 자신이 만든 도자기를 하나씩 손에 쥔 아이들은 마치 보물을 한아름 안은 양 즐거워 하기도 했다.

▲ 도예체험을 한 아이가 자신의 작품을 들고 환하게 웃는다.
ⓒ 김신
2. 사람을 위해 차도를 막다

이날 장터문화제의 최대 이벤트는 ‘문화의 거리’ 지정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벽산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드는 것.

행사를 앞두고 경찰 및 시 당국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지만 끝내 ‘차량 통제’는 불발로 끝났고, 4개 차선 가운데 2개 차선 정도를 ‘통제’하는 선에서 절충을 이뤘다. 하지만 장터문화제 준비위원들은 이 정도로 성이 차지 않았다. 차량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모처럼의 축제를 도로 한 귀퉁이에서 열 수는 없는 일.

아울러 ‘차없는 거리’가 동안구의 평촌 신도시에만 있으라는 법도 없기에, 행사의 열기가 뜨거워진 틈을 타 몰려든 만안구 주민들과 함께 차도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마을버스는 통행할 수 있도록 길 한 쪽은 내주었다.) 차도가 막히자 시내는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축제 속에 녹아 있는 시민들은 즐겁기만 하다.

늘상 차량에 떠밀려 좁은 인도를 어깨를 부딪혀가며 걷던 주민들은 모처럼 뻥 뚫린 도로 위에서 자유롭게 축제를 즐겼다. 어느덧 ‘벽산로의 좌장’이 된 안양중앙성당 주임신부인 정영식 신부는 ‘벽산로가 최초로 통제되고 흥겨운 문화 행사가 펼쳐진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중앙 성당에서 축제를 즐기던 시민들에게 막걸리 한잔씩을 무료로 나누어 주기도 했다.

3. 질펀한 축제의 끝-막걸리 한 잔과 마당극

본 무대의 화려한 공연이 끝나고 중앙성당 마당에서는 광주에서 올라온 놀이패 신명의 마당극이 이어졌다. 마당 곳곳에 설치된 천막들에서는 삼겹살을 굽거나 갖은 음식을 만들어냈다. 진행자와 주민들, 예술가들이 한데 얼려 막걸리 잔을 부딪히고, 출출한 배를 갖은 음식으로 채웠다.

뒤이어 성당에서 있던 <평화와 돌봄을 위한 연합음악회>가 끝나고 그때까지 기다리던 놀이패 신명의 강강술래로 대단원의 막을 장식했다. 음악회를 보고 나온 300여명의 신자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신명의 놀이판에 함께 어울린다.

온 시민들이 손에 손잡고 강강술래를 불렀으며, 즐거운 아이들과 흥겨운 어르신들의 모습은 축제의 즐거움을 한껏 맛보고 있는 웃음의 도가니였다. 한 시민은 “모름지기 잔치란 것은 이런 것”이라며 “그저 등 따습고 배부르고 신명나면 그게 최고”라며 연신 막걸리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4. 축제의 숨은 공신, 17살 고등학생들

장터문화제가 무사히 끝나고 아무 사건 사고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천안대 자원봉사 동아리 학생들과 충훈고 자원봉사 학생들 25명의 공이 매우 컸다. 아무 조건없이 축제 마당 곳곳에서 하루 종일 땀흘린 이들 대학생과 17살 청소년들은 그 자체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들은 축제마당에 몰려든 꼬마들을 챙기기도 하고, 각종 무거운 것들을 나르기도 하고, 행여 오가며 사고라도 날새라 숨돌릴 틈 없이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특히 친구들은 학원이다 과외다 점수를 올리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있는 동안 무려 10시간 가량을 길거리에서 허비한 이 아이들은 왜 축제 현장에 나타난 것일까?

한 학생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책 속에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라며 “실제 그랬다”고 빙그레 웃었다. 교육현장이 온통 병들어 있어도 이처럼 아름다운 학생들이 있는 한 미래를 비관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다.

▲ 벽산로에 무대를 세우기 위해 충훈고 자원봉사 학생들과 스텝들이 분주하다.
ⓒ 김신
5. 남은 후일담

이번 축제에서의 총 기획자인 안양민예총의 김영부 사무국장은 ‘체험마당에서 아이들이 신나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며 ‘앞으로는 조금 더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시민들이 함께 즐기고 어울릴 수 있는 체험의 장을 더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행사 당일 아침 행사장에 부칠 포스터를 잃어버린 사건은 최악의 후일담이다. 또 하나 잊지 못할 일은 마침 이 날은 이웃한 안양1번가 축제와 겹쳐 그 교통체증으로 출연자들의 지각사태가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일이다. 다행이 지각은 없었지만 모두가 도착하기 전까지 진행진이 받은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찰과 합의한 벽산로 통제시간이 딱 5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어, 오후 2시부터 모든 스텝들이 총동원돼 무대와 음향, 소품세팅, 출연자 리허설까지 단 2시간 만에 끝낸 것 역시 ‘경이로운 일’로 꼽힌다. 그 결과 4시가 조금 넘어서 공연이 시작 될 수 있었다.

숱한 에피소드와 경이로운 후일담을 남기고 축제는 성황리에 끝났다. 짧은 시간 주어진 엄청난 노동에 지금쯤 약간의 휴식을 취해야 할 민예총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음 주(29일)에 있을 <꿈나무 어린이 축제>가 어느덧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 이들이 있기에 축제 불모지인 만안구 벽산로의 축제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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