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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선생의 육필 원고 가운데 하나. 결혼초에는 아내가 다소 고생스러웠지만, 이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짠하다.
천상병 선생의 육필 원고 가운데 하나. 결혼초에는 아내가 다소 고생스러웠지만, 이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짠하다. ⓒ 사진제공 : 아래아글꼴연구소
천상병 선생의 육필이 디지털폰트로 다시 살아났다. 이 찬란한 가을 중모리 10월에, 시인의 정신이 깃든 찻집 <귀천>이 다시 문 연 소식과 함께 접한 아래아글꼴연구소의 장거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아래아손글씨복원총서1 천상병/귀천> 표지
<아래아손글씨복원총서1 천상병/귀천> 표지 ⓒ 이동환
<아래아손글씨복원총서1 천상병/귀천> 디지털폰트 수록 CD와 함께
<아래아손글씨복원총서1 천상병/귀천> 디지털폰트 수록 CD와 함께 ⓒ 사진제공 : 아래아글꼴연구소
총서를 살펴보고 계신 목순옥 여사와 왼쪽은 김주영 실장, 오른쪽은 전재홍 과장
총서를 살펴보고 계신 목순옥 여사와 왼쪽은 김주영 실장, 오른쪽은 전재홍 과장 ⓒ 사진제공 : 아래아글꼴연구소
기자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산꼭대기, 아래아글꼴연구소까지 직접 찾아가 수석연구원인 김주영 실장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시인을 추모하는 마음 누구 못지않게 크거니와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였다.

한글에 대한 자부심으로 시작했습니다

왜 하필 천상병 선생의 육필복원이 첫 번째인가 하는 질문에 김주영 실장은 뜸들이지 않았다.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답게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수석연구원 김주영 실장
수석연구원 김주영 실장 ⓒ 이동환
"손글씨를 디지털폰트로 개발하고자 했을 때 제일 먼저 천상병 선생의 육필을 복원하기로 한 이유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살다 간 시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난이 직업이라고 스스럼없이 말씀하신 분 아닙니까? 물론 우리 연구의 태동이 찻집 <귀천>에서였습니다. 따라서 시인 가운데 제일 먼저 누구의 육필을 디지털폰트로 복원하느냐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지요."


손글씨 디지털폰트 개발은, 안양대학교 홍승완 교수와 국민대학교의 김민 교수, 그리고 직지소프트 김주영 실장이 혼신을 바친 산물이다.

죽은 이의 흔적(육필)을 후대에 디지털로 전하고, 산 이의 성장 과정을 남기며, 우리 한글의 우아한 '손글씨맛'을 살려내기 위해 큰 뜻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다.

길게는, '국민 1인 1폰트 갖기 운동'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단다. 물론 아직은 먼 훗날 일이다. 지금 현재 두 번째 작업 중인 폰트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988년 8월 15일, 복역한지 20년 20일 만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신영복 교수(성공회대학교)의 육필이다. 20여 년 동안 엽서로 남긴 옥중철필 손글씨를 그 처절함까지 복원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으며 내년 3월이면 선을 보일 수 있단다.

"이번에 저희가 내놓은 천상병 선생의 작품집은 이를테면 유고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달빛', '구름', '참는다' 등 미발표작을 포함해 총 137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폰트 CD는 윈도우즈용과 맥킨토시용 둘 다 들어있고요. 한 가지 말씀 드릴 것은, 일전에 어떤 분이 보도 자료를 들고 대형서점에서 이 작품집을 찾았다는데요. 수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보급은 저희 홈페이지를 통해서 온라인으로만 하고 있습니다."

<아래아손글씨복원총서1 천상병/귀천>이 제공하는 폰트 CD로 컴퓨터에서 천상병 선생의 복원된 육필로 글을 써볼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이다. 유고집은 제 1장 빛, 제 2장 하늘, 제 3장 땅, 제 4장 삶, 제 5장 넋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4년 3월부터 천상병 선생의 생전 육필원고 수집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발굴된 총 424자의 손글씨를 토대로 한 벌(2350자)의 완성된 디지털폰트가 완성되기까지 5개월이나 걸렸다.

육필원고에서 수집할 수 없었던 약 2000여 개의 나머지 글자들은 구조가 같은 경우를 참고하여 자모음 유닛들을 조합하거나 변형시키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 글자씩 완성해 나갔다. 15편의 시와 1편의 평론을 기초로 한 복원 작업은, 모든 수기원고가 같은 날 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글씨를 써 내려가는 속도와 필기도구에 의한 굵기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낱글자들의 기울기, 크기 등의 조정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단다.

고인의 육필 서체를 수집하여 디지털폰트로 복원시킨 사례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그 유래가 없는 일로써 가치가 있다 하겠다. 무엇보다도 기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천상 시인 천상병 선생의 육필이 복원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반가울 따름이다. 이 기회에 많은 젊은이들이 천상병 선생의 시 세계와 넋에 드리워진 영롱한 시어들을 만나보기 바랄 뿐이다.

천상병 선생의 육필로 직접 글을 써볼 수 있도록 디지털폰트를 개발한 아래아글꼴연구소에 시인을 흠모하는 한 사람으로서 깊이 찬탄을 보낸다. 그저 이 일이 널리 알려져 많은 문인들, 꼭 남겨야 할 만한 분들의 육필이 디지털폰트로 영원히 남게 되기를 또한 진심으로 바란다. 한글을 사랑하는, 한글에 대한 자부심으로 연구를 시작했다는 그 첫 마음 또한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미리 보기 클릭 ☞ 총서1 천상병/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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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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