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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한명숙(열린우리당) 의원이 2005년 국정감사 후기를 보내왔습니다. <편집자주>
가을이 다가온 듯싶더니 벌써 추워졌습니다. 간사한 게 사람이라 한 여름의 더위가 엊그제 같은데 이미 온 몸으로 따뜻함을 그리워합니다. 가을이 결실의 계절인 만큼 정부나 국회에서도 가을은 수확의 계절입니다. 농부의 한여름 농사가 벼 베기 작업으로 맺음 지어지는 것처럼 국회나 정부 역시 일 년 동안의 수고로움을 국정감사로 마무리합니다.

사실 국감의 본래 목적은 더 나은 정책을 만들기 위한 정부에 대한 국회의 견제이자 정책 조언입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국감은 본 취지와 어긋난 정략적인 비리 폭로나 대안 없는 일방적 흠집잡기식 질책이 난무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국감에도 미간 찌푸려지는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년에 비해 비교적 정책 국감이 시행되었다고 평가 받았습니다. 점점 국회도 소모적 싸움이 아닌 생산적인 정책국회로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작고 더디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통일외교통상부위원회 소속입니다. 흔히 줄여서 '통외통'이라고 부릅니다. 통외통 국감은 국내국감과 해외국감으로 나뉘어 집니다. 국내 국감은 통일부, 외교통상부 정책에 대한 전반적 감사가 주된 업무이며 해외국감은 해외에 주재하고 있는 대사관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번 국내 감사의 핵심 이슈는 6자회담이었습니다. 기실 6자회담 성사는 역사를 우리 스스로 주도할 수 있게 된 커다란 계기이자 자주외교의 시발입니다. 충분히 평가 받을 만한 일입니다. 이번 국감에서는 앞으로 평화협정 시대에 걸맞게 한국의 자주외교를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을 요청했습니다.

지금까지 해외국감은 한반도 주변의 4대 강국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번 국감부터 약소국에 대한 관심과 격려의 차원에서 중동반이 신설되어 이집트, 터키, 아랍에미레이트 등에 대한 해외 국감이 시행되었습니다.

저는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를 다녀왔습니다. 무척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시차적응과 음식문제로 많이 힘들었지만 충분히 보람을 느낀 국감이었습니다.

영국유학생 사망사건 해결 실마리 풀어

영국에서는 이미 보도되어 잘 알려진 고 이경운씨의 사망에 대한 의견 청취가 기억에 남습니다. 2000년 런던에 유학 중이던 고 이경운씨는 그 해 9월 29일 통학버스에 치여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현지 경찰은 1차 부검 뒤 단순 교통사고로 발표했지만 유가족은 사망 경위와 경찰 조사에 석연치 않은 점을 들어 장례를 거부해 지금까지 시신이 냉동 보관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저희 위원회는 유족들을 국감장에 출석시켜 의견을 청취하는 한편, 대사관의 미온적인 대처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한국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전문가들이 현지를 방문해 이군의 시신을 부검할 수 있도록 대사관 측이 현지 경찰과 합의했습니다. 5년 동안 묵혀 두었던 사건의 해결 실마리가 풀린 것 같아 참으로 다행스러웠습니다.

독일에서는 통일의 현장 브란덴부르크를 방문했습니다. 동서를 가르고 있던 장벽은 통합의 광장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독일 통일의 현장을 보면서 조국의 현실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가 독일 통일에서 배워할 점은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을 허무는 일입니다. 신뢰가 구축되지 않고서는 우리가 염원하는 통일은 결코 가까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한국의 대북 정책을 일방적 퍼주기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통일 전, 당시 서독정부는 73년부터 89년까지 약 16년 동안 574억불을 동독에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지원에도 불구하고 통일이후 90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1조 4천억이라는 천문학적 통일비용이 추가로 소요되었습니다.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의 경제 차이는 8대 1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통일 독일정부는 아직까지도 심각한 경제 침체에 빠져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남과 북의 경우 현재 경제의 차이는 32대 1입니다. 독일 통일 당시 보다 무려 4배가 넘는 경제적 차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과 유사한 흡수 통일은 지금 독일이 처한 곤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처한 문제에 견주어 보건데 현 시점에서 흡수 통일은 불가능하며 있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윈윈하는 남북경협으로 통일 대비해야

독일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한반도의 통일에 대비해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단순 지원성 협력을 넘어 북한의 경제가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북한 사회에 대한 개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방식은 남북이 경제협력 공동체를 만들어 북한 경제의 활성화와 더불어 남한의 경제도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명실공이 남북이 윈윈하는 경제 협력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경협을 통해 북한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일방적인 지원성 협력이 아닌 남의 경제 또한 북을 통해서 살아나는 윈윈 전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체제 대결이 아닌 민족 공존과 공영의 관점에서 통일을 기획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독일의 국감 현장 체험 또한 참으로 유익했습니다. 지구의 환경오염으로 인한 온난화로 국제적 환경 재난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 환경문제에 대한 대비는 우리가 꼭 배워야할 점입니다.

독일의 경우 이미 의회에서 핵발전소를 폐기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대체 에너지 개발로 전환하여 신재생 에너지(태양, 풍력, 수력) 개발과 휘발유가 아닌 자연식물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방식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에너지 대비 11%나 된다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해외국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국의 정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어지럽습니다. 하지만 이번 해외 국감을 통해서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역동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계 역사상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이 만큼의 진전된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는 단연코 한국밖에 없습니다. 비록 지금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이는 더 나은 정치를 만들어 가는 변화의 기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세계를 통해서 본 한국은 여전히 희망차고 건강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나라를 만들어 낸 우리는 참으로 위대한 국민입니다. 저는 국민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더 좋은 나라, 자랑스러운 한국을 만들기 저 역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서프라이즈, 노하우21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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