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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개질하는 행복한 소년 크리스토프는 이제 겨우 9살 반이다.
ⓒ 배을선
"뜨개질은 언제 어디서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고 또 내가 직접 만든 창작물을 입을 수 있어서 실용적이다. 앞으로 계속 뜨개질을 할 생각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크리스토프 쉔. 그의 취미는 뜨개질이다.

놀라운 건 그의 나이가 고작 9살이라는 점이다. 크리스토프는 올 2월, 학교에서 뜨개질을 처음 배운 뒤 엄마를 졸라 뜨개질바늘과 회색 실을 구입한 뒤 늘 뜨개질거리를 끼고 다닌다. 그는 최근 자신의 장난감 중 하나인 중세시대 기사의 쇠사슬로 된 갑옷에서 모티브를 얻어 니트 갑옷(?)을 완성했다. 몸통을 제일 먼저 만든 후 팔을 붙인 뒤, 다리 보호대와 장갑, 양말도 완성했다.

그는 뜨개질을 하기 위해 특별히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오후 저녁 시간대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동시에 뜨개질을 한다. 또하나 놀라운 건, 이 뜨개질이 그의 취미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쉔 가족의 특별한 교육관

빈에서 자동차로 30분정도 떨어져있는 전원마을 브룬(Brunn)에 사는 쉔 가족.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인 게오르그 쉔(43)과 품질 컨설턴트인 아내 가비(41),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 크리스티나(12), 그래픽디자이너나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크리스토프가 이들 가족의 전부다.

크리스토프는 평범한 아이들과 같지 않게 일찌감치부터 여러 재능을 보이고 있지만 이들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의 자유의지다. 하겠다는 일 말리지 않고, 안 하겠다는 일을 강요 않는 것.

▲ 종이 뒷면을 재활용해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서 자신의 동화책을 만들었다.
ⓒ 배을선
크리스토프는 3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한 한번도 미술 과외를 받아본 적은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게 전부다. 그러나 그는 여태껏 수십 권이 넘는 그림책을 완성했다. 그는 항상 종이 뒷면을 재활용해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써나간다. 그 자신과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모티브가 된다.

크리스토프가 뭔가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다. 6살에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크리스토프의 의지였다. 학원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한시간씩 레슨을 받는데, 레슨비는 한 학기(약 6개월)에 200유로(약 25만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3년 반 정도를 꾸준히 음악학원에 다닌 크리스토프는 요즘 비틀스에 푹 빠져있다. 비틀스의 '오블라디 오블라다(Ob-La-Di Ob-La-Da)' '예스터데이(Yesterday)'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 등을 연주할 때 그는 신이 난다. 집에 손님이 오면 그는 부모를 졸라 으레 작은 콘서트를 연다. 그는 마지막 곡은 항상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며 작은 콘서트의 관객인 동네이웃들과 친척들은 9살 소년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 피아노를 배운 지 3년 반. 비틀스를 연주할 수 있게 됐다며 매우 좋아하는 크리스토프.
ⓒ 배을선
부모인 게오르그와 가비는 아들 크리스토프를 천재나 영재로 생각하지 않으며 남들보다 더 뛰어난 아이로 비교하지 않는다. 그들은 크리스토프를 하고 싶은 것을 언제나 열심히 하는 '행복한 아이'로만 부른다.

딸 크리스티나 또한 일주일에 한번씩 비엔나에 있는 연기학원에 다니면서 가수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춤과 노래, 연기와 무대매너 등을 배우는 크리스티나는 학원에 가지 않는 날에는 동네 꼬마숙녀들과 어울려 잡담을 하거나 책이나 컴퓨터에 푹 빠져 산다.

"쉔은 내 아들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 자신이 직접 뜬 니트옷을 입은 크리스토프. 니트 갑옷을 뜰 때 영감을 줬다는 중세기사 장난감.
ⓒ 배을선
그렇다고 크리스토프가 학교공부에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는 학교에서 집에 오면 제일 먼저 학교 숙제를 한다. 그 다음에 동네 꼬마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거나 롤러블레이드를 탄다.

가비는 아들 크리스토프가 또래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취미를 갖고 있는 것을 오히려 더 자랑스러워 한다. "우리 어머니 시절에나 뜨개질로 옷을 만들어 입었지 요즘에는 정말 다 사서 입는데 여자아이도 아닌 남자아이가 뜨개질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고 만족스러울 뿐"이라는 게 가비의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우리가 이 아이들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아이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주인이며 주체적으로 자라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산다면 부모로서 만족한다. 그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부모는 최선을 다해 이끌어주고 아이들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서로 기쁘다. 아이들이 밝게 자라는 게 남들보다 더 좋은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쉔의 부모처럼 오스트리아인들 대부분은 교육을 가치평가의 잣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오스트리아에는 과외학원이 아주 드물다. 교육은 교육일 뿐이다. 그런 단순한 사고가 아이들을 주체적인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해주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들은 부모의 삶과 자녀의 삶이 별개의 독립된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녀의 미래에 그들의 삶을 의지하지 않는다.

이들 쉔 가족에게 행복한 삶이라는 건 '누구보다 더 잘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삶이다. 이렇게 간단한 삶의 철학이 오스트리아에 왜 과외학원이 없는 지를 잘 설명해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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