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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지지도가 14%를 기록해 2년 만에 창당 초 수준으로 되돌아 갔다. 10%를 기록한 민주노동당과는 오차범위 이내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지지도 수치는 여당의 '바닥'으로 볼 수 있다. 만일 다음 수순이 있다면 그것은 구들장마저 내려 앉는 지지기반의 '붕괴'이다.

여당의 곤두박질은 결정적으로 지역 지지기반의 와해 때문이다. 먼저 여당의 주요 지역기반인 호남의 지지도가 하락해 민주당에 뒤집혔다. 또 다른 지역기반이었던 충청의 여당 지지도는 여타 지역과 차이가 없어져 지역기반의 의미가 사라졌다.

이제 남은 층은 순수 '개혁정서층'이다. 이제 지역이라는 차원에서 열린우리당의 본적은 없어졌다. 다만 지역색이 없어진 것까지는 좋은데 모든 지역에서 지지도가 내려간 '하향평준화'가 문제라 할 수 있다. 굳이 따지면 아직 호남 지지도가 그나마 타 지역보다 높아 과거의 지지에 대한 흔적만 남기고 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가진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연정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정치협상을 정치권에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김동진
바닥 친 여당, 구들장만 남았다

정치사적으로 볼 때 열린우리당에는 크게 5개의 민주화 세력이 모여있다.

먼저, 3김이라는 지역맹주에 반기를 들었던 반지역주의 민주화세력이 그 첫번째이다. 다음은 '국민의 정부'를 대표했던 DJ의 호남 민주화세력 중 전북 중심의 일부 세력이 있다. 또 독재시절 제도권 밖에서 민주화투쟁을 해온 재야 민주화세력이 또 한 축을 이룬다. 그리고 386운동권 민주화세력이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참여정부의 출범에 즈음하여 새롭게 부상한 '친노' 정서의 개혁당 세력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YS의 부산경남 민주화세력 출신이며, 3당 합당을 거부한 이후에는 반지역주의 민주화세력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민주화세력 대연합론'의 깃발을 들고 YS를 방문한 이후, 선거 때 부산에서의 눈물겨운 호소, 제왕적 지역맹주 정치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판단한 민주당과의 단절, 그리고 최근의 '대연정' 제안까지 분명히 일관된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은 '지역주의 극복을 통한 통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대가로 정치권력의 반을 내놓을 수 있다는 '진정어린' 의지를 밝혔다.

민주화 세력이 지역맹주를 축으로 결정적으로 분열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호남 민주화 세력을 중심으로 평민당을 만든 87년이다. 이러한 '87년 분열체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극복시도에 대한 평가에 앞서 몇 가지 짚어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지역기반인 호남과 노 대통령의 진정성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망국적' 지역주의는 사회경제적 '격차'에 기반한다.

진부할 정도로 명백한 진실은 한국의 산업화가 영남출신과 영남지역을 기반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발독재 세력의 '한 놈만 두들겨패기'에 걸려들어 차별과 소외의 대상이 된 것이 '호남'이다. 이렇게 지역을 축으로 생겨난 차별과 격차는 '갈등'의 벽을 만들고 3김 지역맹주 중심의 정치체제를 정당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산업화 독재세력의 차별과 소외에 대항한 호남주의는 그 자체로 '민주화 가치'를 상징하며, 호남민들의 지역맹주에 대한 충성과 산업화 중심의 지배질서에 대한 저항은 내적 정당성을 갖게 된다. 결국 개발독재에 의해 만들어진 지역간 격차는 이후 '빼앗기지 않으려는 영남'과 '살아남으려는 호남' 간 대립의 근본적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격차가 지금은 유효할까? 물론 아직까지도 경제관련 수치에서 지역간 불균형의 흔적은 짙게 남아 있다.

외견상 격차의 절대적 수준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눈속임이다. '수도권'이라는 비대한 경제권력의 존재가 지역간 격차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을 움직이는 수도권의 경제권력의 뿌리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영남자본에서 찾을 수 있다. 수도권 경제력 집중과 지역경제 황폐 속에서 격차가 줄어든 듯이 보여도, 질적인 면에서 영호남 격차는 해소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의 재계를 영남이 움직인다는 근거는 꽤 많다. 무엇보다 재벌급 대기업의 출신지는 영남이 다수이다. 그리고 그들 기업은 영남 출신에 의해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7월 자료(출처: <한경비지니스>)에서 한국의 100대 기업 CEO 100명 중 호남출신이 4명(영남출신은 43명)이었다. 2004년 초 <한겨레21>의 자료에서는 삼성, LG, 현대의 임원승진자 중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영남출신이 34%, 호남출신이 7%를 차지했다. 또 지난 9월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의 59개 계열사 임원 1639명의 출신지역 분포는 영남권 47.4%, 호남권 7.0%라는 처참한 결과였다. 인구비 기준으로 영남이 호남의 1.5배 수준인 것을 감안해도 영호남 재계 인사들의 불균형은 너무 뚜렷하다.

지역간 격차가 존재하는 한 지역대립은 여전히 유효할 수 밖에 없다. 지역이든 종교이든 민족이든 갈등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격차가 있으며, 그 격차를 방치하고서는 통합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념적 지역주의로 진화한 연고적 지역주의

지역주의 극복에 앞서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지점이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 시점 '지역주의'가 존재하냐는 것이다. 지역주의는 지역공동체주의, 또는 '애향심'으로서 그 자체만으로 청산의 대상이 되거나, 소멸할 만한 것은 아니다. 조국이 지정학적 개념에서 비롯되고,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꽃이 되듯이 말이다.

다만 한국 정치에 있어서 청산의 대상이 되는 지역주의는 '인물'을 매개로 한 비이성적 연고 중심 '지역맹주정치'이다. 그러나 3김 시대가 지나며 연고와 물리적 지리개념에 근거한 단순 '지역주의'는 그 위력을 상실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지역의 화신을 자처하며 특정 지역을 좌지우지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동서대립이 왜 계속되는 지에 대한 답은 '지역과 이념의 결합'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특정 지역이 오랜 동안 특정 노선을 가진 정치세력과 한 몸이 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과거 87년의 분열체제에서 지역과 정당은 단지 '맹주'를 매개로 한 지지관계로 지역대중의 '이념적 정체성'과 연관성이 희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2년 3당 합당 이후 보수적인 한나라당이 영남을 지역기반으로 하고, 민주당 등 개혁진보정당이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면서 물리적 개념에서의 지역주의는 이념적 지역주의로 진화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낮지만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호남은 여전히 한국 개혁진보 여론의 본산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질문에서 전 권역 중 유일하게 '양극화 해소(51.6%)' 노선에 대한 지지가 '성장 중심(47.1%)' 정책보다 높았다. 또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에 대해 '추진강행론(49.3%)'이 '시기상조론(46.9%)' 보다 유일하게 높은 지역 역시 호남권이다. 물론 영남의 경우, 특히 대구경북권을 중심으로 전반적으로 보수여론이 높다.

이 지점은 지역주의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역간 이념적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87년식 정당지형이거나, 아예 지역에 따라 이념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연고와 인물 중심의 선거행태'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청산의 대상이 되는 소모적 지역주의가 맞다.

그러나 현재는 지역의 이념적 정체성과 지지하는 정당의 정체성이 일치한다. 이는 물리적 지역통합이 불가능해 졌음을 의미하며, 곧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민의 '이념'이 바뀌어야 함을 의미하게 된다.

'영남보수, 호남진보'... 보수적 유권자의 보수정당 지지, 잘못인가

'영남 보수, 호남 진보'의 현상은 사실 많은 여론조사상에서 뚜렷하다. 또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역은 나름대로 이념적 차이를 보인다.

과연 특정 지역이 인물과 연고 중심의 파벌화를 벗어나 역사적, 지정학적 맥락에서 이념적 특성이 뚜렷해진 경우 이를 단순히 '지역주의'로 부르고 해체와 극복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논란이 된다. 쉽게 말해 보수적 지역의 보수적 유권자가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거냐는 것이다.

즉, 개혁진보 노선을 표방하는 정권이 보수적 지역의 유권자를 상대로 이미 이념적으로 분화된 지역특성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무장해제를 요구한다면 이러한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87년 체제에 근간한 지역주의 또는 지역 맹주정치는 이미 사라졌으며, 이제 '격차'와 '이념'에 근간한 새로운 사회경제적 노선대결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지역'은 비록 중요하다고는 해도 이념 대결의 하위 특성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경제적 격차로서의 '토대'와, 문화적 차이로서의 '이념'에 근거한 2005년 지역대립을 단지 정치구도의 문제로 여기고 제도권 정치의 틀에서만 접근한다면 이는 착오다. 이미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새로운 '탈산업화 가치'를 견지하는 세대에 의해 단순히 출신지역에 근거한 투표행태는 해체되고 있다. 또한 호남민들은 그들의 정치적 지지행태와 무관하게 진보적이다.

결국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386 및 그 이후 세대'와 '호남'은 개혁진보 정치진영의 입장에서는 지켜내야 할 정치적 자산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을 지역주의의 한 축으로 보고 청산의 대상으로 삼아 '대연정'을 통한 통합을 주장하는 것은 한국 정치와 '호남'에 대한 이해 부족이며 대선과 총선에서 보여준 호남민의 진정성을 모욕하는 꼴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오류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 호남민을 87년 당시의 연고적 지역주의로 다시 내모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호남, 개혁진보 진영이 지켜내야 할 정치적 자산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려 내놓은 '대연정론'은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호남마저도 다시 지역주의의 공간으로 되돌려 보내는 결과를 내놓았다. 사회경제적 노선의 결여 속에 어떤 새로운 형태의 방향도 제시하지 않고 지지기반만 상실한 만큼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실패로 기록될 만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민족중심적 협력'과 '대한민국 정통성 고수' 노선으로 분열해 있고, '성장중심'과 '격차해소'의 노선으로 분열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민통합의 목적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자산을 아우르는 새로운 대중노선의 창출과 사회적 대타협, 그리고 성과도출에 있지, 정치제도의 변경에 있다고 보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정당지형의 변화와 정치제도의 변경을 통한 지역주의 해체의 노력은 비록 수단으로서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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