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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을 앓고 있는 김동필 교수는 인생의 종착역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통원치료를 하며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김동필 교수는 인생의 종착역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통원치료를 하며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 정종인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노교수가 사랑하는 딸에게 보낸 한 장의 '눈물어린 편지'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슬처럼 영롱한 시어를 쏟아내며 한 평생을 교단에서 보낸 운정(雲汀) 김동필 교수(67)가 바로 그 주인공.

자신의 표현대로 '암'보다 더 무서운 '불치병' 판정을 받고 남은 인생을 초연하게 정리해가고 있는 그는 삶에 대한 경건함을 잃지 않고 제자들과 창작활동에 열중하는 등 '인생의 푯대'가 되고 있어 감동을 주고 있다.

명문사학인 전북 정읍 호남고에서 정년퇴직한 후에도 김 교수는 백제예술대학 외래교수로 후진양성에 기여하다 불치병이라는 암초를 만났지만 그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소망과 의연함이 묻어나 인터뷰 내내 숙연함을 더하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낙엽이 뒹구는 거리는 쓸쓸함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지난 주말, 전북 정읍시 상동 현대3차 아파트 앞 순복음교회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김동필 교수는 예전처럼 색바랜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약봉투를 들고 있었다.

반가운 해후. 그러나 지난해보다 초췌한 모습에서 풍문으로 들었던 병환소식이 사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백발의 노교수는 평소 자신의 애마(愛馬)였던 자전거를 타지 않고 느긋한 보행을 하고 있었다.

"편찮으시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근황은 어떠세요?"
"돌이킬 수 없는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평소처럼 운동하고 창작활동도 쉬지 않고 있어요."

근심 어린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김 교수는 불치병을 선고받은 일과 요즘 근황을 짧게 소개했다. 윤동주 시인이 일본에서 보냈던 그 가혹한 시간에 그를 지탱해준 것이 모국어로 쓴 시였듯이, 김 교수도 창작활동에 몰입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올 봄 서울 삼성병원에서 불치병 진단을 받은 김 교수는, 정보통신부에서 주관한 전 국민 편지쓰기대회에서 대상인 정보통신부장관상의 영예를 안았다. 자식들을 남기고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을 담은 '육필(肉筆)편지'가 세상에 태어나게 된 계기다.

시인이자 수필가로서 살아온 삶

운정 김동필 교수는 지난 1939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부안 농림고와 동국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호남고등학교 등 교직에서 후진을 양성한 김 교수는 정년퇴직 후 백제예술대학 등에 출강하며 시인이자 수필가로 주옥 같은 명작들을 '순산'했다.

'정읍시민의 노래' 노랫말을 쓰기도 한 김 교수는 <월간문학>에 수필 '죽의(竹意)'가 당선된 후, <월간 한국시>에 시 '정읍사' 등 3편이 추천되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내장문학회 창립회장, 전북문협 이사, 한국문인협회 정읍지부장 등 활발한 문학활동을 해온 중견 작가다.

아울러 김 교수는 정읍문화원의 의뢰를 받아 <정읍의 전설>을 지난 1991년 탈고한 후 지난 2001년 증보판을 발행한 것을 비롯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시집 <참으로 좋은 당신> 등 다수의 작품집을 출간했다.

전북수필문학상, 신아문학상, 정주시민의 장 문화장, 국민포장 등을 수상하기도 한 김 교수는 하얀대회(1978, 제1수필집), 그리움이 타는 길목(1980, 제2수필집), 풀잎의 축제(1984, 제3수필집), 정읍의 전설(1991, 전설집), 정읍지방의 민속(1992, 민속학), 억새풀하얀머리(1993, 제1시집), 석파 유종구 선생의 생애(1995, 전기), 아름다운 정읍(1996, 글모음), 참으로 좋은 당신(2001, 제2시집), 정읍의 전설 증보판(2001, 전설집) 등을 발표했으며 내고장 전통문화(1983), 수필과 함께(1985), 정읍시사(2001)의 공동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투병중임에도 김 교수는 각종 백일장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전주에서 열린 권위 있는 주부백일장에 정읍여성회관 문학반 제자들과 동행해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김 교수의 안타까운 투병소식을 듣고 가족과 함께 찾아오는 제자들을 맞는 일도 중요한 일과가 된 지 오래다.

"삶과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것도 처음에는 힘들지만 받아들이면 견딜 만합니다. 인간의 삶이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단아한 모습으로 학자의 길을 걸어온 김 교수의 쾌유를 비는 아름다운 기도와 마음이 모아지길 기대해 본다. 절망을 이겨내는 '기적'이 있기에.

<김동필 교수의 육필편지>

'살아 있음에 눈부신 오늘, 너를 부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보고픈 진아

그날 삼성서울병원에서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고서도, 병원문을 나서는 내 마음이 어찌 그리 가벼웠던지 나도 의심을 했었다.
불치란 곧 시한부 인생인데도…. 너는 아비의 병을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을 비치더구나. 그날 달리던 고속버스 차창에 어른거리던 너의 아련한 모습, 멀리 떠가는 흰 구름 한 점도 품위 있게 보이고, 지나온 내 인생 역정(歷程)이 주마등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날 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가슴에 시린 바람, 혼자 떠는 문풍지의 울음까지도 고통이었다. 불치란 말 한 마디를 두고, 회억(回憶)에 눈물짓는 나약한 사내의 몸부림이 측은해 보이기도 했단다.
병원문을 나올 때는 마음 후련했던 내가 집에 돌아와 우는 아이가 되었으니, 참 부끄럽더구나.

불덩이 같은 젖먹이 너를 업고, 눈발 흩어지던 밤길을 헤매며 병원문을 두드리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네가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인생 칠십 문턱에 들어선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은 자연스런 인과(因果)였다.
명확한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삶의 미분화(未分化)는 어려움을 부딪칠 때마다 내 귀에 대고, "삶과 죽음은 하나이니 초월해야지" 라고 속삭여 주었다. 인간의 삶이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단다.
내 몸, 내가 잘 못 다스려 얻은 병(病), 어찌 순명(順命)으로 받아 들이지 않으랴.

사랑하는 진아, 눈만 감으면 와락 달려드는 선연한 그리움인 너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내가 떠 안고 떠나고 싶단다. 나는 이제, "무위(無爲)뿐이다" 하는, 생각이 밀려 올 때면, 꼭 너를 떠올리며 남은 날을 새겨 간다.
잡다한 미혹의 불씨. '나'를 얼른 불태우고 싶고, 때론 인생을 마음껏 치장하고 싶은 환상에서 훨훨 벗어나고 싶다.
진아. 이 아비를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병을 앓아야 천국행 공부를 한다"던 구상(具常) 시인의 말도 있지 않더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죽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안 했더냐. 죽음이란 삶의 또 다른 표현이겠지.

진아. 넌 열심히 살아야 한다. 네가 그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을 내어 도서관에 들른다니 너무 반갑다. 깨어 있는 영혼에는 세월이 스며들 틈이 없단다.
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충만한 삶이다.
자기 인생에 월계관을 씌운 사람들은 설움의 자리마다 현명한 자기 공부에 충실했던 사람들이다. 네 삶의 영광은 너 자신의 고통을 먹고 자란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진아. 나는 어제 밤 촛불을 밝혀 놓고, 유서를 썼단다.
천길 절벽 앞에서 내 생애와 대화를 나눠 본 것이다. 그런데 유서를 쓰는 마음이 부끄러움 범벅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맑게 울리는 물결 한번 되어준 일 없고, 길을 잃은 자를 위해 내 몸 한번 태운 적이 없으니 사실 낯 뜨거운 유서가 될 수밖에…. 인생을 낭비한 죄가 너무 커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사를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땐 마음이 참 편하더구나. 도연명(陶淵明)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쓸 때,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인데도 벼슬살이보다 마음이 편하다" 했다는데 오늘 내 마음이 그 경지쯤 되었던 모양이다.
마음 속의 때를 칼칼히 씻어 비우고 썼던 유서여서일까.
골 깊은 죄의식에서 오는 허심탄회한 참회요, 고백이었을 뿐, 안개빛 원망은 한점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떠난 후, 눈물일랑 아예 거두고, 유서를 꺼내 읽는 것으로 이 못난 아비를 머리 속에서 지워 버려라.

진아. 며칠 남은 인생인지는 몰라도 마지막 주어진 삶을 후회 없이 알차게 마무리하고 싶다. 끝까지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에겐 반드시 새로운 의미의 부활이 약속된다.
나는 이 순간도 스스로 눈을 뜬 완전체(完全體)이고 싶다. 이성과 지성을 통해 내 마음의 운행을 지배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오늘도 범사를 잊고 플러스 발상을 부추긴다. 선현(先賢)의 빛나는 말씀이 이끄는 원력(願力)의 길을 가련다. 또한 내 투명한 비원을 사랑한다.
그리고 눈만 감으면 와락 달려드는 선연한 그리움인 너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내가 떠 안고 떠나고 싶단다.

진아. 어버이날에 네가 보내준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도 사고, 과자도 사고, 빵도 샀단다.
그런데 어제는 스승의 날이라 하여, 한 제자가 정갈한 동양난 한 폭을 보내 주었다. 꽃의 향기도 좋으려니와 그 문향(聞香)이 더 좋더구나.
내 나이 문향을 알만한 나이 아니냐. 꽃송이 앞에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듣는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그 꽃 속에 네 얼굴이 사뿐이 와 앉더구나. 허나, 며칠 후면 저 꽃도 곧 지겠구나. 내가 저 꽃과 무엇이 다르랴.
인연의 대해(大海)에서 부녀(父女) 천륜의 정이야 망각의 지우개로도 지울 수 없는 법, 허나 피멍을 들게 하는 고통들도 시간 속에 뜨고 지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세월의 물때가 묻어서 무디어 진다니 내 병을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이 아비, 나를 정복하고, 나를 복종시킨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불치(不治)와 완치(完治)가 마음 한가운데 있는 것을….

진아.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아픈 과정이야" 중풍을 앓고 있는 옆집 아저씨의 말이 세월의 테잎에 감겨 있다가 잔잔한 음악처럼 흐른다.
이 편지가 이승에서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천진한 아기 웃음 같은 꽃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마른 고독 이야기만 늘어 놓고 말았으니 미안하다.

진아. 이 못난 아비 걱정에 눈시울 붉어진 너의 망운지정(望雲之情)을 사랑하고, 고독한 미완(未完)의 내 흰 머리칼을 사랑하면서, 남은 날들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 가련다.
참, 너의 집에서 떠나오던 날, 버스를 기다리며, 네가 사준 호박죽이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시골집에 와서 마구 자랑을 했단다. 그 푸짐했던 단맛의 향수를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극심한 소화불량으로 한 수저도 먹질 못했다.
어느 날, 눈물이 핑돌게 하는 햇살 같은 밝음 속에서, 우리 다시 만나 그 호박죽 또 먹어 보자꾸나. 그리고 귓속말 늘어놓고 진하게 웃어 보자.
살아 있음에 눈부신 오늘, 너를 부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사랑하는 내 진아. 보고 싶다.
내 그리운 자유가 그곳에 머무르고 있을 것 같아서다.
여름감기가 더 무섭단다. 감기 조심하고….

2005년 5월 16일
너의 고향집에서, 아비가 띄우다.

덧붙이는 글 | 김동필 교수가 보내온 편지는 정보통신부에서 주관한 전 국민 편지쓰기대회에서 대상(정보통신부장관상)을 수상한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모아지면 기적이 일어나듯이 김동필 교수의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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