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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사의 종소리

월락오제상만천(月落烏啼霜滿天)
강풍어화대수면(江楓漁火對愁眠)
고소성외한산사(姑蘇城外寒山寺)
야반종성도객선(夜半鐘聲到客船)

달은 지고 까마귀 슬피 울어 천지에 찬 서리만 가득하고
강풍교 고깃배의 희미한 불빛아래 시름겨워 졸고 있는데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한 밤 구슬픈 종소리가 들리는구나


당나라의 시인 장계(張繼)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이라는 유명한 시다. 과거에 세 번이나 낙방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인이 강남을 유랑하다가 옛 소주성의 광풍교 아래 정박 중인 고깃배에서 하룻밤을 묵던 중 한밤중에 울리는 한산사의 종소리를 듣고 자신의 애절한 처지를 빗대어 읊은 시라고 한다.

찬 서리가 내린 삭막한 광풍교 주변의 풍경과 한 밤의 정적을 가르며 들려오는 한산사의 종소리를 자신의 객수(客愁)와 연계하여 읊음으로써 과거에 낙방하고 하염없이 돌아가는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절절하게 토로하고 있다.

결국 이 시를 전해들은 황제는 부정으로 얼룩졌던 과거시험을 들춰내고 그를 불러 중용하게 되는데 그 후부터 풍교야박은 중국인들이 애송하는 명시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종소리를 관광상품으로

이 시로 유명해진 한산사는 중국의 소주성에 있는 작은 고찰이다. 서기 502년에 건립된 한산사는 과거에 떨어진 장계가 머물던 당시까지만 해도 평범한 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늦은 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든 민초들을 어루만져주려는 듯 은은하게 울려 퍼지던 종소리가 비탄에 젖어 졸고 있던 한 객수시인(客愁詩人)의 심금을 울리면서 명시를 낳게 했고, 이 시를 전해들은 황제를 감격케 함으로써 온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것이다.

매년 정초에는 한산사의 종소리를 들으면 한해의 소원이 성취된다 하여 중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불자들이 한산사를 찾는다. 또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어 한국을 비롯한 외국인들의 단체 관광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시인의 노래를 관광상품으로 만든 중국인들의 기치가 감탄스러울 뿐이다.

월북시인 조운(曺雲)의 석류(石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툼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영광이 낳은 천재시인 조운선생이 쓴 석류라는 시다. 가히 영광을 대표할 만한 시이며 대한민국을 아울러도 이만한 작품이 있을까 싶을 만큼 명작이다. 마치 석류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몇 마디의 짧은 시어에 석류에 대한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펼쳐놓았다.

그러나 한 때는 시인이 월북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시가 사람들의 입에 올려지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는 암울한 시대가 있었다. 고향 영광을 노래하고 영광사람들을 그리워했던 그의 작품들은 사상이라는 이념논쟁에 휘말리며 우리의 뇌리에서 강제로 잊혀져야 했고 매도되어야 했던 것이다.

석류가 익어 알알이 붉어진 뜻을 차마 이르지 못했던 시인은 결국 붉은 사상을 칭송한 공산주의자로 낙인이 찍혔고 그의 모든 작품은 이 땅에서 추방을 당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은 분단의 아픈 생체기를 안은 채 훼손을 당해야만 했다.

다행히 일부 지역 문인들이 시인을 추모하는 사업회를 결성해 시인의 작품이 재평가를 받게 되었으나 그의 시비마저 훼손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으며 이 사건이 백과사전에까지 기록되어 영광의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고 말았다.

▲ 조운 시인의 생가에서 자라고 있는 석류나무. 수령이 백년이 넘었다.
ⓒ 고봉주
석류를 관광상품으로

나는 위에서 두 편의 명시를 소개했다. 물론 두 편의 시가 모두 명작이며 작품성이 뛰어난 시임은 분명하지만 여기에서 그 작품성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두 편의 시가 공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명시이면서도 그 쓰임새가 너무 다른 현실에서 우리가 중국인들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지 고심을 해보자는 의미에서다.

나는 지난해 11월 사무 연수차 중국을 방문했다. 연수 중에 잠시 한산사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장계의 시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조운의 석류라는 시가 문득 떠올랐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장계의 시 한 편이 한산사라는 작은 절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어 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조운의 석류라는 명시를 가졌으면서도 관광상품화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조운의 석류가 관광상품이 되고 영광에 널린 석류 밭이 관광명소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면 어떨까? 우리 고장이 낳은 시조시인 조운이 노래했던 석류. 고향 영광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했다는 시인은 자신의 뜰에 석류나무를 심고 그 석류나무에 열린 석류를 노래함으로써 장차 우리 영광이 석류의 관광지가 될 것임을 예고하지는 않았을는지?

지금도 시인의 집 뜰에는 시인이 심었을 법한 한 그루의 석류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나는 시인의 작품에 대한 성의가 부족했기에 아직도 가슴을 빠개 젖힌 석류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장계의 풍교야박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리고 그 명시 속에 알알이 빛나고 있는 석류가 한산사의 종소리처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인 관광상품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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