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거짓말 하나로 많은 사람들을 웃음과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린 사람이 있다. 그는 7년이란 시간 동안 6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속였으며 그렇게 번 돈 수억원으로 4억5천만 원짜리 건물도 샀고 자본금 10억원의 회사도 차렸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왜 사람들은 그가 만든 거짓말에 열광하는 것일까?

대학로 연극판에서 <라이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라이어>는 98년 1월 2명의 관객을 앞에 놓고 초연을 상연한 뒤 지난 7년간 연일 매진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한마디로 '대박 난' 연극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파파프로덕션 이현규 대표가 있다.

대박 낳은 '거짓말', <라이어>

▲ 한 택시 기사의 두집살림을 코믹하게 그려 낸 연극 <라이어1> <라이어2> <라이어3>
ⓒ 파파 프로덕션
연극 제작이 꿈이었던 그는 대학 4학년 때부터 극단 한양레퍼토리에서 2년간 연극 기획공부를 했다. 그 뒤 96년, 전세금 2500만원을 빼 <라이어>를 만드는 데 모두 털어 넣었다. 처음엔 좌절도 했다. 하지만 <라이어>에 대한 이야기가 입소문을 통해 대학로에 퍼지면서 연극을 무대에 올린 지 불과 1년 만인 99년, 그는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라이어2>과 <라이어3>을 만들어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연극 <라이어>의 원제는 'Run for your wife', 영국의 희곡작가 레이 쿠니(Ray Cooney)가 원작자다. 택시운전사인 주인공 존 스미스는 철저한 계획에 따라 '두 집 살림'을 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시련이 닥친다. 경미한 교통사고로 인해 '두 집 살림'이 들통 날 위기에 처하게 된 것. 그는 자신의 '두 가정(?)'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는다. <라이어>는 거짓말을 하며 우왕좌왕 하는 존 스미스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라이어2>는 <라이어>의 20년 후 버전이다. <라이어>에서 존 스미스가 일을 잘 마무리한 덕일까? 존 스미스의 '두 가정(?)'은 건재하다. 그리고 존 스미스에게는 아들과 딸(각각 다른 집에 있는)이 있다. 아들과 딸은 우연히 채팅을 통해 만나게 되고 대화를 나누던 중 아버지의 이름과 직업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둘은 인연이라는 생각에 만나려고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린 존 스미스는 그들이 만나지 못하도록 동분서주한다.

심오한 역사의식이나 대단한 논쟁거리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명인의 삶을 조명한 것도 아닌, 이 평범한 택시기사의 삶이 왜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걸까. 가을이 익어가는 지난 12일 오후, 대학로 요지에 위치한 샘터빌딩 4층 파파프로덕션 사무실에서 헐렁한 운동복 차림의 이현규 대표를 만나 성공비결을 들어봤다.

"성공비결? '거짓말'은 잘 퍼진다"

▲ 약속 시간에 늦은 이유를 너무 솔직히 밝혀 살짝 실망(?)을 준 이현규 대표.
ⓒ 나영준
"연극계에서 한 공연으로 롱런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연극은 몇 개월이나 연습을 하고도 고작 한달 정도 무대에 올리고 만다. 하지만 <라이어>는 이런 연극계의 관행 아닌 관행을 깨며 장장 7년 동안 같은 공연을 해오고 있다. 비결이 뭔가?"

다소 도전적인 첫 질문에 대한 이 대표의 답변은 한마디다. 입소문 때문이라는 것.

"저희는 따로 홍보 같은 걸 안합니다. 사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가장 좋은 홍보방법은 신문에 나오는 것인데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더군요. 그런 것에 실망을 느껴서 포스터만 붙였죠. 그것엔 관객이 판단할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호기 있게 시작했지만 처음엔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입소문이 나며 매진이 되기 시작했다고. 어쨌건 이젠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작이니 관람료를 비싸게 받아도 될 것 같지만 지난 7년간 거의 변함이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

"7년 동안 단 한 번, 1만5천원에서 2만원으로 올렸거든요. 그때 굉장히 많이 고민했어요. 물론 제작비가 조금 상승한 건 사실이죠. 하지만 저는 우리 작품이 연극계의 새우깡이나 초코파이 같은 존재였으면 해요. 생각나면 편하게 와서 부담 없이 즐겼으면 하는 거죠."

<라이어>는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웃음을 멈출 수 없도록 만든다. 일례로 공연 시작 전에는 "공연 중 휴대폰이 울리면 주인공이 바뀌는 수가 있습니다" 등의 멘트를 날리고 공연이 끝나면 "'라이어'는 사랑의 편지와 같아서 일주일 안에 7명에게 소개하지 않으면 엄청난 재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라는 애교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라이어>의 이런 유쾌함 때문일까.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 연극을 40회 이상 본 사람도 있다. 그들은 대부분 팍팍한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극장을 찾는다. 혹자는 더블캐스팅 된 연기자들의 각기 다른 연기를 보고자 극장을 찾기도 한다고.

"내 연극이 상업연극이라고? 그게 어때서요?"

▲ <라이어> 공연 중.
ⓒ 파파 프로덕션
비교적 많은 것을 이룬 듯하며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살 것 같은 그는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만 35세. 신명나는 거짓놀음 한 판으로 많은 것을 이룬 그가 생각하는 '거짓말'은 좀 다를 것 같기도 하다. 과연 그에게 '거짓말'은 어떤 의미일까?

"거짓엔 상대를 해하기 위한 악의적 거짓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거짓의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아요. 극중에선 두 부인을 가진 사람이 모두를 놓치기 싫어 거짓말을 하거든요.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죠. 주인공의 진심이 보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거짓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짠한' 구석이 있거든요. 방어적 거짓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라이어>는 확실한 웃음을 선사한다는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볍다' '상업연극이다'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가 웃음이라는 코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유는 딱 하나예요. 관객에게 쉽고 재미있는 걸 보여주자는 거죠. 사실 일상이 지치고 힘들잖아요. 그런데 연극까지 졸리고 어려운 소리하고…. 연극 하는 분들이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는 것 같은데, 관객들이 그 정도는 다 알고 있거든요."

혹시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도 거짓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이 대표의 말은 이랬다.

"제가 오늘 늦게 온 것도(20여 분정도 늦었고 잠을 자다 그렇게 됐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아유, 차가 막혔어요'라고 뻔한 거짓말을 했을 거예요(웃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습관화되고,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겠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왜곡되며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죠.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거짓말로 시작된 이 길, 끝까지 가련다

<라이어>가 7년 동안이나 롱런을 하면서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리고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는 실제로 예전엔 많이 괴로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만 듣는 건 한 사람의 욕심이자 판타지라며 한편 그들이 하는 이야기 중 분명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기에 하나의 좋은 거울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는 "어머니가 배를 쓰다듬으며 옛날이야기를 해 주는 것처럼 감성적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감성과 소통하는 연극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작품을 만들면서 관객이 따라와 주길 바라기보단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한다. 관객은 작품만 좋으면 언제라도 찾게 돼있다며.

차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 다니던 상황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멋진 거짓말 하나로 일어선 사나이. 대한민국 문화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와의 시종 즐거웠던 대화는 그가 만든 연극 <라이어>만큼이나 유쾌하게 끝났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