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궐도.  103 x 400
서궐도. 103 x 400 ⓒ 파인민화연구소
작품 '서궐도'는 경희궁 궁내 전각 배치의 개략적 위치 개요가 흑백 먹선으로만 기록된 '서궐도안'(西闕圖案)을 근거로 송 화백이 동궐도(창덕궁과 창경궁을 아우른 궁궐그림)를 모사 복원한 경험을 더해 가로 4미터 세로 1.3미터의 대작으로 재현한 것이다. 파인은 그의 평생 필력을 다 쏟아부어 그림으로나마 경희궁을 다시 지은 최초의 사람이 된 것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서궐도와 쌍벽을 이루게 된 동궐도는 2004년 복원하였고 고려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서궐도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정면 중앙을 가득 차지하고 웅장하게 걸려있다. 그림에서 뿜어나온 세찬 기운이 작은 화랑을 가득 채우고 인사동 거리로 치닫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궐도의 서기(瑞氣) 사이로 조선 왕조의 비운이 읽혀짐은 어쩔 수 없는 애잔함인가. 전시를 준비하던 송 화백의 한 제자도 "가슴이 찡하다"는 말로 서궐도를 처음 보던 순간을 말한다.

민화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이런 작업은, 민화가 단순한 그림이기 이전에 민중 혼을 그린 그림임을 인정해야 이해가 될 일이다. 서궐도는 하나의 그림이기 이전에 역사문화적 상징성을 갖는 조용하고도 강한 '붓의 웅변'이 아닐 수 없다. 파인은 서궐을 붓으로 다시 지은 셈이다. 그림으로밖에 복원할 수 없는 이 서궐도를 일본이 본다면, 그들이 이 땅 곳곳에서 금세기 조선 유무형 문화를 파괴한 역사적 추태를 기억하며 그 때마다 역사적으로 부끄러울 것이다.

옛 경희궁 자리에 들어선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지금 일인 학자 '야나기'가 수집한 민화들이 정중한 예우를 받으며, 이미 위작 시비에 휘말린 다른 그림들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인사동에서는 붓으로나마 다시 지어진 경희궁이 가을 화랑가를 애잔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계획에도 없던 묘한 시기적 일치다. 역사는 그림으로도 돌고 또 도는가.

민화전이 유난히 많았던 가을

이 가을엔 주목할 민화전이 유달리 많았다. 위작 시비로 빛은 바랬어도 '야나기'의 콜렉션을 중심으로 한 민화전이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30일까지 열리고 있고, 걸출한 어해도의 잔치인 청계천 새물맞이 기념 민화 물고기 그림전(경기여고 경운박물관)도 12월 10일까지 계속되며, 현대 창작민화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하는 좋은 작품이 많이 걸렸던 '한국민화작가회'의 정기전도 눈배 부른 호사였다. 또 청주민화작가회원전 등 지방에서도 수준급의 회원전이 잇달아 열릴 예정이다.

찾는 이가 있으니 전시회도 많이 열리는 법이다. 모처럼 민화가 전통 미술의 한 축으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런 현상은, 작위적 이벤트에 의한 일회성 흐름으로 보이진 않는다. 민화의 근본이 일반 민중의 가공되지 않는 붓끝에서 자연스레 그려진 '생활 미술'이었기에, 오늘날 일반 대중들도 접근에 정서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이 민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증폭되는 중요한 이유로 보인다.

서궐도의 궁궐 전각 부분도
서궐도의 궁궐 전각 부분도 ⓒ 곽교신
그런 의미에서 파인 송규태 화백의 이번 전시는 마치 민화 붐의 정점에 서서 큰 기침을 한 번 하는 듯한 무게감이 있다. 송 화백의 탁월한 색감각은 이미 정평이 있지만, 미리 둘러 본 그의 그림들은 말을 잊게 한다. 색을 칠하거나 입혔다기보다 색이 화면에 은은히 녹아 들어간 듯한 그의 그림들이다. 연잎은 하늘거릴 듯하고 연꽃에선 향이 나올 것 같다. 어해도의 물고기들이 튕긴 물은 옷을 적실 것 같다. 전시장 이층은 온통 물바다다.

걸출한 그의 그림들을 매일 가서 보아도 일주일 이상은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도록 이번에 전시된 그의 그림들은 가을 하늘처럼 맑고 투명하다. 파인이 10년만에 열어보이는 개인전은 큰 어른다운 신선한 바람이요, 작품 하나하나를 묵묵히 명상해야 할 그림의 화두가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전시 문의 공화랑 02-735-9938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