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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책 겉그림 ⓒ 당대
과학은 그 자체로서 좋은 것도 그리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 가치는 중립이다. 과학을 이용해 자동차나 전차나 비행기를 만들어 내면 인간 삶이 그만큼 편리지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하지만 핵폭탄이나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면 그것은 지극히 나쁜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과학의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과학은 지금까지 인간을 둘러싼 바깥 환경에서 대부분 활동해 왔다. 인간 내부와는 별개로 인간을 둘러싼 삶의 환경에서 많은 이로움과 해로움을 동시에 안겨 줬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은 인간내부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전자 조작을 이용한 형질전환 작물이 인간 몸속을 관통하도록 돕고 있고, 생명공학이란 이름을 내걸고서 불치병 치료와 인간 생명의 불멸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그 과학기술 가운데, 유전자조작을 통한 생명공학은 그렇다면 좋은 것일까 아니면 나쁜 것일까. 이에 대해 그것은 결코 좋지 않는 '나쁜 과학'이라고 비판한 책이 있다. 매완 호가 쓴 <나쁜 과학 : 근본적으로 위험한 유전자조작 생명공학>(이혜경 옮김․당대․2005)이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전자조작 생명공학에 반대하는 사례들을 설명한다. 유전자조작 생명공학이라 함은 공공의 선에 위배되고 공공의 의지와 소망에 반하며 사회와 세계의 도덕적 가치를 거스르면서, 즉각적인 이익을 위해 거대기업과 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나쁜 과학을 뜻한다."(머리말)

매완 호는 그것이 나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인간다움에 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명공학이 인간을 위한 공동선으로 작용하기보다는 한쪽으로 악용되고, 더욱 빠르게 악화될 요소가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유전자조작을 통한 유전자변형은 인류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부자와 대기업에게 더 큰 이익을 안겨 줄 수 있다. 유전자변형을 통한 곡물의 생산성 증가와 병충해에 강한 저항력은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식량공급 차원보다는 다국적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 더욱이, 모든 질병에 관련된 유전자뿐만 아니라 수명 유전자를 분리하여 불멸의 가능성까지 점칠 수 있지만 그것은 모든 인간을 위한 길이 아니라 지극히 소수를 위한 길로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더 구체적이고 더 과학적인 근거가 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제까지 해 왔던 혈통적인 수직적 유전자 전이방법을 떠나 수평적 유전자 전이를 할 경우, 그로 인해 함께 전이해 가는 전염성 물질이나 바이러스를 통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악성 바이러스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평적 유전자전이와 그에 따른 유전자재조합은 1992년 인도에서 콜레라와 1993년 스코틀랜드 테이사이드에서 연쇄상구균 전염병을 일으킨 세균변종을 생성시켰다. 또 최근 스코틀랜드에서 발병된 대장균 O157은 병원성세균 시겔라로부터 수평적 유전자전이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42쪽)

또한 유전자는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게 큰 문제 거리이다. 유전자와 유전자의 결합은 약속된 유전자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유전자 변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전자가 유기체의 생리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안정되고 균형 잡힌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유기농업만 보더라도 농약에서 해방된 건강하고 다양한 유기체군집들의 균형 잡힌 생태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 유전적 건강의 핵심이 생리적 건강의 토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분야의 농법은 오염되지 않은 환경, 농약에서 해방된 안전한 후속 관리 등 만족스러운 토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인간 복제기술에 관한 문제도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 기술을 둘러싸고 불어 닥칠 후 폭풍은 실로 엄청나다. 이전에 인간의 탄생이 어떤 면에서는 여성에게 그 주도권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것이 전문 과학자와 거기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 대기업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장기 이식을 위한 기관과 조직을 성장시킬 머리 없는 인간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른바 고통 없는 인간, 고통을 느끼지 않는 인간을 찍어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연을 '인류'의 이익을 위해 조작되는 수많은 대상들의 집합으로 취급하는 도구적․착취적 과학논리의 정점을 이룬다. 그래서 배아, 심지어 인간배아까지 상품 혹은 금전적인 지불이 가능한 사람들의 주문을 받아 단백질이나 세포․기관을 생산하는 '제약공장'의 동물로 곧바로 전환될 수 있다."(296쪽)

과학과 그에 따른 기술 분야는 가치중립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명공학만큼은 이전에 다루어왔던 과학기술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편리와 삶의 수준과 같은 외부적인 환경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 자체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매완 호는 인간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새로운 생명 형태를 디자인하고, 또 조작하려드는 생명공학에 대해 '전 지구적 모라토리엄'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생명 자체가 복잡한 생명네트워크에 토대를 두고 있는 종으로서, 그 고유한 본질이 존중받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그렇기에 그 어떤 위대한 과학자나 그 어떤 훌륭한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몸 전체나 부분을 상품으로 소유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나쁜 과학 - 근본적으로 위험한 유전자조작 생명공학

매완 호 지음, 이혜경 옮김, 당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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