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안개 낀 새벽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오코
안개 낀 새벽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오코 ⓒ 김남희
그렇게 묻기 시작했을 때 쉐리를 만났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온 중년의 여인이었다. "카미노에 왜 왔어요?" 내 당돌한 물음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어. 나를 위한 선물로. 그리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 내 영혼의 소리 말이야" "들었어요?"

"그랬던 것 같아. 메세타를 걸을 때였어. 내가 들은 건 이런 속삭임이었어. 네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믿어라.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한 깨달음이었어. 그러니까 내게 필요했던 건 결국 확신이었던 거야. 내가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 그게 필요했던 거고, 카미노는 내게 그걸 주었어."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너는 왜 카미노에 왔니? 뭘 찾고 있어?"

"난 걷는 걸 좋아해요. 내게 걷기란 명상 같은 거죠. 카미노를 걷겠다고 생각했을 때만 해도 내 안에 어떤 간절한 질문 같은 건 없었어요. 그런데 카미노를 걷는 동안 내 안에서 계속 질문 하나가 맴도는 걸 발견했어요. 그 질문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와 이어지는 거였어요. 길의 끝에서 내가 뭔가 결정을 내려야만 할 때 카미노가 그 답을 줄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답을 찾았어?" "아니. 못 찾았다고 생각했어요.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데, 마음은 여전히 어지럽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불안했어요."

산티아고를 걷다가 사망한 순례자의 무덤. 지나가던 순례자들이 남겨놓고 간 메모와 사진, 꽃들. 나도 어느 마을에서 수녀님께 받았던 목걸이를 풀어 그곳에 남기고 왔다.
산티아고를 걷다가 사망한 순례자의 무덤. 지나가던 순례자들이 남겨놓고 간 메모와 사진, 꽃들. 나도 어느 마을에서 수녀님께 받았던 목걸이를 풀어 그곳에 남기고 왔다. ⓒ 김남희
800km를 걸어오는 동안 나는 내내 한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건 생각지도 못했던 아주 간절한 그리움이었다. 그 익숙하면서 생경한 감정이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저 홀로 커가고, 깊어가는 걸 나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했다. 그리움이 간절해지는 만큼 내 안에 상처로 남아 있던 한 얼굴이 흐릿해져가는 것도 보았다.

카미노는 내게 답을 줄까?

나는 두렵고 불안했다. 길의 끝에 서면, 내가 이토록 그리워한 사람에게 달려갈 수 있을까?
그게 내가 원하는 걸까? 달려가서 내게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어쩌면 꼭 그가 아니어도 되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단지 배낭을 내려놓고 싶은 건 아닐까. 어딘가에 정착해서,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낳아 키우며 늙어가는 삶. 난 그걸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길을 걷는 내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카미노가 주기를 기대했다. 산티아고까지의 남은 거리를 말해주는 표지판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길의 끝이 다가올수록, 나는 되돌아가고만 싶어졌다. 나는 아직 아무 것도 결정할 수가 없는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가 없는데, 이렇게 끝이 다가오다니… 울고만 싶어지던 날들이었다.

쉐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카미노가 내게 답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다만 외면하고 있었을 뿐. 어쩌면 우리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직 찾아내지 못했거나, 혹은 답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일 뿐.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어떤 길도, 어느 누구도, 신조차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기에 귀 기울여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는 것 뿐.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토록 망설이고 불안해했던 건 내가 간절히 원하지 않기 때문인 것을, 아직은 배낭을 내려놓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을. 그렇다면 계속 내 길을 가는 것만 남은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은 어느새 맑아져 있었다.

가던 길에 멈춰 서서 지도를 들여다보는 순례자의 다리
가던 길에 멈춰 서서 지도를 들여다보는 순례자의 다리 ⓒ 김남희

여기까지 800km..."너 참 장하구나!"

다음날 산티아고에 들어서려던 예정을 바꾸어 40km를 넘게 걸었다. 몸은 지쳐가고 있었지만 더 이상 발은 무겁지 않았다. 산티아고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보는 순간 왜 눈물이 났을까. 그 모든 지독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삭이고, 삭이고, 또 삭이며 여기까지 잘도 걸어온 나. "너 참 잘했어. 참 장하구나." 꼭 끌어안고 입 맞춰주고 싶은 어여쁜 나였다.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을 걸어 산티아고에 들어섰을 때, 광장에 우뚝 솟은 성당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성당은 지금까지 본 어떤 성당보다 아름다웠다. 내가 여기까지 800km를 걸어왔기 때문일까. 잠시 광장 한 가운데에 망연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성당 옆 호텔에 짐을 풀었다. 오늘 같은 날, 수십 명이 머무는 알베르게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 40일간, 아니 유럽에 들어온 이후, 단 한 번도 '독방'을 가져본 적이 없던 나에게 오늘만은 혼자만의 공간을 주고 싶었다. 혼자서 침묵 속에서, 하루를, 지난 한 달의 여정을, 순례의 끝을, 마감하고 싶었다.

기다리는 사람 눈치 보는 일도 없이 천천히 몸을 씻고, 한 벌 뿐인 여벌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부딪칠까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싱글 침대에 드러누워, 노트북의 볼륨을 올려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으며 이 글을 쓰는 지금. 눈물이 날 것 같다. 국토종단을 끝내고 나서는 오히려 담담했던 것 같은데 여긴 남의 땅이어서 일까. 이렇게 감상적이 되는 건. 지금 누군가에게 전화해 그의 축하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산티아고 방문을 기념해 세운 조형물 앞을 순례자가 지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산티아고 방문을 기념해 세운 조형물 앞을 순례자가 지나고 있다. ⓒ 김남희


2005년 7월 31일 일요일 맑음

아침에 순례자 협회 사무실로 가 증서를 받았다. "Camino de Santiago"를 걸었다는 증서. 사무실을 나와 성당으로 갔다. 천 년 전부터 이곳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성당으로 가 제단 뒤의 산티아고 상을 끌어안는 게 전통이라고 했다. 지난 천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끌어안았을 산티아고 상에 손을 올려놓고, 기도를 올렸다.

"여기까지 무사히 오도록 지켜봐 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의 제 삶을 지켜봐 주셨듯이 앞으로 남은 제 삶도 지켜봐 주시겠지요. 늘 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온전히 제가 가고 싶은 길, 가야 할 길을 향해 망설임 없이 걸어갈 수 있도록 하소서. 그 가운데서도 이웃과 나누며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미사 중인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찬송가를 부르는데,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 차가운 조각을 끌어안을 때 내 기분은 이상했다. 순례자들을 위한 특별미사에서 "생 쟁 피에드 포르에서 걸어온 한 명의 코리아노"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흘렀다. 천 년 동안 서 있었을 성당의 기둥에 기대어 나는 오래 울었다.

이렇게 내 인생의 한 기회가 왔다가 갔다는 것. 무언가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감하던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무나 붙잡고 울고 싶었고, 내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고 싶었고, 내가 한 모든 어여쁜 일들도 말하고 싶었고, 내 가슴 속에 터질 듯 가득한 희열과 서러움과 행복과 슬픔을 표현하고만 싶었다.

순례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기우는 저녁해를 받으며 서있는 대성당.
순례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기우는 저녁해를 받으며 서있는 대성당. ⓒ 김남희
이제 "Camino de Santiago"는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새로운 삶의 길이 여전히 내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이 삶의 순례자인 것을. 어디로 가는지, 언제 이 길이 끝나는지, 계속 혼자서 가야 하는 건지,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지도 모르는 채 순례를 하고 있는 지구 위의 순례자.

이 삶의 순례의 길에서 내 영혼이 목말라하고 갈구하는 것. 그것을 찾아 나는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오는 데 서른다섯 해가 걸렸다. 이제 며칠 후면 나는 서른여섯이 된다. 정말이지 올해만큼은 그 날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 왠지 올해에는 내가 그 축하를 받을 자격이 되는 것만 같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포옹

성당에서, 성당 앞 광장에서, 광장의 카페에서, 정든 얼굴들과 마주칠 때,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껴안고 입을 맞춘다. 그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뜨거운 포옹과 가장 따뜻한 입맞춤이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서로를 안아주고, 축복하고, 함께 기뻐한다. 우리가 이곳에서 서로에게 느끼는 연대감. 그건 세상에서 가장 진하고 아름다운 일체감이다.

야곱 성인 즉 산티아고 성인의 무덤. 산티아고 대성당.
야곱 성인 즉 산티아고 성인의 무덤. 산티아고 대성당. ⓒ 김남희
우리가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일까. 지난 한 달간, 혹은 두 달간, 어떤 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여기까지 오기 위해 우리들이 흘려야 했던 눈물과 땀과 외로움과 잠 못 들던 밤을. 뜨거운 햇살에 익어가던 몸과 언제나 물집투성이었던 발바닥. 시큰거리고 부어올랐던 무릎을 끌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걸어온 지난 시간.

우리가 찾아 헤맸던 광장의 분수대와 지친 몸을 누일 반 평의 공간과 외로움을 나눌 익숙한 얼굴. 서로에게 해주던 마사지와 서로를 위해 요리했던 한 끼의 더운 밥. 새벽별에 의지해 숙소를 나서던 이른 새벽부터 여전히 태양이 이글거리는 늦은 오후까지 길을 가며 만났던 수많은 얼굴들. 그 사이 정들어 눈물 흘려가며 끌어안는 얼굴들.

우리가 길 위에서 나눈 건 딱딱한 빵과 무릎 연고와 물 한 모금만은 아니었다. 그것들이 서로의 손에서 손으로 오가는 동안 우리 마음의 빗장도 열리고 있었다.

우리가 그 먼 길을 걸었던 건 단지 길의 끝에 서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 길 위에서 우리가 배운 것. 모든 것이 흘러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가진 것은 영원히 순간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우리는 모두 사랑하고 나누고 연대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귀한 몸이라는 것을, 카미노는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쳐 주었다.

산티아고 성인의 복장으로 돈을 버는 거리의 예술가.
산티아고 성인의 복장으로 돈을 버는 거리의 예술가. ⓒ 김남희
또 우리가 배운 것들.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지상의 모든 존재들이 다 귀한 목숨이라는 것을, 이 세상에 이유 없이 오고 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살면서 중요한 것들은 우리가 집 안에 남겨두고 온 것들이 아니라 우리 영혼 안에 있는 것들이라는 것.

우리가 길 위에 남겨두고 가는 것들.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망과 미련,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불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오해. '세상의 끝'에서 신발을 태우며, 옷을 태우며 우리가 태우고 싶었던 것은 우리 안의 욕심과 오만과 거짓들이었다.

이제 우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많은 것을 길 위에 남긴 채 조금은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이 길 위에 뿌려졌던 땀과 눈물, 무수한 상념과 웃음을 뒤로하고, 우리가 있었던 자리, 우리가 있어야만 하는 곳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면, 일상으로 돌아가면, 우리들은 빠르게 이 길을, 길 위에서의 추억을, 외로웠던 시간을, 잊어가겠지. 사위어가는 겨울날 오후의 햇살처럼. 하지만 아주 잊어버리지는 못하리라. 우리가 나누었던 뜨거운 포옹과 따뜻한 입맞춤을. 삶의 희열이 파도처럼 밀려와 온 몸과 마음을 적시던 여름 오후의 한 순간을. 그리고 그 순간의 기억으로 우리에게 남은 삶을 버텨 가리라.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낯설어질 때, 이곳을 떠올리며 화들짝 놀라는 날이 찾아오기도 하겠지. '그래. 한 때 내게도 그토록 풍성했던 시간이 머물렀지. 그때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짐했었지. 돌아가면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많이 나누고, 더 크게 웃으며 살리라, 이 생을 마음껏 누리리라 다짐했었지.'

잠시 주인은 사라지고 그가 놓고 간 가방과 지팡이만 광장을 지키며 서 있다. 산티아고 광장.
잠시 주인은 사라지고 그가 놓고 간 가방과 지팡이만 광장을 지키며 서 있다. 산티아고 광장. ⓒ 김남희
그 먼 기억을 떠올리며 흘러가는 것들을 붙잡기 위해, 잊혀지던 것들을 되살리기 위해 매달리겠지. 우리는 어쩌면 끝없는 시도와 변화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아름다운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 그건 살고, 사랑하고, 나누고, 기뻐하며, 고통 속에 성장하는 것.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매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가리라.

Buen Camino! (좋은 길이 되기를!) Chao, my fellow Pilgrims! (안녕, 나의 동료 순례자들이여!)

남은 이야기들

성당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났다. 가톨릭 성지 순례 중인, 캐나다에 사시는 세 분들. 나를 보자마자 가방에서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꺼내 손에 쥐어주신다. "한국말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라며 바보처럼 울먹이는 나. 장하다고, 참 잘했다고 거듭 칭찬해주시는 분들 앞에서 마구 어리광을 부리고만 싶어졌다.

순례자를 위한 정오미사에서 앤디를 만났다. "그동안 고생했어. 무사히 여기까지 온 걸 축하해"라며 나를 꼭 안아주는 앤디의 포옹이 따뜻하다. 우리는 성당 근처의 카페에서 차를 나눈다.

"이 길을 걷기 전에 나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어. 엄마는 살아 계시지만 난 별로 사랑을 받지 못했거든. 나는 평생 동안 엄마의 사랑을 갈구해 왔어. 간절히. 근데 이 길을 걷는 동안 그런 갈망이 사라졌어. 아마도 자연이 나를 치유한 것 같아. 나는 그동안 기치료를 하며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었지만 정작 치유가 필요했던 건 나였던 거야. 지금 내 안엔 더 이상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은 없어. 이제 엄마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밤이 내린 광장의 카페에서 정담을 나누는 순례자들. 산티아고 성지 순례 중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기도 하다.
밤이 내린 광장의 카페에서 정담을 나누는 순례자들. 산티아고 성지 순례 중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기도 하다. ⓒ 김남희
광장 옆 골목에서 닐스크리스티안을 만났다. 우리는 뜨겁게 포옹하고 광장 옆 카페에서 차를 나누며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을 서로 축하했다.

"전에 나는 어떤 의미에서 종교적 근본주의자였어.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성격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다 믿고,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믿었던 것 같아. 적어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었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 할아버지까지 대대로 목사였잖아. 하지만 이 길을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내 안에 뭔가 변화가 일어났어.

너도 그렇고 앤디도 그렇고 나에게 다른 종교에 관해, 또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줬어. 중요한 건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거지, 성경의 문자가 아니라는 것.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똑같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걸 배웠어. 난 아직 어려서 이 길을 통해 뭔가 내 인생의 답을 구하고자 했던 그런 간절한 질문은 없었어. 하지만 나는 배웠고, 많은 걸 느꼈고, 변했어. 덴마크에 돌아가면 그전의 나와는 많은 면에서 달라질 것 같아."

"기독교는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는 그 분을 믿고, 전통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전수하는 그 분을 믿고, 교회를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선포하는 그 분을 믿는 종교"라고 한스 큉이라는 신학자가 말했다. 닐스크리스티안은 이제 진정한 종교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그가 성큼 커져 있을 것 같아 그 만남이 기대된다.

모든 것이 흘러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아무 것도 붙잡을 수는 없다는 것. 그 슬프고 명확한 사실이 나를 깨어있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힘.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한낮의 햇살에 달아올랐던 거리를 식히는 밤. 어둠이 내리는 광장에 서서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내 안에 막막한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그 슬픔을 넘어서는 남은 생에 대한 열정. 인생은, 삶은, 현재는, 단 한 번, 순간뿐이기에 슬프고 아름다운 것.

스페인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악단,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관광객들
스페인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악단,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관광객들 ⓒ 김남희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일기' 최종회 15편이 곧 이어집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