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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 주변 인도에 설치된 '불법주차 무인단속 카메라'
서울 청계천 주변 인도에 설치된 '불법주차 무인단속 카메라' ⓒ 오마이뉴스 안홍기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사업의 완공기일을 맞추기 위해 '불법 주·정차 무인단속시스템 설치사업'을 경쟁입찰에 내놓고서 사전에 특정 업체에게 사업을 맡겨 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서울시는 개찰 직전 입찰에 응모한 업체 관련자들을 모아 '해명회'를 열고 이같은 편법 수의계약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지난 9월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전날(9월 26일)부터 불법 주·정차 무인단속시스템 운용을 시작했다고 홍보했다. 청계천로 5.3㎞ 구간 양쪽에 고성능 무인단속 카메라 32대를 설치해 상습 불법 주·정차를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이 무인단속 카메라는 서울시 교통관리센터와 연결되어있는데, 카메라가 불법 주·정차 차량을 찍으면 차를 이동하라는 방송이 나간다. 그러고도 차량이 이동하지 않을 때는 다시 카메라가 이를 촬영하고, 이를 전달받은 교통관리센터에서 차량을 견인 조치한다.

그러나 이 사업은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시행사를 선정되지 않은 상태. 당연히 예산도 집행되지 않았다. 시행사조차 선정되지 않은 사업이 어떻게 가동 단계까지 왔을까.

시행사도 선정되지 않은 사업이 벌써 완공? "청계천 공사가 급해서"

'비결'은 서울시의 편법 입찰공고에 있다. 청계천복원 완공에 맞춰 '불법 주·정차 무인단속 시스템'이 가동될 수 있도록 사업부터 진행해놓고 이를 합법화시키기 위해 사업 입찰 공고를 낸 것이다.

현행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에 따르면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는 3000만원 이상 예산이 드는 사업에 대해 수의계약을 금지하고 경쟁입찰을 통해서만 사업자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의 '불법 주·정차 무인단속 시스템'은 청계천로 뿐 아니라 서부간선도로(8대)까지 모두 40대의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고, 18억 4천만원이 책정됐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지난 9월 10일 조달청을 통해 이번 사업에 대해 입찰공고(공고번호 20050910742-00)를 냈다.

'경쟁입찰'로 분류된 이번 입찰은 10월 6일까지 제안서를 받아 7일 개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조달청에서 사업자를 선정하도록 돼 있다. 즉, 아직까지 입찰 기간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서울 청계천 주변 인도에 설치된 '불법주차 무인단속 카메라' 통제함.
서울 청계천 주변 인도에 설치된 '불법주차 무인단속 카메라' 통제함. ⓒ 오마이뉴스 안홍기
그러나 이 사업은 시행사조차 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인카메라 전문업체 H사가 맡아 설치를 끝냈다. 9월 26일부터 청계천로에서는 32대의 무인카메라가 작동되고 있다. H사 측은 "9월초부터 일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교통국은 또 지난 5일 오전 이번 입찰에 응모한 업체 관계자 수십명을 모아 '해명회'를 열고 H사에 대한 불법 수의계약에 동의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입찰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사업을 담당한 서울시 교통국 관계자가 업체 관계자들에게 먼저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청계천 공사 일정이 급해 우리가 H사에게 (일을) 시켰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담당자는 또 업체 관계자들에게 "입찰에서 H사가 아닌 다른 업체가 선정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선정된 업체는 사업비를 H사에게 주길 바란다"며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끝내자, 청계천 관련 업무를 빨리 끝내라는 윗분들 지시로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콘크리트로 덮인 청계천이 47년만에 복원되어 1일 오전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콘크리트로 덮인 청계천이 47년만에 복원되어 1일 오전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시, 입찰업체에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끝내자"

이와 관련, H사 담당자는 "청계천복원 완공과 동시에 시스템이 완성돼야 하는데 20여일밖에 시간이 없으니까 서울시에서 정식절차를 거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려 그렇게 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추후에 어떤 업체가 시행사로 선정되든 (H사에게) 정산을 해주기로 약속했다"며 지난 5일 서울시에서 해명회를 연 사실도 확인해줬다.

"서울시가 H사에게 특혜를 준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H사는) 지난해 무인단속시스템 시범사업과 확대사업을 경쟁입찰을 통해 발주받아 성공적으로 설치한 실적이 있다"며 "우리 업체가 가장 빨리 설치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일을 맡긴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편법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을 맡는 것에) 우리라고 왜 부담이 없었겠느냐"며 "서울시 사업인 데다가 청계천 사업에 대한 (좋은) 이미지도 있고 해서 사업을 맡았고, 돈도 안받은 상태에서 20여일 만에 공사를 끝내느라 우리도 고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H사는 지난해 경쟁입찰을 통해 남부순환로 등 서울 주요 도로에 50대의 카메라를 설치하는 18억3천만원 규모의 불법주차 무인단속 시스템 확대 설치사업을 수주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업 발주자인 서울시 교통국 담당자들에게 5일 오후부터 6일 오전까지 수십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담당자들은 '회의 참석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6일 오전 연락을 피하는 서울시 교통국을 직접 찾아갔으나 역시 "회의 중"이라는 답변만 받았을 뿐 관계자들을 만날 수 없었다. 교통국 교통정보반 관계자는 "요즘 국정감사를 준비하느라 회의가 많다, 회의 참석하느라고 계속 자리를 비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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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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