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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햄릿>의 포스터 사진
<블랙 햄릿>의 포스터 사진 ⓒ 박유민
극단 신협이 창조한 <블랙 햄릿>

극단 신협은 1951년 우리 나라 최초로 <햄릿> 공연을 했다. 그랬던 그들이 지난 8월 27일부터 9월 16일까지 54년 만에 충무 아트홀 소극장에서 <블랙 햄릿>이라는 공연으로 관객과 다시 만났다. 무대가 둥근 개방형 구조로 관객마저도 극의 일부로 느끼게 하는 세트가 소극장의 매력인데, 이들은 입장과 퇴장에서 이것을 십분 활용했다. 연극 시작 직전 파티 장면에서는 관객과 함께 등장을 하고 극의 중간에서도 계단에서 인물들이 나오기도 했다. 등장인물의 수나 의상, 소품도 거대한 스케일 보다는 소극장에 맞게 작고 절제된 분위기였다.

기존의 <햄릿>은 비극에 속하지만 <블랙 햄릿>은 현대의 스릴러와도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권력을 둘러싼 형제간의 암투,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교묘한 음모, 살인 사건, 복수극, 고정관념을 뒤집는 마지막 반전이 바로 그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은 극 마지막에 일어난다. 원작에서는 햄릿이 죽어가면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모든 과정을 알고 지켜보며 자신을 이해했던 친구 호레이쇼에게 유언을 하고 끝이 난다. 그러나 <블랙 햄릿>에서는 햄릿이 '내가 본 유령은 진짜 유령이었나? 혹시 내가 모르는 더 큰 음모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죽는다.

아니나 다를까 호레이쇼는 친구인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녀를 차지하고자 그의 복수극을 도운 것이었다. 대부분의 <햄릿>에서 거트루드를 음탕한 여자로 묘사하는 반면, <블랙 햄릿>에서는 그녀의 결혼이 아들 햄릿을 지켜주기 위한 방패막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결국, 첩자 호레이쇼에 의해 덴마크의 운명은 영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연희단 거리패 <햄릿>의 무덤지기 역할의 배우들
연희단 거리패 <햄릿>의 무덤지기 역할의 배우들 ⓒ 박유민
연희단 거리패의 한국적인 <햄릿>

셰익스피어 작품에 관한 보다 대중적인 연극을 선보이기 위한 의도로 기획돼 지난 9월 6일부터 10월 5일까지 계속되는 '셰익스피어 난장 2005'는 작년의 호평에 이어 올해도 국립 극장에서 무대에 올려졌다. 그중 연희단 거리패의 <햄릿>은 우리의 마당극을 연상케 하는 야외극장 하늘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현실감 있는 2층짜리 대형 세트에 색색의 조명과 드라이아이스 등의 특수 효과도 볼만했지만, 가장 극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무대의 맨 앞에 있는 무덤 구덩이였다. 공연 시간이 밤이라서 조명의 효과와 궁벽 성곽이 장엄한 느낌을 주는데다 어두운 가운데에서 무덤 속에서 유령이 나오기도 하고 오필리어가 묻히기도 하고 무덤지기들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장면이 주목을 끌었다.

이 <햄릿>이 한국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원전 텍스트에 충실하면서도 표현에 있어서는 번역 투의 어색한 말이 아니라 구수한 우리 속담이나 풍자와 유머 같은 것이 적절하게 배합했기 때문이다. 오필리어가 죽을 때 무덤지기들이 삶과 죽음에 관해 나누는 뼈있는 농담은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장례식에 사용된 음악이나 저승사자의 이미지마저도 한국적인 슬픔과 죽음의 느낌이 배어있다.

또 햄릿이 클로디어스의 살인을 확인하기 위해 배우들에게 시키는 극중극에서는 탈을 쓰고 벌이는 전통 마당극의 형식을 빌렸다. 전통의상을 입고 탈을 쓴 배우들이 춤추며 대사를 읊고 뒤에 있던 배우들은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해설을 곁들였다. 극중극의 왕비의 탈에는 유혹을 상징하는 뱀이 얹혀있고 그녀가 춤추며 들고 다니는 부채에는 긴 꼬리 같은 붉은 천이 달려있는데 왕비는 두 개의 가면을 쓰고 두 명의 왕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공연 끝나고 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 거트루드, 오른쪽 클로디어스,
공연 끝나고 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 거트루드, 오른쪽 클로디어스, ⓒ 박유민
두 작품 모두 <햄릿>을 다양하게 읽으려는 시도

<블랙 햄릿>이나 연희단 거리패 <햄릿>이나 두 작품 모두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내용이나 주인공의 비중, 성격을 묘사하는데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전자는 햄릿의 비중이 원작에 비해 적었고 햄릿을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너무 깊은 감성에 빠진 나약한 존재로 그렸다. 따라서 작품 전체도 스릴러적인 성격에 따라 어둡고 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이에 비해 후자는 광증에 사로잡힌 햄릿의 연기에 포커스를 맞춰서 햄릿을 보다 동적인 인물로 그렸다. 청순하고 수동적인 캐릭터의 오필리어는 귀엽고 적극적인 여인에 더 가까웠다. 또한 광대들이 노는 극중극이나 무덤가의 무덤지기 장면은 작품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양념의 역할을 했다.

고전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그것을 수용하는 이들의 정서를 반영한다. 시대의 고전이라 불리는 <햄릿> 역시 고정된 텍스트가 아닌,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재해석되고 다양한 이들에 의해 풍부하게 읽혀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이 두 작품이 가진 의의는 <햄릿>을 다양하게 읽고자하는 시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http://blog.naver.com/bagoomy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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