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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릉이 참 아름답죠?  아랍인 모습의 무인석(사진 앞)도 눈에 띕니다.
괘릉이 참 아름답죠? 아랍인 모습의 무인석(사진 앞)도 눈에 띕니다. ⓒ 추연만
신라말기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괘릉(卦陵)은 작은 연못에 관을 걸어 흙을 쌓아 능을 만들었다는 전설에 따라 붙은 이름이다. 왕릉에는 특이한 돌 조각상이 여럿 있다. 왕릉 입구에는 능을 호위하는 무인상이 마주보고 있고 그 뒤로 문인석 한 쌍이 서 있다. 그리고 괘릉을 지키는 4마리 사자상이 배치돼 있다.

왕릉을 찾은 이들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무덤 남쪽입구에 서 있는 아랍인 얼굴의 무인석이다. 무인석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과 덥수룩한 수염이 조각되어 동양인의 모습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아랍인의 두건인 터번을 쓴 모습도 잘 나타나 있고 팔, 다리도 흡사 서양인 체격이다.

왕릉을 지키는 장수 얼굴을 왜 아랍인으로 조각했을까? 신라 사람들은 덩치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양인의 체격에서 풍기는 이색적인 분위기가 왕릉을 호위하는 무사로 제격이라 판단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왕릉에 아랍인의 모습을 조각할 정도로 당시 신라인들은 서역인과 활발한 국제교류를 한 것이다. 이런 아랍인 조각상은 경주시 안강읍의 흥덕왕릉에도 있다. 신라 흥덕왕은 '국제무역왕'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로 임명한 장본인으로서 괘릉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원성왕의 손자다. 이런 사실은 당시 당나라와 유럽을 잇는 중간 상인 역할을 한 아랍인들이 신라와도 활발한 국제교류를 한 것으로 추정하게 한다.

괘릉을 지키는 4마리 사자. 사자는 전체적으로 힘찬 모습을 하고 있으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괘릉을 지키는 4마리 사자. 사자는 전체적으로 힘찬 모습을 하고 있으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 추연만

괘릉 십이지신상
괘릉 십이지신상 ⓒ 추연만
괘릉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4마리 사자상도 다른 무덤과 다른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자상은 힘이 넘친 모습이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각각 두 마리씩 마주 보고 있으면서 몸체는 그대로 두고 머리만 돌려 자기 방향을 향하고 있다. 예로부터 여러 무덤에는 사자상이 흔히 등장하나 괘릉처럼 힘차고 밝은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그래서일까? 문화재청은 올해 1월 괘릉의 무인석과 사자상 등 석상(石像)·석주(石柱)를 보물(제1426호)로 지정했다. 그 후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경주를 방문해 "청장 직권으로라도 괘릉 석상을 올해 안에 국보로 지정토록 하겠다"고 하면서 그 가치를 인정했다. 그러나 괘릉 앞 안내판에는 보물 지정을 알리는 문구조차 없다. 허술한 문화재 관리의 현장을 보는 듯해 아쉬움도 컸다.

무덤 주위의 잔디밭에는 물이 스며들고 있는 흔적이 여러 곳에 보이고 서쪽에는 우물 흔적도 보인다. 연못을 메우고 왕릉을 세웠다는 전설과 괘릉의 습한 땅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보통사람들도 마른땅이 아닌 습한 곳에는 무덤을 잘 쓰지 않는데 왕릉을 이런 땅에 쓴 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한 때는 수중왕릉과 연관시켜 문무왕의 무덤이 아니냐는 주장돼 제기되기도 했다.

동쪽 소나무 사이로 본 봉분
동쪽 소나무 사이로 본 봉분 ⓒ 추연만

괘릉 뒷쪽에서 울산 방향을 보며
괘릉 뒷쪽에서 울산 방향을 보며 ⓒ 추연만

서쪽 소나무 사이로 본 봉분
서쪽 소나무 사이로 본 봉분 ⓒ 추연만
더욱이 신라 왕경과 거리가 먼 이곳에 크고 화려한 왕릉을 세운 것도 지금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다만 지방호족의 위세가 강화되고 왕권이 약화된 신라말기에 왕릉건축이란 대규모 공사를 통해 다시 왕권강화를 시도한 것이 아닐까란 추측을 해볼 뿐이다. 괘릉과 더불어 경주시가지와 먼 거리에 있는 안강읍의 흥덕왕릉(원성왕의 손자)을 본 다음에도 이와 같은 추측을 했다.

어쨌든 괘릉은 크고 화려하다. 울산방향을 내려다보는 동산에 자리한 괘릉은 봉분을 둘러싼 조각들도 예술가치가 높다는 평이다. 무덤을 보호하는 둘레석과 판석에는 특히 돋음새김한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눈에 띈다. 아직도 원형이 잘 보존된 상태다.

이러한 조각품 못지않게 괘릉의 가치를 꼽으라면 나는 무덤을 둘러싼 소나무라고 꼽는다. 소나무가 없는 괘릉은 지금보다 못할 것이 분명하다. 지난 달에‘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이 경주 서악동 무열왕릉 근처에 발생한 것을 본 뒤라 더욱 걱정이 앞선다.

경주시내에서 먼 곳에 위치한 탓인지 괘릉을 찾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호젓한 분위기에서 찬란한 신라문화를 감상하기에는 더 할 나위없이 좋은 곳인데도 말이다. 나들이 나온 어린이집 원생들이 괘릉의 넓은 잔디밭을 신나게 뛰놀고 있다. 비온 뒤라 그런지 능 주위에 선 소나무가 더욱 푸르게 보인다.

아이들이 "사진 찍어달라" 합니다.
아이들이 "사진 찍어달라" 합니다. ⓒ 추연만

나들이 온 아이들이 괘릉 잔디밭에 신나게 뛰놀고
나들이 온 아이들이 괘릉 잔디밭에 신나게 뛰놀고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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