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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다리 중앙에 홀로 선 전태일열사의 동상
전태일다리 중앙에 홀로 선 전태일열사의 동상 ⓒ 강수천
우리나라 의류도매상가의 원조격인 평화시장(구평화시장)은 언제나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나올때마다 "악덕사업주"의 본고장처럼 그 이름을 부끄럽게 올려야만 했다. 청계천 새물맞이를 하는 바로 오늘, 평화시장 옥상에서 전태일을 만나보았다. 또한 평화시장 상인들과 평화시장을 수십년째 지키고 계신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청계천 복원공사의 시작과 함께 평화시장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평화시장 앞은 늘 시끄러운 공사소음으로 가득했고, 평화시장을 찾는 손님들은 공사로 인해 막히는 도로에 몇시간씩 차를 대기하며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야 했으며 공사장의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 써야만 했다. 손님들이야 가끔 찾는 곳이니 이해하고 넘어가 줄 수 있었겠지만 상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부분이다. 하지만 평화시장의 상인들은 놀라우리만큼 잘 참아주었고 청계천 새물맞이를 하는 오늘 오랫동안 기다려온 양 삼삼오오 거리로 나가서 새물맞이를 하고 있었다.

전태일다리(버들다리)가 코 아래 내려다보이는 평화시장 옥상에 올라 전태일을 추억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기념동판들을 읽는 모습, 전태일 동상을 만지며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 아이들에게 전태일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젊은 부부들. 청계천이 막혔던 흐름을 새로이 시작하면서 평화시장과 전태일의 가깝고도 먼 거리만큼이나 전태일다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도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태일다리를 내려다보며 만난 평화시장 상인 오모씨(여,52)는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청계천이 복개되고 고가도로가 생기기 전만 해도 이 거리에 온통 염색을 하는 공장들이 가득했었고 평화시장에도 공장들이 가득했다"며 전태일에 대한 자신의 심정과 함께 평화시장의 옛 모습을 추억하였다.

평화시장에서 수십년째 일하고 있다는 한 직원은 전태일과 평화시장의 가깝고도 먼 사이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증의 관계"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당시에야 얼마나 악덕업주들이 많았느냐, 비단 평화시장 뿐 아니라 대부분의 공장과 사업장들이 명절에도 고향에 보내주지 않거나 달랑 옷 한 벌 사 입혀서 고향에 내려 보내고, 밤샘작업을 시키는 등 노동착취가 심했었다" 또한 현재의 평화시장의 모습에 대해 "전태일의 죽음 덕분에 세상이 달라졌다는 걸 평화시장 상인들도 다 알고 있고, 지금 평화시장을 지키는 상인들도 대부분 전태일과 동시대를 살아가며 힘든 노동착취를 당했던, 어떤 면에서 전태일의 동지들이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즉 지금의 평화시장과 전태일은 어떤 면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라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평화시장은 "악덕사업주들의 시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오니 참으로 애매한 관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날마다 전태일 다리를 건너 출퇴근 하고 있는 평화시장 상인들. 그들에게 있어 전태일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세인들의 선입견과 달리 대부분의 평화시장 상인들에게 전태일의 의미는 우리가 보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화시장 옥상에서 내려다본 전태일다리
평화시장 옥상에서 내려다본 전태일다리 ⓒ 강수천

아이들에게 전태일열사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는 젊은부부
아이들에게 전태일열사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는 젊은부부 ⓒ 강수천

평화시장 앞 최고 인기인은 전태일열사
평화시장 앞 최고 인기인은 전태일열사 ⓒ 강수천

전태일 다리 바로 상류에 위치한 나래교
전태일 다리 바로 상류에 위치한 나래교 ⓒ 강수천

시민들의 정성으로 전태일다리를 장식하게 된 동판들
시민들의 정성으로 전태일다리를 장식하게 된 동판들 ⓒ 강수천

동판의 글들을 읽으며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동판의 글들을 읽으며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 강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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