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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 되어가는 일상, 현대인들이 갑갑한 빌딩 숲을 벗어나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추억하고 싶은 것일까? 대중 문화에서는 이런 문화 형식들을 통상적으로 '키덜트 문화'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갖가지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장난감과 캐릭터 상품의 소비를 통해 대리 충족하는데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것을 '키덜트 문화'인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도 있다.

문화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키덜트 요소는 그 양상은 어떠하고,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떠한 함의들을 내포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키드(Kid)'와 '애덜트(Adult)'가 합성된 것이 '키덜트(Kidult)' 다. '키덜트'는 어른이지만 어린이의 감수성을 가진 이들이고, 이들의 문화를 말한다. 또 키덜트 문화는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욕구를 겨냥한 다양한 문화 행동를 가리킨다.

특히 20-30대를 핵심적인 문화군으로 보고 있다. 다만, 어른들을 겨냥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시각에서 성인적 요소를 결합시키기도 한다. 즉 아이 같은 어른뿐만 아니라 어른 같은 아이까지도 포함된다.

키덜트 문화는 영화, 소설, 패션, 애니메이션, 광고 등 대중문화 전 영역에서 새로운 문화신드롬으로 확산되어 왔다. 우선 1970년대 한국산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로버트 태권V' 복원을 들 수 있다. 그간 어릴 적 이 영화를 본 이들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옛날 포스터 모으기, 캐릭터 상품 만들기, 영화시사회 주최 등을 활발하게 해왔다.

키덜트 문화 신드롬을 본격적으로 확산시킨 작품은 조앤 롤링의 모험 판타지 소설인 해리포터 시리즈. 이 작품은 전세계 초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고, 영화로도 연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팬터지는 어른과 아이 모두가 좋아하는 소재이고, 해리 포터의 경우 팬터지이면서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개연성을 갖추고 있어 어른들에게도 인기를 끈 것이다.

원래 15세 이하 청소년과 어린이를 겨냥해 만든 방송만화전문 케이블 채널 '투니버스'를 주로 아이들이 보는 방송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TNS 미디어코리아 연령별 케이블 방송 시청률 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이 가장 즐겨보는 케이블 채널이 바로 투니버스(시청률 35.8%)이기도 했다.

트렌드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광고도 키덜트들의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어린이와 어른을 동시에 타깃으로 한 동화 같은 분위기의 광고, 과장된 몸짓, 만화기법들이 과자와 스넥, 아이스크림 등의 광고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유통업체에서는 쇼핑과 놀이를 동시에 즐기려는 키덜트 족의 욕구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추억의 불량식품이나 추억의 오락게임, 만화의 재등장도 키덜트 문화에 속한다. 키덜트 인기의 원조격인 게임 시장은 오랜 불황에도 '플레이스테이션''X박스' 같은 비디오 게임기를 통해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구매자의 65%가 20∼30대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흔히 어른들과 아이들이 하는 게임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은 20∼30대도 좋아한다.

유아기의 상징으로만 여겨졌던 인형이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인형을 '입양'해 키운다. 바비와 구체관절인형, 마담 알렉산더, 슈슈 등 인형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2005년 패션 트렌드는 '소녀 같은 이미지'다. 어리고 깜찍한 느낌의 옷들이 유행이다. 바로 소녀 취향의 '걸리시족(Girlish)' 취향이다. 걸리시는 키덜트의 한 부류인데 신체적으로 어른이지만 심리상태는 어린이인 상태라고 보면 된다.

레고 인터넷 카페에는 10대보다 20대가 더 많다고 한다. 또 방학이면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극, 가족 뮤지컬이 대거 등장한다.

문근영이라는 배우의 순수성은 전국민의 여동생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했다. 문근영을 두고 '어른 되기에 대한 두려움'이 배어있는 시대적 아이콘이라는 평가도 있다.

<개그콘서트>의 '붕숭아 학당'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고전적인 키덜트 문화를 의미한다. 최근의 '장난 하냐', '집으로'도 마찬가지다. <웃찾사>의 '헹님아'나 '1학년 3반'도 이러한 키덜트 문화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그려지는 세계도 어른들이 등장하지만 동심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많은 개그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키덜트 성을 일찍부터 지향해왔다.

특히 방송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누구나 어린시절이 있고 그에 따른 추억이나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추억은 정을 태동시킨다. 희로애락을 어린이처럼 표현하고 싶지만 체면 때문에 안으로 삭이며 살아온 어른들에게 키덜트 문화가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힘이 되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 애환이 묻어있고 보고 싶은 친구의 얼굴들이 상품에서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그것을 소재로 펼치는 것이 개그 프로그램이다. 개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키덜트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기본으로 한다. 더구나 개그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인 비정상적인 상황 설정은 웃음을 주는 면이 있다. 바보를 중심으로 개그를 펼치는 것이 대표적이다. 마찬가지로 갖가지 상상을 불허하는 황당한 말이나 표정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용인되는 것이 유아적 상황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황당해도 웃음을 유발할 뿐이기 때문이다.

키덜트 성향은 전 연령대에 걸쳐 나타나지만 이것을 곧바로 소비와 연결시키는 층은 왜 주로 2030세대일까? 이는 주위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젊은 세대의 당당함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더 이상 키덜트적 성향을 퇴행이나 비정상적인 소아병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키덜트란 말이 생기기 전에는 어린아이 같은 취향의 삶을 즐기는 것을 '피터팬 증후군'으로 불렀다. 여기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서 현재나 과거에 대한 집착과 책임감 결여 등으로 정신병리학적 차원에서 논의되었다.

키덜트 족에 대해 '나이 값을 못한다.' , '철이 안 들었다'는 등의 비판도 있다. '철들길 거부하는 어른'의 증가에 정신적 병리, 퇴행이라고도 한다. 즉 정상적인 성인대로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고 그것을 거부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전문가들은 다르게 지적한다. 어린 순간에만 머물려 하는 소아병적 현상 '피터팬 신드롬'과는 다르다고 한다. 피터팬신드롬은 어린아이로만 머물며 성장 후에도 현실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심리 증상이다. 반면 키덜트 문화는 동심이 깃든 상품을 소비하면서 재미와 유쾌함을 추구하는 경향이라고 본다.

왜 이렇게 '키덜트 문화'가 번지는 것일까?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현실도피적 취향쯤으로 보이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너무 빨리 성숙한 성인들이 어린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상품자본이 교묘히 부추겨 상승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물론 키덜트 문화는 어른들에게 과거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만든다. 일종의 '향수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과거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다. 현실이나 미래는 언제나 불안하고 불투명한 반면 과거는 명확하고 아름다워 보이며 즐겁기까지 하다.

또 생존 경쟁이 치열한 현실, 그에 따른 두려움과 부담감, 공포증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 직장 얻기가 별 따기인 현실에서 사회인, 즉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두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발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현실에는 없는 어린 시절의 세계를 대변하는 것들, 상징체, 상품들을 선택해 대리 만족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은 순수성을 지향하게 한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어린 시절 갖고 있던 꿈이나 환상을 다시 찾고 싶어한다. 사실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본성은 잠재적으로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환경의 변화가 심해지면서 더욱 도드라지는 것이다. 각박한 세상에서 순수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키덜트적 성향을 보이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일 것이다.

키덜트 문화를 거꾸로 어린이들의 '조기 성인화'에 따른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컴퓨터와 핸드폰, 팬시용품 등을 통해 어린이들은 과거 기성세대들이 어린시절에 경험할 수 없었던 문화적 경험을 하게 된다. 따라서 몸은 아이인데 인식구조는 성인처럼 되는 불균형 속에서 키덜트 문화가 부정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목표물이 된다. 아동은 중요한 소비자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소비욕구는 이제 어른들의 소비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키덜트 문화는 우리 시대 소비문화의 새로운 상품이고 시장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적인 감성을 지나치게 상품화한 극단적인 결과일 수 있다. 키덜트 문화는 소비 자본주의와 맞물리면서 문화자본을 확대 재생산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gonews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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