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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검은다리 실베짱이
검은다리 실베짱이 ⓒ 권용숙
지금까지 베짱이는 풀만 뜯어 먹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베짱이는 바이올린을 켜며 하루종일 배고파도 먹는 것조차 귀찮아서 노래만 부르는 게으름뱅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베짱이는 노래만 하다 굶어죽는, 저 먹을 것도 챙기지 못하는 게으름뱅이는 아니었습니다.

몸집이 작은 줄베짱이 실베짱이 등은 밤새 노래하다 새벽에 목이 마르면 풀잎에 달린 아침이슬도 따 마시고, 꽃 위에 앉아 꽃술도 하나씩 빼먹기도 하며, 실제로 작은 보리수 열매 위에 앉아 산과일즙을 빨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등에줄이 있는 줄베짱이
등에줄이 있는 줄베짱이 ⓒ 권용숙
베짱이는 줄베짱이와 실베짱이, 중베짱이 등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그중에 중베짱이란 녀석의 그 왕성한 식욕 앞에서 두손 들고 말았습니다. 저녁 무렵 현장을 목격했는데 베짱이는 저녁식사 중이었습니다. 중베짱이가 뾰족하고 톱날같은 입으로 송충이 닮은 애벌레를 시커먼 털까지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는 것을 보니 내 마음 속에 있던 동화를 잃은 듯하여 슬프기까지 하였습니다. 우아한 베짱이가 어떻게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벌레를 생으로 씹어 먹는 거지.

소름끼치는 중베짱이 저녁식사
소름끼치는 중베짱이 저녁식사 ⓒ 권용숙
베짱이는 풀만 먹고 멋진 날개옷을 입고 쓰르르쓰르르 바이올린을 켜며 노래를 부르고 있어야 하는데 어찌된 일입니까? 세월따라 베짱이가 스스로 변했는지도 모르겠다고요?

하지만 베짱이가 하루아침에 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중베짱이는 동화 속의 공동 주연인 부지런하기 그지없는 개미를 즐겨 잡아먹고 산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베짱이는 개미를 먹으며 속으론 너 때문에 내 이미지 망가진 복수얏~! 이럴지도 모르겠지요.

배터지도록 먹은 중베짱이 볼록한 배와 입닦는 모습
배터지도록 먹은 중베짱이 볼록한 배와 입닦는 모습 ⓒ 권용숙
베짱이의 저녁 식사를 몰래 훔쳐보며 그동한 게으름뱅이라고만 생각했던게 조금은 미안해졌습니다. 베짱이는 게으름뱅이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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