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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러브 레터 읽어주는 남자>
책 <러브 레터 읽어주는 남자> ⓒ 명진출판
“사람 그리운 일도 입덧 같아요. 내가 아주 좋아했던 음식이 아닌데, 며칠째 내내 떡볶이 생각이 간절했어요. 떡볶이가 담긴 흰 접시가 생각나고, 옆에 놓이던 멸치와 양파를 넣어 우려낸 따뜻한 국물도 생각났죠. 당신이 입술을 오므려 바람을 만들면서, 숟갈로 떠올린 국물을 식히던 모습도 기억에 따라왔죠.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곱던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얼마나 행복하던지,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다는 게 감사할 정도였죠.”

드디어 기다리던 가을이 왔다. 밤에 길을 걸으면 왠지 모를 상쾌한 기분이 들고 낮에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만 올려 보아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가을. 사랑하는 사람과 예쁘게 물든 단풍 아래를 지나고 싶고 덕수궁 돌담길이 유달리 많은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그 가을이 드디어 우리 곁에 온 것이다.

가을이면 왠지 러브레터 한 장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열애 중인 커플은 물론일 것이고 이미 결혼해서 나이가 지긋해지거나 혼자 쓸쓸한 가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가을에 받는 편지 한 장은 흥분되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가을에 관한 노래 중에 유독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와 같은 가사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책 <러브레터 읽어주는 남자>는 이 가을에 러브레터를 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히 달래주는 사랑의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책의 저자가 쓰는 러브레터의 내용은 마치 내가 그 편지를 받아 보는 사랑의 대상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찬 이 귀여운 편지들을 보고 웃음짓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상해졌어요. 당신을 보고 난 뒤 세상의 모든 것이 깨끗이 사라진 것만 같아요. 오직 넓은 바다 위에 당신이란 섬 하나, 아무도 닿지 않은 푸른 섬 하나, 내 눈 앞에 계속 출렁거려요. 무슨 일을 해도, 무슨 말을 해도, 어디를 걸어가도 어디에 앉아 있어도, 내 시선은 늘 그 섬에 고정되어 있어요. 대체 왜 저 섬이 내 눈에 들어 왔을까. 저 섬이 내가 사는 바다에 함께 떠 있었다니.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믿어지지 않는 당신입니다.”


저자가 쓰는 편지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흔히들 ‘그 사람이 내 눈에 쏙 들어 왔다’고 많이 말한다. 이들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유독 그 사람만 눈에 띈다고 말하거나, 이상하게 그 사람만 너무 예쁘게 보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저자가 표현하는 ‘섬’, 자신의 사랑만 눈앞에 보이고 다른 것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랑의 콩깍지가 씌워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빠져 본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시간대의 버스를 타면서 매일 보게 되는 수많은 다른 학교 학생들 중 유독 내 눈에 들어왔던 그 남학생, 혹은 그 여학생. 그 상대에 대한 짝사랑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른이 되어 참석한 모임 중 유난히 눈에 띄었던 수줍은 모습의 그, 혹은 그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만의 사랑’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자신에게 꼭 맞는 제짝을 찾아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며 결혼을 하고 산다. 그 사람을 망망대해에 혼자 놓인 ‘섬’으로 착각하지 않는 한 그 열애의 감정은 결코 생길 수 없다. 또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도 자신은 그 상대를 ‘섬’으로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나를 그저 지나가는 한 행인으로 여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슬프게 사랑의 아픔이 묻어나는 편지도 있다. 사랑하는 마음과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편지를 보면서 ‘아, 나도 한때는 사랑의 상처로 괴롭던 적이 있었지’ 하고 회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 아픔의 순간을 잘 포착하여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아파야 사랑입니다. 아픈 사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랑 모두가 아픕니다. 사랑이 끝났을 때만 아픈 게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구석구석이 아팠습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가슴 한가운데에서 일어나던 까닭 없이 쿵쾅거리며 가슴이 답답해지던 현상. 당신이 무심히 내뱉는 말 한 마디에, 죽고 싶을 만큼 서러웠던 우울. 당신이 내 곁에서 잠깐 멀어지는 일이, 현기증처럼 어지럽던 일.”


사랑의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여정인가. 그러면서도 자꾸 그 속에 빠져 드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 속에 ‘누군가를 사랑하라’는 강력한 유전자가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사랑하고 아프고 성숙하면서 일생을 보낸다. 그래서 온갖 사랑과 아픔의 메시지를 담은 이 책의 러브레터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어느 힘든 날 아침, 내 전용 노트북을 펼치자 꼬깃꼬깃 접힌 편지 한 장이 나온다. “들리니? 가을이 오는 소리가…”라고 쓰여진 편지지의 겉을 본 순간 왠지 찔끔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여러 가지 일로 피곤하고 힘들어 하는 나에게 격려의 말을 잔뜩 담은 가을 러브레터. 그 편지 한 장 덕분에 가슴 속에 담긴 온갖 불평들이 한꺼번에 날아갔던 순간이 나에게도 있다.

이 가을에는 누군가의 러브레터를 기다리지만 말고 내가 직접 펜을 들어 써 보면 좋겠다. 가을을 잔뜩 머금은 소박한 글재주의 편지. 그 상대가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면 어떤가. 항상 곁에 계시지만 잊고 살기 쉬운 존재인 부모님, 다투고 토닥거리고 가끔은 밉지만 그래도 늘 가까이 있는 나의 친구, 내 동생,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도 좋을 것이다.

편지를 쓰면서 얼마나 자신이 행복한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자. 누군가에게 가을의 아름다움을 듬뿍 담은 편지 한 장을 보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편지 한 장에 당신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받은 사람은 얼마나 또 행복한 사람인가!

러브레터 읽어주는 남자

이상국 지음, 명진출판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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