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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범씨.
서승범씨. ⓒ 우리안양
"아무리 소중하게 우편물을 다룬다 해도 젖기 일쑤라서… 비 오는 날이 제일 힘들지요"라고 말하는 서승범(42세) 집배원의 왜소한 어깨 너머로 믿음과 신뢰가 물씬 풍긴다.

그는 7시에 출근해 아침에 오는 빠른 우편물과 등기, 택배 등을 챙기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9시, 그는 이 시간만 되면 같이 일하는 120여명의 집배원들에게 서비스교육을 한다. 그는 서비스교육을 전파하는 CS리더(고객만족)다.

"고객은 우리의 희망. 오늘도 다 함께 실천하자. 용모 복장을 깨끗하게. 안녕하십니까. 좋은 하루 되십시오." 직원들과 함께 매일 복창하는 구호지만, 외칠 때마다 각오가 새롭다.

그는 집배실을 나서기 전, 좋은 인상으로 고객을 만나기 위해 1분 명상을 한다. 그가 체질에 딱 맞는 천직이라고 자부하는 집배원이 된 것은 1993년 길을 가다가 우연히 모집광고를 보면서부터다.

하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그가 맡은 첫 배달 구역은 달안동 샛별 아파트였다. 처음 그는 배달만 끝나면 집에 가는 줄 알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고 한다.

"어~유 아파트란 곳엔 우편함이 쫙 있는 거예요. 어디에 어떻게 넣는 줄도 모르고 진땀을 흘리다보니 자정이 넘었어요." 그날 그는 밤12시가 넘도록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굶었다고 한다. 그 후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우체국에 돌아와서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등기장을 쓰고, 반송사유까지 쓰는데 이 일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골백번도 더 생각했다고 한다.

"비에 젖은 종이가 번져 다림질까지 했었어요. 처음엔 우체부가 이런 것인 줄은 정말 몰랐어요. 지금은 PDA(개인용 휴대단말기) 지급으로 엄청 좋아졌지요"라며 옛날을 회상한다.

요즘은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으로 안부를 전하기에 가슴 시림 육필 편지는 급격히 줄었고 각종 요금 청구서나 홍보물이 그 자리를 대신한 지 오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소포 전달.
소포 전달. ⓒ 우리안양
군대에서 온 편지나 장정들의 소포를 배달할 때면 아들의 체취가 배인 옷을 받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어머니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한다. 또 간혹 하단에 '우체부 아저씨 감사합니다'란 문구만 보아도 그의 하루는 그저 즐겁다.

노인들이 "힘들지. 고생이 많네"라고 격려할 때나, 발음조차 분명하지 않은 아기들이 "아저씨! 안녕. 빠이빠이"하며 고사리 손을 흔들 때면 뭉쳤던 다리 근육이 확 풀리는 느낌이라고 한다.

경력 11년으로 이젠 베테랑이 된 그는 자신의 배달구역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었다. 순서대로 구분한 우편물이지만, 구 도시는 1번지와 2번지가 뚝 떨어진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달리다시피 시간에 쫓기는 배달 업무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그는 귀띔한다. 골목길을 역주행하거나 종종 인도로 오토바이를 몰다보면 접촉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또 때로는 풀어놓은 개에 물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대충 연고만 바르고 배달을 했는데 얼마나 아프던지 그 후부터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부터 쿵쿵 뛴다고.

어찌 이것뿐이랴!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날 분뇨처리장을 지나다가 쌓아둔 공사장 모래더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며 무릎부상을 입었다. 병원에서 꿰매고 붕대 감은 채 계속 배달을 했는데 그때 그 일은 지금도 생각조차 하기 싫단다.

일반우편은 함에 넣으면 되지만, 등기와 택배는 일일이 사람을 만나야 된다. 헉헉대며 6층까지 올라갔는데 빈집일 경우에는 허탈함을 감출 수 없다고 한다. 더군다나 요즘은 맞벌이 증가로 빈집이 많기에, 방문 일시와 재 방문 일시를 붙여 놓고 나오는 일이 빈번하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편지라면 대부분 사람들이 반갑게 뛰어 나왔는데 지금은 그런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우편물의 대부분이 독촉장이나 주차위반, 법원등기, 내용증명 등이기 때문이다. 우편물을 전달하고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꽝 닫는 문소리에 기분이 상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광고성 우편물이 늘어 안 가져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송시키면 '왜 살고 있는데 반송이냐'고 보낸 측의 항의전화 또한 골치라고.

우편물 순로 구분.
우편물 순로 구분. ⓒ 우리안양
하루에 보통 1500여 통을 배달하지만 카드결제나 의료보험, 전화요금 등 각종 공과금이 몰리는 15일부터 25일 사이는 3천여 통으로 늘어나고, 신도시 아파트의 경우엔 5천여 통이나 된다고 한다. 그는 보통 배달이 끝나면 우체국에 들어와서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순서대로 구분하고, 8시쯤 퇴근하지만 각종 고지서가 집중되는 시기엔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퇴근길은 언제나 녹초가 되지만, 20개월 된 아들의 재롱을 보며 아내와 보내는 시간은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고 한다. 그는 "집배원은 중노동이라서 살찐 사람이 없지만, 일과 운동은 다르죠"라며 쉬는 날이면 왕복 28km 정도 안양천을 달리며 체력을 다진다.

그에겐 배달이 전부가 아니다. 빈틈없는 업무 중에도 고객들에게 유익한 우체국 상품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나만의 우표'는 개성 만점으로 결혼, 입학, 회갑, 생일 등을 기념하여 우표와 사진이나 캐릭터 등을 나란히 인쇄하여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고 기업의 마케팅용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고객 맞춤형 우편엽서'는 고객이 원하는 사진, 기업이 원하는 로고나 광고 등을 담거나 보내고 받는 사람의 주소와 성명은 물론 통신문을 인쇄해 발송업무까지 대행 해주기에 개업과 이전행사, 기념일 등을 홍보할 수 있지요. '새로운 우편서비스 전자우편'는 인사장, 애경사답례장, 기업상품안내 홍보물 등을 우체국 창구에 접수하거나 인터넷우체국을 통해 전송하면, 출력부터 봉투에 넣어 빠르고 안전하게 배달해요."

역시 홍보대사답다. 그는 많은 우체국 상품들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 2005년 2/4분기 안양우체국 배달친절왕(cs star)으로 선정됨과 동시에 서울체신청 집배분야 cs superstar의 영광을 차지하며 서울체신청장 상을 수상했다.

집배실 배진석 실장은 "서승범씨는 매사에 성실하고 정확하기에 민원유발이 없고, 모범적이라서 리더로 선정되었지요"라며 "흠이라면 키가 작아서 다른 사람 한발 뛸 때 두발 뛰는 것뿐"이라며 웃는다.

그는 "변해야 살기에 직원들 모두 인사나 표정관리 잘하고, 예의바르게 고객을 대하지요"라며 "애쓰고, 열심인 집배원들도 많은데 제가 뭘 했다고…"라고 겸손해 했다.

배달을 나서며.
배달을 나서며. ⓒ 우리안양

덧붙이는 글 | 월간 우리안양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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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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