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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 세개를 발견하고 한동안 기다렸습니다. 참으로 송이버섯 만나기 힘들었습니다.
송이버섯 세개를 발견하고 한동안 기다렸습니다. 참으로 송이버섯 만나기 힘들었습니다. ⓒ 김규환
지척에 두고 용이 구름을 타고 굽이굽이 아흔아홉 고개 넘어가는 장관을 놓치고 말았다. 차를 수리하고 기름을 채우려는데 어찌나 차량 통행이 뜸하던지 마지막 주유소 쥔장은 시절을 모르고 1300원대 가격표 그대로 둔 채 문을 닫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다.

물어물어 양양읍내 쪽으로 10분여 달려 주유소를 찾았다.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오전에 놀던 갈천약수쪽으로 오던 길에 전나무 비슷한 소나무를 보자 운전대 잡은 마음이 팽하게 토라지듯 요동을 친다. 송이버섯 생각에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이다. 미천골 휴양림 앞에서다.

약수터 마을에서 만난 할아버지 말씀으론 아무나 송이를 채취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단속반원에 걸렸다가는 적지 않은 돈을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니 이를 어쩔거나. 냅다 휴양림관리소로 찾아가 송이 취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루터기를 찾아가 보란다.

송이를 따와 크기별로 나누고 있는 미천골 주민들은 인심도 넉넉했다.
송이를 따와 크기별로 나누고 있는 미천골 주민들은 인심도 넉넉했다. ⓒ 김규환
여기까지는 잘 풀려가는 느낌이다. 점심 때라 식당엔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인을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조금 기다리면 버섯을 따러 간 사람들이 곧 도착할 거라며 데리고 간 곳은 바로 옆 건물 송이 집하장이었다. 세 명씩 두 개 조로 나눠 두 골짜기를 하루씩 번갈아가며 따온다고 한다.

마을마다 군청에 버섯 채취 신청을 하면 세금으로 얼마씩을 나눠 내고, 가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엘 올라도 한 해에 고작 소득이 각자 150여만원밖에 되지 않는단다. 수입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에 다소 의아했다.

따온 버섯을 크기별로 구분하는데, 이제 막 피어나 꼭 남자 그것을 닮은 건 1kg에 20만원, 갓이 활짝 피어 한물 간 찌끄러기는 5만원에 시세가 형성된다고 한다. 현지 사람들도 내다 팔 수 있는 건 손도 대지 못하고 흐물흐물하거나 날을 경과한 몇 개를 나눠서 고기에 볶아먹는 정도라니 송이가 얼마나 귀하면 이럴까 싶었다.

더더구나 이렇다면 외지인을 얼씬도 못하게 할 테니 난감한 일이다. 불법 채취하다 '신세 조지고' 싶지는 않았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배는 꼬르르 소리를 내며 밥을 달라한다. 다녀 온 사람들이 칼로 송이에 묻은 흙과 솔잎을 털어내며 먹을 요량으로 손질을 하여 조금씩 나눠 먹는다.

열심히 취재중인 동행인. 한 조가 6kg 가량 따왔다.
열심히 취재중인 동행인. 한 조가 6kg 가량 따왔다. ⓒ 김규환
나도 거기에 동참하여 향기를 씹어봤다. 마치 토끼가 씀바귀를 씹듯 송곳니를 들썩이며 팽이버섯 크기로 잘게 찢어 톡톡 끊어 먹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섬유질이 기분 좋게 씹힌다. 솔잎 향기가 콧방귀를 뀌듯 흘러나온다.

골짜기가 워낙 깊어 동서남향 가리지 않고 30, 40년 이상 된 소나무 밑에는 어김없이 버섯이 있지만 가장 많이 나는 곳은 그래도 동남향보다는 서향과 북향이고 8, 9월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종균이 훨씬 잘 퍼져 그 해엔 수확이 좋다고 한다.

따고난 자리는 흙을 채우고 솔잎을 덮어줘야 하며 버섯이 날 법한 자리는 함부로 디디지도 않는다. 주로 9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10월 초순을 넘기면 서서히 양이 줄어든다고 한다.

도로 건너편 산을 가리키며 저쪽은 어떻냐고 물었더니 활잡목(活雜木)이 꽉 찬 곳엔 없고 막상 버섯을 따러 가보면 소나무 아래는 환하게 뚫려 있다 한다. 게다가 최근엔 산림조합에서 입찰을 보지 않는 터에 상인들 농간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싸리버섯은 군데군데 많이 나 있었다. 꽃이 핀 듯 참 예뻤다.
싸리버섯은 군데군데 많이 나 있었다. 꽃이 핀 듯 참 예뻤다. ⓒ 김규환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쉬 볼 수 있는 소나무는 흔히 조선소나무라고 하는 적송(赤松)이자 육송(陸松)이다. 자태가 고와 미송(美松)이라고도 하는데 여타 지역 소나무와 백두대간 소나무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 원형은 평창을 넘으면 대관령휴양림에 잘 보존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금강정맥 근처는 금강송, 봉화군 춘양면 일대에선 춘양목으로 불러 예부터 궁궐을 짓는데 요긴하게 썼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 소나무도 백두대간 등줄기 하나로 강송(江松)이라 부르는데 쭉쭉 뻗어 그 자체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아랜 어김없이 송이버섯을 잉태하고 있다.

끊임없이 오가는 질문과 대화 도중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옆에선 사진을 계속 찍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리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밀착취재도 아닌 직접체험이었다. 이미 심마니들이 죄다 내려와 오늘은 갈 수 없다니 난감한 일 아닌가. 내일 아침 새벽에 같이 가자는 말까지 들었던 터다.

내 머리에 애오라지 자리한 아이디어는 그저 그런 글을 쓰느니 차라리 방향만 알려주시면 우리가 생고생을 다하여 한두 송이라도 따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으로 바뀌었다. 솔잎이 떨어져 있는 솔밭에서 한 컷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서로 공감하던 바 아니던가.

송이풀이 흐드러지게 핀 요즘 멀지 않은 곳에 송이버섯이 있다.
송이풀이 흐드러지게 핀 요즘 멀지 않은 곳에 송이버섯이 있다. ⓒ 김규환
젊은 사장은 교과서 같은 보도기사에 식상했던 듯 내 생각에 맞장구를 쳤다. 쉽지 않을 거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많이 따면 갖다 바치겠노라 했더니 흔쾌히 들어주셨다. "우리보다 더 따면 어쩐대요?"하며 축하까지 해주는 것 아닌가.

'아 드디어 내 손으로 송이를 따보다니!' 어젯밤 주문진 술자리에서 동네사람들에게 당할 뻔했던 걸 조용히 마무리한 보답인지도 모른다. 설렘과 환희로 세상이 바뀌었다. 안내하는 차량을 따라 몇 백 미터 차를 몰았다. 마치 송이를 한 가마나 딴 듯 쿵쾅쿵쾅 염통이 벌렁거렸다.

등산화로 갈아 신고 본격 송이 채취 산행에 나서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분명 나다. 동네아저씨는 댁으로 돌아가고 는개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 산을 올랐다. 밥도 거른 채 1시에 드디어 산골짜기를 헤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엄지만하게 이제 갓 피어난 송이버섯 한 송이.
엄지만하게 이제 갓 피어난 송이버섯 한 송이. ⓒ 김규환
올려다본 숲은 잣나무와 참나무, 소나무 밭이 사이좋게 경계를 나눠 어우러져 있다. 노송 아래서 조금 헤매다가 소나무 밑으로만 방향을 잡았다. 옆 사람은 온데간데없다. 가파른 경사면을 타고 갈지자 걸음으로 소나무 밑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아도 송이는커녕 밤송이 한 개 떨어지지 않았다.

안개보다 조금 굵은 비가 내리면 분명히 한두 개는 보여야 하거늘 이토록 송이버섯 하나 만나기 힘들다니. 거의 꼭대기에 오를 때까지 소나무 군락이 이어졌지만 싸리버섯만 아름답게 피었을 뿐 눈 씻고 찾아봐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 우리 같은 생초보에게 송이는 무슨 송이. 아무나 송이를 딸 수 있다면 다들 도시생활 접고 한동안 버섯 따면 되겠네 뭐. 거북등이랄까, 가뭄에 논바닥 갈라진 듯 3~400년 지난 거목이 20, 30년생 소나무 몇 그루씩을 거느리고 있다.

참나무밭과 소나무밭 경계에 있는 미역귀버섯, 까마귀버섯, 고무버섯이다. 최근 알았지만 씹는 맛이 일품이다. 알지 못하는 버섯은 다 버렸다.
참나무밭과 소나무밭 경계에 있는 미역귀버섯, 까마귀버섯, 고무버섯이다. 최근 알았지만 씹는 맛이 일품이다. 알지 못하는 버섯은 다 버렸다. ⓒ 김규환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줄 기미가 좀체 없었다. 사람 키 높이까지 훤히 뚫려있고 송이풀이 널려 있는데도 한사코 근 40여년만의 해우를 거부하니 무슨 까닭일까? 하루, 아니 꼬박 며칠을 보내야 한 개 만져보는 것 아냐? 이러다간 정말 동네 웃음거리 될까 염려스럽다.

갖은 생각을 하며 두 산자락을 타고 올랐다. 직선으로 가 정상 부근에 나보다 먼저 도달한 사람은 능이버섯 한 개를 땄다며 1차 신고를 한다. 그렇다면 그 쪽으로는 소나무가 아닌 참나무 밭이 시작되는 징조다.

'송이면 몰라도 무슨 능이버섯?'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능선이 갈리는 지점이라 나무 키는 현저히 작아졌다.

큰 나무 옆에 자잘한 소나무가 몇 그루 있고, 진달래나무 바로 앞에 이르렀다. 바닥엔 보랏빛 송이풀이 잔뜩 피어 있고 솔잎이 반쯤 썩어 있는 그 자리, 정말 그 자리에 발그레 살며시 고개를 들고 서울 촌놈을 반기고 있질 않나. 확 소나무 잎이 썩는 냄새가 풍겼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다. 3주 전 '일 능이'를 유명산에서 만나고 5월 '이 표고'를 방태산에서 만났는데 이번엔 '삼 송이'가 내게로 왔다. 감격스러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선 사람들이 송이버섯을 세번째로 치는 까닭이 밉기까지 했다.

돌 하나와 솔잎을 잔뜩 이고 있는 송이버섯. 굳이 모양 좋은 걸 고를 필요없이 다소 쇤듯한 것이 더 향이 진하고 씹히는 맛이 좋다. 손바닥 두개쯤은 되어보였다.
돌 하나와 솔잎을 잔뜩 이고 있는 송이버섯. 굳이 모양 좋은 걸 고를 필요없이 다소 쇤듯한 것이 더 향이 진하고 씹히는 맛이 좋다. 손바닥 두개쯤은 되어보였다. ⓒ 김규환
행여나 주변에 숨어 있는 걸 밟아버릴까 쌍심지를 켰다. 현미경만 없었지, 이를 잡듯 뒤지고 다녔다. 전화를 걸어 동행자에게 희소식을 전하려 해도 묵묵부답. 문제는 내 카메라에 이 놈의 모든 정체를 샅샅이 기록하고 싶었으나 전지가 수명을 다해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펐다.

거의 멈춰 서서 간신히 통화가 되어 곧장 오라고 했으나 방향감각을 상실한 듯하다. 열댓 번 애타게 찾아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안절부절 발을 동동 구르며 사방 20m를 벗어나지 못하며 송이를 그냥 두는 수밖에 없었다. 톡 따버렸다간 후회막급 그 장면을 놓치고 마니 미역귀버섯과 싸리버섯을 손바닥만한 봉지에 담으며 길 잃은 천사를 원망했다.

상봉을 하고 사진에 담고는 다시 능선을 타고 움직였다. 바위가 즐비하고 반대편은 낭떠러지다. 정점에서 한쪽은 소나무가 없다. 첫 삽 뜨기가 어렵지 한번 가닥을 잡으면 넓은 길이 뚫리는 게 세상만사다. 기운을 차리고 몇 걸음 아래로 내려오니 옆사람이 손바닥 두 개를 모은 갓을 쫘악 펼치고 솔잎을 덮고 있는 송이버섯을 땄단다. 어찌나 크던지 날짐승이 쉬어가도 무방하겠다 싶다.

함께 가서 이렇게 싼 값으로 더 나은 경험은 할 수 없다는 김용철씨가 대단한 버섯 하나로 흡족해하고 있다.
함께 가서 이렇게 싼 값으로 더 나은 경험은 할 수 없다는 김용철씨가 대단한 버섯 하나로 흡족해하고 있다. ⓒ 김규환
이제 둘 다 감이 잡힌 듯했다. 헤매기를 20여 분. 아니나 다를까 한 곳에서 무리지어 더이상 욕심부리지 않도록 열두어 개가 발견되었다. 헤실헤실 웃어가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신(神)이 내린 첫 선물치고 부담스럽다. 헤죽헤죽 방실방실 콧노래가 나왔지만 애써 참았다.

바로 밑이 휴양림 들어가는 길이라 그걸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누구에게라도 한 개 빼앗길까 조바심을 내며 차까지 걸어오는데 그 짧은 200m가 어찌나 길었던지 모른다.

해는 낮부터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산에서 3시간여를 보냈으니 허기가 밀려왔다. 서두르지 않으면 1박을 더 해야 한다. 오던 길에 식당 전화번호를 적어 걸었더니 맞지 않다는 신호음만 들렸다.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벌써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켕기는 것도 없는데 괜스레 미안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영동고속도로는 우리를 축하라도 하듯 발갛게 물들었다. 이틀 지나 속사정을 말하고 몇 사람 불러 나눠 먹을 생각에 아직도 내 뇌리엔 송이생각뿐이다. 갑작스레 다가온 송이, 그와 어여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내게 왔다.

녹초가 되었고 버섯 향기만 잔뜩 넣고 온 여행이지만 정말 행복한 가을날이다. 고기에 볶고 송이밥을 해서 먹어보면 대체 어떤 맛이 날까? 이젠 더 이상 송이축제가 부럽지 않은 나날이다.

"이렇게 대단한 이틀은 다시 없을 겁니다."
"그러게요, 이보다 저렴하게 이 많은 경험을 어찌 한답니까."

집으로 돌아와 여독을 풀었다.

서울로 오는 길에 잔뜩 찌푸렸던 얼굴이 발그스레 상기되었던 하늘과 우리.
서울로 오는 길에 잔뜩 찌푸렸던 얼굴이 발그스레 상기되었던 하늘과 우리.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양양송이축제가 이번 주 금요일부터 열립니다. 다시 글을 쓸 예정입니다. 굳이 비싼 것 찾지 마시고 값싸면서도 쫄깃한 송이를 드셔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고생하신 김용철씨께 감사드립니다. 내일은 올 가을 제가 먹은 버섯을 요리로 선보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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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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