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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책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당대
'하워드 진'하면 노암 촘스키와 더불어 반전, 반제국주의 운동을 펼치는 미국의 행동하는 지성으로 유명하다. 이번 부시의 이라크 전에 대하여도 반대 성명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등 미국 내의 진보적 사고를 대표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쓴 저서 중 가장 읽기 쉬운 책이 바로 이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가 아닌가 싶다. 다른 저술들은 대부분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실태를 고발하는 학술적 형태를 띤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마르크스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1인극 형태로 서술되어 보다 흥미로운 내용 전개를 펼친다.

책의 머리말에서 밝히는 하워드 진 자신의 삶은 미국의 소외된 빈민층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열일곱에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서 그는 자본주의 체제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도록 고무되었다. 그러다가 소련에서 공산주의를 빙자한 스탈린주의라는 공포 정치가 행해지는 것을 보고 '무정부주의'에 더 큰 관심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잘 살려 쓴 책이 바로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이다. 저자는 죽은 마르크스를 회생시키고 마르크스 혼자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1인극을 펼치도록 글을 써 나간다. 하워드 진은 다시 살아난 마르크스의 입을 통해 그의 사상이 잘못 해석되어 온 현실을 강하게 비판한다. '공산주의는 곧 소비에트 연방의 독재 정치'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이 무자비한 스탈린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왜곡된 것을 보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나는 세계 곳곳에서 억압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한 사이비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자본주의의 승리에 자못 흡족해하는 서구 정치가와 저술가들로부터도 마르크스를 구해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오늘날에도 근본적으로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분석이 옳다는 것은 날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사건들이 명명백백히 입증해 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그의 시대에 기술 변화와 사회 변화의 유례없는 속도와 혼동을 보았고, 이것은 오늘 날 한층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본주의의 온갖 문제점과 병폐를 고발한 마르크스의 생각들은 현재 그대로 드러나고 있으며 전적으로 옳은 부분이 많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사상은 이루어지기 어렵지만, 그가 비판한 자본주의의 모습은 그 실체를 흉측하게 드러낸 채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책에서 마르크스가 등장하는 부분에 "온통 내 사상은 죽었다고 떠들어대는 말뿐이다. 그래서 나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돌아왔다"라고 울부짖는 설정을 담는다.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혁명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위하는 척 하였지만 사실 일부 권력층의 야심에 의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마치 공산주의 이론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다시 회생한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이 이렇게 왜곡된 채 일부 정치권력을 옹호하는 데에 쓰인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빈곤한 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부자 계급의 배만 부르게 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론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사람들은 '독재를 하다가 멸망한 소비에트 연방'만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론을 알기 쉽게 다시 설명해 준다.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역사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서 나타나, 엄청난 생산력 증가와 전세계 부의 어마어마한 증가를 가져왔는지 보여주고 있지요. 그리고 본성상 자본주의 체제는 그 부를 노동자의 인간성뿐 아니라 자본가의 인간성까지 파괴하는 방식으로 분배하게 된다는 것도."

"바로 지난주에도 나는 미국 노동부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읽었습니다. 여러분의 노동자들은 갈수록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면서도 임금은 갈수록 더 적게 받고 있어요. 그 결과가 뭐지요? 바로 내가 예측한 대로예요. 이제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상위 1퍼센트가 나라 전체 부의 40퍼센트를 거머쥐고 있어요. 그리고 이게 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라는 나라에서 그래요. 자기 국민들만 강탈하는 게 아니라 나머지 세계의 부도 빨아먹고 있는 나라에서요…."


살아난 마르크스의 목소리는 한편으론 하워드 진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실제 오래 전에 마르크스가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 사회에 적용하여 보여줌으로써 자본주의가 지닌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하워드 진의 몫이다.

즉 이 책의 마르크스는 과거의 공산주의 이론가 마르크스일 수도 있으며 또 한편 이 시대의 행동하는 지성인 하워드 진일 수도 있다. 시공을 초월하며 펼쳐지는 마르크스의 독백을 통해 독자들이 명백히 얻을 수 있는 사실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가 지닌 온갖 문제점들에 대한 이해'와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왜곡됨 없는 지식'이다.

"여러분은 이상하지 않으세요? 왜 이렇게, 내가 죽었다고 거듭거듭 선언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의문을 던지는 마르크스. 마르크스가 죽었다고, 그의 이론은 죽은 이론이라고 거듭거듭 선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이것은 자본가들이 그들의 체제를 막강하게 구축하고 공고히 하기 위한 방패막이인 것이다. 우리를 혼란하게 만드는 그들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옳은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한 번쯤 깊이 있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가 제안한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역사 모노드라마

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당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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