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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8월 23일은 저희가 미국으로 유학을 온 지 만 5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애초 주위의 우려와 기대를 뒤로하고 늦은 나이에 유학의 길에 오르면서 저와 아내는 가능하면 열심히 해서 5년 만에 마치자고 다짐을 했지만, 이상하게도 아기, 그러니까 2세 문제에 대해선 서로 별다른 얘기도 계획도 없었습니다.

대학원 입학허가서를 받고 한 달 만에 결혼하고 도피성(?) 신혼여행을 다녀와서는 일주일 후에 바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제주도에 가서 찍은 사진이 단 8장 그리고 결혼 앨범은 3년 후 장모님이 가져와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5년이라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아내도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에 있고 저의 박사논문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힘든 일도 많았지만 보람도 있었다고 서로 다독거리며 이제 남은 기간 동안 유종의 미를 잘 거두자고 격려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큰 보람과 기쁨을 가져다 준 것은 아무래도 첫 아들 용이의 탄생, 존재 그 자체가 아닌가 합니다.

▲ 이렇게 건강하고 밝게 자라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 김대경
자식은 부모 맘대로 안된다?

평소 주위에서 가끔 임신이 되지 않아서 걱정을 하는 부부들 애기을 들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도 적용이 될 줄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순진했던(?) 저희들은 마음만 먹으면 애기를 가지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죠.

처음 한 두 달은 그냥 넘어갔지만 일 년이 지나면서 아내는 인터넷의 임신 관련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체에 별다른 결함이 없는데도 일 년동안 임신이 되지 않으면 ‘불임’으로 규정이 된다는 등 여러 가지 정보를 접하고는 불안감이 더욱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내색은 안 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빨리 2세를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아내 못지않았습니다. 급기야 일년 반이 지난 후 저는 힘들어 하는 아내 기분전환도 시킬 겸해서 유학 온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겨울방학 동안 한국에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극적으로 바로 하루 전날 아침에 혹시나 하는 맘에 임신 테스트를 했는데 양성 반응이 나오더군요. 아내의 황당해 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침 당시 일리노이에 10년 만에 폭설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뒤덮여 있었던 3일 동안 저희는 그러한 황당한 상황을 즐기면서 생애 최고의 연말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지만 한 번씩 말을 안 듣고 고집을 피울 때면 이렇게 부모 속 썩이려고 이놈이 그렇게 늦게 나왔나하고 속으로 웃기도 합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고 부모 마음대로 되는 자식 없다고는 들었지만 첫 만남이 그렇게 힘들 줄은 전혀 상상을 못했죠.

자식을 통해 부모님을 봅니다

유학생활 동안 친하게 지내는 형이 그러더군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야 진정으로 어른이 된다고. 그 형도 아들을 낳고 나서 어느날 목욕탕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님의 얼굴을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자기 자식에게 하는 10분의 1만큼만 부모님께 해도 바로 그것이 효도라고 들었습니다.

아직도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아버님께 막내 손자의 재롱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몇 달 후 아버님은 담도암 판정을 받았고 저희가 한국을 방문하기로 한 십여일 전에 갑자기 병세가 악화해 며칠 후 돌아가셨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누님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다음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구해 어렵게 들어갔지만 병원에서 이틀동안 아버님을 지켜보고는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10개월이 당신에게는 가장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 막심한 불효를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추석 어머님의 당부대로 간단한 음식과 냉수를 마련해 놓고 아들과 함께 아버님께 절을 올리는데 천진난만하게 저를 흉내 내면서 절을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습니다. 아마도 이 놈을 건강하고 잘 키우는 것이 그 불효에 대한 가장 큰 속죄가 아닐는지요.

▲ 어머님 등 뒤로 보이는 아버님의 건강한 모습이 정말 그립습니다.
ⓒ 김대경
지난 8월 7일 아들은 만 두 살이 되었습니다. 한국 나이로 하면 벌써 세 살인데 이 놈의 재롱에 벌써 징그럽다고 저희 부부는 엄살을 부리기도 하죠. 아들을 볼 때마다 내가 태어났을 때에도 돌아가신 아버님이 나처럼 좋아하셨을까하고 어리석은 반문을 하곤 합니다.

이제 저희가 할 몫은 혼자 되셔서 아직도 고생하시는 어머님을 후회하지 않게 잘 챙겨드리는 것이겠죠. 자식은 원수가 되기도 하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효도라고도 하는데 과연 진정한 부모 자식 간 관계는 무엇인지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난 후에 뒤늦게 자문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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