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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투표 공표 후, 여전히 방폐장 찬성 펼침막이 걸려 있다.(영덕은 13일 촬영)
주민투표 공표 후, 여전히 방폐장 찬성 펼침막이 걸려 있다.(영덕은 13일 촬영) ⓒ 추연만
방폐장(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11월 2일 군산∙경주∙포항∙영덕지역에서 동시 실시될 예정이나 중립을 지켜야할 지자체 공무원들이 대거 유치운동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투표 공정성에 우려를 낳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 15일 군산∙경주∙포항∙영덕 지자체장에게 방폐장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하고 4개 시∙군 지자체장은 16일 주민투표 실시를 공표했다. 이에 따라 주민투표가 발의되는 10월 4일까지는 방폐장 찬반운동 금지는 물론 공무원의 투표운동도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주민투표법 제20조, 21조는 '공무원은 주민투표일의 전일까지 투표운동(투표운동이라 함은 주민투표에 부쳐진 사항에 관하여 찬성 또는 반대하게 하거나 주민투표에 부쳐진 두 가지 사항 중 하나를 지지하게 하는 행위)을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요란하게 펄럭이는 '찬성' 펼침막

그러나 19일 현재, 경주 포항 등 주민투표 예정 지역에는 유치찬성 펼침막이 공공연히 나붙어 있고 각 지자체 명의의 찬성 홍보물이 아파트나 주택에 버젓이 배포돼 있다. 경주시 안강읍 번화가 큰 길을 가로질러 방폐장 찬성 펼침막이 아직도 걸린 걸 볼 수 있다(지정 게시판이 아닌 불법 게시물이다).

그리고 포항시로 들어오는 첫 육교(포항시청 관리 소관)에는 방폐장 찬성단체인 국책사업유치위 명의의 찬성 펼침막이 걸려 있다. 또 포항시 예술회관 앞(지정 게시판)과 형산로터리 부근(지정게시판 옆 전봇대 사이)에도 방폐장 찬성단체인 포항지역발전협의회(회장 이대공)와 해도2동 국책사업유치위가 내건 펼침막이 버젓이 전봇대 사이에 걸려 있다.

포항시내에 걸린 펼침막(아래 펼침박은 미지정 게시판으로 불법)
포항시내에 걸린 펼침막(아래 펼침박은 미지정 게시판으로 불법) ⓒ 추연만
이와 더불어 포항시 청사 외벽에도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 포항발전의 새로운 시작'이란 펼침막이 내려져 있다. 그 외 지역에도 찬성 펼침막은 곳곳에 볼 수 있으나 반대 측 펼침막은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다.

주민투표 공표 후에도 방폐장 찬성 펼침막만 여전히 곳곳에 내걸린 것은 관리주체인 공무원의 묵인 내지 방조가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반대단체, 경북도지사 경주∙포항시장 등 고발

방폐장 유치 공무원 개입 논란은 주민투표 공고 이전에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경주시는 방폐장 찬성단체인 경주국책사업추진단에 시 예산 12억 원을 책정하고 공무원을 파견하여 방폐장 유치전을 적극 지원한 바 있다. 이에 반핵국민행동 등 환경단체들이 법률조사단을 파견하고, 지난 9월 8일 경주지역 핵폐기장 반대대책위원회가 주민투표법 위반 혐의로 백상승 경주시장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공무원 신분인 이의근 경북지사와 경주시장이 '방폐장은 반드시 경주로 와야 한다'는 찬성 홍보물을 배부한 것 등은 주민투표를 앞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찬성을 독려한 사전투표행위로, 주민투표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포항지역 20여개 단체들로 구성된 핵폐기장 포항유치 반대대책위원회도 지난 9일 주민투표법 위반 혐의로 정장식 포항시장과 이의근 경북도지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포항시장이 지난 7일 방폐장유치위원회 설명회를 하면서 담당공무원으로 하여금 방폐장 유치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참석자에게 찬성 홍보물과 롤케이크 그리고 원전에서 제작한 저금통을 돌리는 등 주민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포항시청사에 걸린 방폐장 찬성 펼침막
포항시청사에 걸린 방폐장 찬성 펼침막 ⓒ 추연만
그러나 지자체장 무더기 고발사태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장들의 유치운동은 주춤거리기는커녕 더 경쟁적으로 활발한 유치활동을 전개하는 양상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자체장 유치활동이 위법이 아니라며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투표 공표일인 16일 전 유치활동은 사전 주민투표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반대단체는 선관위 유권해석이 법령에 근거한 것이 아닌 뒷북행정이라 반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각 지자체 공무원들이 방폐장 유치에 적극 활동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지난 13일 영덕국책사업추진위 찬성집회는 3천여 명 참가했는데, 반대측 주민들은 "영덕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며 공무원이 적극 개입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단체에선 지금까지 공무원들이 방폐장 유치에 관여한 사실보다 11월 2일 주민투표를 앞두고 공무원 개입 가능성을 더 우려하고 있다.

설명회 내세운 방폐장 찬성운동 논란

반대단체들은 각 지자체가 앞다퉈 결성한 '국책사업유치위'는 형식은 민간단체이나 실제로 예산과 공무원이 지원된 찬성운동을 공공연히 펼친 단체라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 선거중립을 피해가는 탈법 선거조직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포항시유치위가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각 읍면동별로 주민 6천여 명을 울진원전, 고리원전 등에 견학시켜 방폐장 안전성을 홍보한 것도 공무원 개입 사례로 도마에 올랐다. 앞으로도 설명회 개최를 핑계로 찬성 운동을 할 계획인 걸로 안다고 반대 측은 의혹을 제기했다.

또 각 지자체가 방폐장 유치에 경쟁적인 인센티브를 남발하는 것도 공무원 선거중립을 깨는 큰 지렛대가 된다는 지적이다. 주민투표 공표 하루 앞 지난 15일에도 이의근 경북지사는 기자회견을 자청, 유치지역에 특별 사업비를 기존의 100억 원에다 200억 원을 추가 지원하는 선언을 했다. 나아가 정장식 포항시장은 읍∙면∙동 주민투표를 공무원 인사고과에 반영할 것이란 입장도 나타냈다.

무차별 살포된 방폐장 홍보물. <경상북도 포항시> <경상북도 영덕군> 명의로 제작됐으나 12쪽 홍보물 가운데 한 쪽만 다르고 나머지는 똑같다. 심지어 포항 홍보물에 영덕신문 기사 내용도 그대로 전재.
무차별 살포된 방폐장 홍보물. <경상북도 포항시> <경상북도 영덕군> 명의로 제작됐으나 12쪽 홍보물 가운데 한 쪽만 다르고 나머지는 똑같다. 심지어 포항 홍보물에 영덕신문 기사 내용도 그대로 전재. ⓒ 추연만
이에 포항환경연합 박창호 운영위원장은 "공무원 개입 금지기한을 눈앞에 둔 시점에 지자체장들이 인센티브를 발표한 것은 사실상 공무원들에게 주민투표에 개입하란 신호탄이 아니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지금도 아파트 등 주택가에 가면 찬성 홍보물이 곳곳에 보인다. 포항시가 공무원조직을 동원해 무차별 살포한 흔적"이라며 주민투표 공표 이후에도 공무원의 직간접 개입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측 선거결과 반발 우려

공무원이 개입됨으로써 방폐장 찬반운동은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란 우려가 만만찮다. 포항시 창포동 박아무개씨는 "며칠 전 포항시공무원노조 홈페이지에 '공무원분들, 이러지 맙시다'란 글로 공무원 개입을 비판했으나 글이 금방 삭제됐다"며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공무원들이 주민투표에 적극 개입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며 불공정한 상황에는 아예 투표를 거부할 뜻을 밝혔다.

포항분권운동본부 김동억 기획실장도 "주민투표에서 이렇게 불공정하게 투표를 진행되고 찬성 측 일방의 의사대로 결정이 된다면 반대하던 일방의 주민들이 그 결정을 지역주민의 성실한 고민과 의사를 반영한 정책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는가?"고 우려를 밝혔다.

그는 "찬반 양측이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게임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님비현상으로 건설이 어려운 쓰레기 매립장, 장례식장 등 지역의 숙원사업들을 풀어가는 선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단편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정책결정을 위한 지역 합의의 룰을 만드는 것이 방폐장 지역유치보다 장기적으로 더 지역발전을 위한 길이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한편 9월 20일 오전 포항시 관계자는 지난 13일 정장식 포항시장의 발언 가운데 "주민투표 찬성률이 가장 높은 지역에 3년간 100억원 예산지원과 찬성률이 높은 해당 지역 공무원들에게 승진 인사 등 인사고과에 반영할 것"이란 대목은 주민투표법 위반 논란이 일 소지가 있어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포항지역에 게시된 방폐장 유치 펼침막을 오늘(20일) 안에 모두 철거할 방침이라 전했다. 지난 16일 오후 5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와 관련된 공문을 보내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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