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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고, 그리고 제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집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고, 그리고 제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집입니다. ⓒ 장희용

“막내냐? 왜, 무슨 일 있어?”
“일은, 그냥 누나 보고 싶어서 했지.”
“야, 징그럽게. 진짜 아무 일 없어?”
“없다니까. 그냥 추석이고 해서 누나 생각나서 전화 했어.”
“넌 집에 언제 가냐? 금요일, 토요일? 누나는 이번에도 못 갈 거 같다야. 막내야! 나 머리 말려야 되니까 끊어.”

뚝! 전화가 끊긴다. 언제 가냐고 물어 놓고는 대답도 안 듣고, ‘뭐야!’ 하면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수화기만 쳐다본다. 나중에 오늘 일을 말하면 ‘내가 그랬냐? 언제?’ 하면서 ‘호호호’ 웃음으로 때울 것이다. 그건 오리발이 아니라 진짜로 기억 못하는 거다. 누나가 원래 이렇다. 세상 참 속 편하게 사는 양반이다.

껄렁껄렁 하기로는 불량소녀 빰치는 우리 큰 누나. 아버지는 그런 누나를 ‘쟤는 낼 모레면 50인 애가 나이를 헛먹었다’고 하신다. 내가 봐도 그렇다. 어떤 때는 ‘쯧쯧! 언제 철들라나?’ 소리가 동생인 내 입에서 나올 정도다. 무슨 일이든 대수롭지 않은 듯 쉽게 쉽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기관총처럼 말을 쏟아내니 아버지한테 그런 말 들을 만도 하다. 뭐 누나 편을 들어 좋게 말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실히 입증하고 있는 큰 누나다.

어느 날은 ‘아버지, 나 쌀 떨어져서 10㎏짜리 사먹었네’ 말하고 ‘호호호’ 웃었다가 아버지한테 ‘살림하는 사람이 집에 쌀이 떨어진지도 모르고, 뭔 정신으로 사냐’면서 온갖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고 나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그랬다. ‘누나, 내가 뭐라고 말해줄까?’ 그랬더니 밥 먹을 시간도 아닌데 ‘밥 먹어라’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수화기를 쳐다봤다.

어느 날인가는 불쑥 시골집으로 쳐들어 왔단다. 그것도 11시가 넘은 깜깜한 밤에 혼자서. 당연히 아버지, 어머니는 혼비백산이셨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말이다. 누나는 궁금해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그냥 왔어. 왜들 난리야’ 하더니 또 ‘호호호’ 웃었단다. 아버지한테 또 욕 바가지로 먹었단다. 지금 아버지는 가슴이 벌렁벌렁거리는데 웃음이 나오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 심각한 상황에서도 우리 큰 누나, 아버지한테 밥도 안 먹어서 배고프다면서 된장찌개 끓여 달라고 하니, 아버지가 그런 큰 누나를 보고 할 말을 잃어 그냥 ‘허허’ 하고 웃으셨단다.

아버지 몰래 태양초 고추 다 팔아버린 큰 누나

아버지의 고추.
아버지의 고추. ⓒ 장희용
재작년에는 속 편하게 사는 우리 큰 누나가 대형 사고를 터뜨렸다. 추석을 앞두고 큰 누나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는 추석이고 해서 안부전화인 줄 아셨는데, 그게 아니었다. 누나는 아버지한테 자기가 고추 비싸게 팔았다면서 ‘호호호’ 웃었단다.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누나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줌마들한테 시골에서 직접 농사지은 진짜 태양초 고추라며 여기저기 자랑을 해 놓고는 주문을 받아 홀랑 팔아 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그 때만큼은 정말 많이 화가 나셨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지. 누나가 자랑스럽게 주문 받은 물량은 우리 집 태양초 고추를 다 주고도 모자라 옆집에 가서 아쉬운 소리 해가며 아버지 돈으로 고추를 사 와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큰 누나 덕분에 햇볕에 말린 태양초 고추는 다 남 주고 우리 집은 매운 맛 하나도 안 나는 맛없는 고춧가루를 사다 먹은 적이 있다. 그 해 김치는 정말 맛없었다. 나중에 아버지한테 들은 얘기지만 누나가 ‘비싸게’ 팔았다는 그 고추, 사실은 아버지가 손해 봤단다. 누나가 아는 분들인데 야박하게 할 수 없다면서 고추를 듬뿍 담아 더 주신 것이다.

이런 아버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 누나는 한 해 건너뛰고 올해 또 주문을 받았단다. 작년에 고추를 산 사람들이 너무 맛있다고 하도 애원해서 어쩔 수 없이 주문을 받았다는 자기 변명을 한참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아버지, 그래도 작년에는 일 안 저질렀잖아. 그리고 재작년보다도 적고. 호호호.”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래 그 때보다 적긴 적다. 고추 파느라고 애썼다.”

누나 미안해! 이제야 누나 생각 했네

우리 집 보물 1호 ‘음매소’. 큰 누나는 이 소를 팔아서 시집갔습니다.
우리 집 보물 1호 ‘음매소’. 큰 누나는 이 소를 팔아서 시집갔습니다. ⓒ 장희용
아무튼 50대 껄렁껄렁 불량소녀 큰 누나 덕에 아버지는 늘 조바심을 내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버지는 큰 누나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실 것이다. 큰 누나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그 어린 시절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때 큰 누나가 번 돈으로 아버지 병원비도 다 대고 형과 나도 누나가 번 돈으로 공부를 했다. 그래서 돈을 한 푼도 못 모은 우리 큰 누나는 소를 팔아서 시집을 갔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에 큰 누나가 없다. 큰 누나하고 나하고 12년 차이가 나니 내가 뭔가를 기억할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큰 누나는 돈 벌러 도시로 갔기 때문이다. 큰 누나는 일에 많이 시달렸던 것 같다. 명절 때만 집에 내려왔기 때문이다. 큰 누나는 추석이 되면 항상 종합선물세트하고 내 운동화를 사왔다. 그래서 추석이 되면 누군가를 목 빠지게 기다렸는데 그건 큰 누나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종합선물세트하고 운동화였다.

어제 가까운 분들 선물을 주려고 할인점에 갔다. 과자종합세트를 보니 큰 누나 생각이 났다. 나를 막 뭐라고 했다. 못된 동생이라고. 실제로 나는 못된 동생이다. 이제야 큰 누나를 생각하다니, 철이 안든 건 누나가 아니라 나였다.

누나한테 뭔가 조그만 거라도 보내 주고 싶었다. 여지껏 누나한테 내 손으로 과자 한 봉지, 뾰쪽 구두 하나 사 드린 적이 없다. 아무리 봐도 할인점에서는 누나에게 선물할 것이 없어서 재래시장에 갔다. 멸치를 샀다. 예전에 된장찌개에 들어간 멸치를 따로 골라내더니 밥 다 먹고 그 멸치를 먹던 기억 속에 큰 누나가 멸치를 좋아한다는 나만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거기에 ‘누나 고마워!’라고 썼다.

주소를 물어보느라고 또 전화를 했다. 주소는 왜 물어보냐고 하는 큰 누나. 혹시나 해서 멸치 좋아하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왜?’ 하면서 ‘혹시 너 멸치 보내려고 그러냐? 됐어 너나 먹어’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큰 누나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한다. 너도 멸치 좋아하냐고. 할 말이 없어서 막 웃었다. 으이그 저리도 눈치가 없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난 큰 누나가 좋다. 고추 비싸게(?) 파는 바람에 맛없는 김치를 먹게 했지만 나는 그런 큰 누나가 좋다. 지금 기분이 좋다. 누나한테 보낼 멸치를 보니 기분이 좋다. 나도 조금 철이 들었나 보다. 글 끝에는 이 말을 꼭 쓰고 싶다.

누나 그 땐 많이 힘들었지? 어린 나이에 혼자 서울 가서 공장일 하면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생각하니까 눈물나려고 그러네. 추석 되니까 누나가 사준 과자하고 운동화 생각난다. 별 거 아니지만 누나가 좋아하는 멸치야 맛있게 먹어. 큰 누나! 이제야 큰 누나 생각했네. 못된 동생이다 그치. 미안해 큰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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