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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비비큐 간판이 선명한 윌셔가 금융 빌딩(건물위에 나라은행이 영어로 씌여있다)
코리안 비비큐 간판이 선명한 윌셔가 금융 빌딩(건물위에 나라은행이 영어로 씌여있다) ⓒ 김준하
제미슨 포로퍼티스(대표 데이비드 리)라는 한국계 부동산 회사는 윌셔가에 고층 빌딩을 포함 70여개의 상업용 건물을 소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운타운의 호텔과 병원, 상가 건물을 추가로 사들이고 있다. 올해 들어서 이미 다운타운의 명물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5300만 달러에 매입했는가 하면 자바시장의 상징인 캘리포니아 마트를 1억3500만 달러에 매입하려 하고 있다. LA 카운티내에서 최대의 오피스 면적을 보유하는 부동산 재벌로 당당히 정상에 오른 것이다.

부동산 투자는 모든 한인들에게 공통된 관심사다. 특히 골프장은 한인들을 유혹하는 대표적인 투자 대상이다. 한인투자회사 선덴 인베스트먼트사의 데니스 리 사장은 동부 리버사이드에 위치한 랜드마크 헤메트 골프 클럽을 지난 8월 초에 850만 달러에 인수했다. 선덴사는 1980년부터 골프장과 각종 부동산에 투자해왔는데 이번 랜드마크 골프장 매입으로 모두 3개의 골프장을 소유하게 됐다.

한편 올해 들어 제이제이리 메니지먼트사의 이종진 사장이 글렌데일에 위치한 체비 체스트 골프장을 780만 달러에 사들였고 이화식품의 이융수 사장이 업랜드의 힐스 컨트리 클럽을 1200만 달러에 매입했으며 제이미슨 프로퍼티스의 데이빗 리 사장이 로빈슨 랜치 골프코스를 1700만 달러에 매입하는 등 한인들의 골프장 매입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순수한 교포 자본으로 설립된 한미은행은 이제 30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한 로스엔젤레스 랭킹 5위의 은행으로 도약했으며 나라은행, 윌셔은행, 중앙은행 등 한국계 은행들이 그 뒤를 바짝 쫓으며 LA 100위 기업군 내에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캘리포니아 금융권에서 한인 은행들의 성장세는 괄목할 만하다. 지나 5년 사이에 자산 규모를 3배나 늘리며 주류 은행들을 따돌리고 있다.

겉보기엔 평범한 미국 도시건만 실제로 건물의 내부에는 한국인 사업체가 빼곡하다. 한국인의 건물 집단이 윌셔가 20개 블록에 걸쳐서 도열해 있는 셈이다. 점심시간이 되어 윌셔 블러바드에 나서면 마치 서울의 도심을 걷는 기분이다. 은행 지점들은 물론이고 보험 융자 부동산 변호사 회계사 등 한국인 넥타이 부대가 한식 식당을 찾느라 인근 거리를 덮는다. 출퇴근 무렵의 교통 체증이 제일 심한 곳 또한 한인타운이다. 가판대에서는 영자신문 찾기가 힘들고 한국어 신문만 팔려 나간다. 1층 상가에도 역시 한글 간판이 즐비하다.

미국에서 최근 가장 경기가 좋다는 부동산 업계만 보더라도 현장에서 뛰는 한인 에이전트의 숫자가 4천명을 넘어서고 있고 에이전트가 50명 이상 근무하는 대형 부동산 회사만도 20여개가 넘는다. 캘리포니아 전체로는 1만5천여명의 한인이 라이센스 소유자로 부동산국에 등록되어 있다.

부동산 회사의 이색적인 광고 보드판 모습
부동산 회사의 이색적인 광고 보드판 모습 ⓒ 김준하
둘러보면 주상 복합과 콘도를 짓는 공사 현장의 작업 소음이 한인 타운 내 여기저기서 들린다. 대대적인 콘도 공사가 붐을 이루고 있는 것. 중견 부동산 투자 그룹을 이끌고 있는 윈(WIN) 부동산의 토마스 리 대표는 "한인들이 주축이 되는 전문적인 디벨로퍼 그룹의 태동이 기대되는 시점"이라며 "한국의 시행사 개념을 도입해 글로벌한 분양사업에 나설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부동산 개발 업무에 강한 의욕을 표명했다.

한국 정부가 해외부동산 투자 한도를 50만 달러로 완화함에 따라 앞으로는 미국 투자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중국계 자본 유입 또한 대단하다. 인도와 베트남계 대형 자본도 힘을 가세했다. 마치 1980년대 말 일본의 유동 자본이 맨하튼의 상징인 록펠러 센터를 사들이고 하와이를 점령하는 그 분위기로 아시안계 자본이 미국 서부를 거두어들이는 형국이다. 이제 더 이상 캘리포니아는 미국이 아닌 듯하다. 특히 대도시인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는 아시안과 남미 인종의 물결에 뒤덮여 백인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그들은 역으로 외곽 위성 도시나 내륙 변방으로 밀려가느라 이삿짐을 꾸리기에 바쁘다.

한인 타운이 이 같은 성장을 지속하는 이유는 한인 인구의 꾸준한 유입 덕분이다. 한때 4·29 폭동의 후유증 때문에 타도시로 떠났던 한인들이 다시 들어오고 있으며 외곽으로 자식들과 함께 이주했던 노인들조차 외지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한인 식당과 마켓 그리고 양로시설이 풍성한 한인타운으로 돌아오고 있다. 독신 생활을 즐기는 싱글족들도 편리한 생활 환경 때문에 한인 타운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 한인 타운은 이제 한인들의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축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전형적인 한인 상가의 모습
전형적인 한인 상가의 모습 ⓒ 김준하
올해 로스엔젤레스 시장에 출마했던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52) 신임 시장은 멕시코산 미국이민 2세로서 58.56%의 지지율을 얻어 당선됐다. 라틴계가 로스앤젤레스 시장이 된 것은 인구 5000명의 개척시대였던 1872년 크리스토발 아길라 시장 이후 133년만이다.

그는 빈민의 아들에서 일약 정치인의 꿈을 이루었다. 그는 새롭게 출범하는 시정부에 치안 담당 공공 안정 부시장에 모리스 서씨를 포함 무려 7명의 한인 커미셔너를 요직에 기용했다. 소수인종에 대한 그의 정치적 배려가 한인들의 위상에 걸맞게 시정 참여의 길을 터준 것이다.

마침 올해 LA경찰학교 수석 졸업의 영광은 한인 김지석(29) 경관에게 돌아갔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 전역에 한인 경찰관의 숫자만 해도 이미 5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로스엔젤레스에 168명, 뉴욕에 121명, FBI 내부에 100여명 근무 추산). 영어도 능숙하겠지만 한국말을 잘 구사하는 2세들에게 취업 문호는 훨씬 우호적이다. 2차적으로 한국어 능력이 취업의 관건으로 뒤바뀐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이제 로스엔젤레스라는 이민 무대에서 90만여 한인들은 조연이 아닌 주역으로 뛰고 있다. 한인 특유의 은근과 끈기는 오늘도 식당에서 밤낮으로 일하는 '억척 아줌마'의 노동 정신에 배어 있으며 논산 훈련소에서 익힌 '유격'구호와 '깡다구' 문화는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 일구어 세우고 있다.

한인들은 모국을 떠나 타국땅에서 미국 문화에 맞서 머리와 몸으로 부딪치며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다. 황우석 박사의 유전공학이 뜨고 골프 낭자들의 선전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한류 문화가 미국 연안 대도시를 휩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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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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