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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립학교법개정'을 위한 호남교육주체결의대회
ⓒ 안준철
지난 토요일(10일), 의장님의 지역구인 정읍에 다녀왔습니다. 모처럼 맞이한 주말을 아내와 함께 보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작년 정기국회 이후 지금까지 사립학교법 개정 법안이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는 기막힌 현실을 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평소 뜻을 같이 해온 전교조 순천사립지회 소속 동료교사들과 함께 '사립학교법 개정 쟁취 호남교육주체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기꺼이 주말을 반납하고 정읍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결의대회 장소가 정읍이라는 말에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느 특정 의원의 지역구에서 교육관련 대회를 치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것은 교육 문제가 어느 개인 한 사람의 뜻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를 의장님의 지역구인 정읍에서 치르게 된 것은 의장님께서 국민 앞에 약속하신 '사립학교법 개정안 직권상정'의 데드라인인 9월 16일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9월 16일 직권상정' 약속이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조차 사립학교법 개정안 상정이 무산되고, 남은 유일한 길인 의장님의 직권상정에 대한 기대마저 무참하게 허물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의장님께서 언급하신 '9월 16일 직권상정' 약속에 마지막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회의장의 신분으로 국민 앞에 한 엄숙한 약속이니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다 싶었던 것이지요. 지금도 그 심정에는 변함이 없지만, 최근 의장님의 직권상정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을 하고 있는 일부 신문 보도를 접하면서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그날 정읍으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도 의장님의 직권상정에 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국회의장 신분으로 국민 앞에 한 약속인데 지키지 않겠느냐는 비교적 밝은 전망을 하는 저와 같은 순진파(?) 교사들도 있었고, 반면에 대통령이 사립학교법 개정을 죽기 살기로 반대하는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운운하는 마당인데 여야합의 없이 누가 감히 총대를 매려하겠느냐는 식의 다소 어두운 전망을 하는 현실 정치의 흐름을 아는 교사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슬픈 현실이요, 아직은 정치 후진국인 우리나라가 치러야할(국민의 입장에서는 견뎌야할) 통과의례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왜 교육문제를 교육으로 풀려고 하지 않고 정치적 계산과 연관하여 풀려고 하는지 정부 당국과 의장님을 비롯한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가 일순 치솟았던 것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의장님의 비롯한 양식 있는 일부 정치인들에 대한 믿음마저 저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마음 한 구석에서 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국민들이 그런 긍정어린 눈으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볼 때 수렁에 빠진 우리 정치가 회생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그날 정읍에 다녀온 뒤 의장님의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소박한 글을 남긴 것도 그런 긍정과 믿음의 소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대표기관의 수장으로서 노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순천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저는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로서 사립학교법 개정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학재단의 비정상적인 운영과 재단의 무지한 작태들로 의해 상처를 입는 것은 우리 미래의 꿈나무인 학생들입니다. 교육과정을 통해서 지식으로 배우는 정의나 진실의 개념보다도 학교 현장에서 보고 들으며 배우는 것들이 학생들의 바른 인성지도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학교 행정이 투명하고 재단과 교직원들이 존경받을 수 있는 풍토 속에서만이 우리 교사들은 어린 제자들에게 바른 가치관과 올곧은 꿈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사립학교법'으로는 어느 교사라도 재단의 비리에 눈감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학재단의 횡포에 맞서지 못하고 굴욕을 견디며 교단에 서야하는 양심적인 교사들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우리가 제자들에게 사회의 부정부패와 맞서 싸우라는 말을 할 수는 없겠지요.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현행 사립학교법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는 의장님께서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의장님이나 열린 우리당의 참모습을 보여 주셔야할 때입니다.

거듭 직권상정을 부탁드립니다.

그럼 국정에 힘쓰시는 동안 건강하시길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교육문제를 교육으로 풀어주세요

남도의 소도시에 자리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교사가 쓴 이 소박한 글을 읽어보시고 의장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십중팔구는 많은 글 속에 묻혀 기억조차 없으시리라는 것을 몰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의 꿈나무들인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현장 교사로서 의장님께 한 가지 간절한 청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육문제를 교육으로 풀어달라는 것입니다. 교육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곧 교육입니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체가 모순이지만, 그것이 순수한 교육적인 고민이 아닌 정치적 속셈이 깔려 있다면 그것은 사립학교법 개정을 염원하는 대다수 국민들에 대한 엄연한 배반이요, 후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역사적 오점을 남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실, 교육문제를 교육으로 풀어달라는 부탁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너무도 쉬운 청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깨부수려는 순진무구한 한 교사의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청으로 받아들이는 국민들이 많다면 대한민국을 감히 선진국적 사고를 가진 나라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의장님께 한 나라의 정신적 수준을 가늠할만한 중요한 열쇠가 쥐어져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의장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지금 열린우리당이 국회 교육상임위에 제출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공익이사제 도입(이사회 1/3 이상을 공익이사로) ▲친인척 이사 제한(현행 1/3에서 1/4로 축소) ▲비리 당사자 학교복귀 기안 연기 (현행 2년에서 5년으로) 등입니다.

이는 당초 전교조나 시민단체에서 제시한 수준에서 한참 후퇴한 것이어서 통과가 되더라도 절반의 개혁이라는 아쉬움을 남길 수 있는 일종의 타협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 나라의 백년대계인 우리 교육을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인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친다면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셔야 함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여겨집니다.

사학의 자율이 아닌 학교의 자율이 필요합니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부 부패사학을 빌미로 대다수 건전 사학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항변이 정당한 항변이 아닌 설득력이 없는 궤변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작년도 국정감사에 제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905개 사립 중고등학교 가운데 재정비리가 적발되지 않은 학교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그 내용도 공금유용, 실험실습비 횡령, 공사비 횡령, 족벌 경영, 입시와 편입학 부정, 교직원채용비리, 교사나 교수의 임면, 시험지 유출 등 실로 다양합니다.

둘째, 학교에 공익이사제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1/3선이어서 의결정족수에는 턱없이 모자란 숫자입니다. 거기에 보수적인 학교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개혁적인 인사가 이사에 선출될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아서 열린우리당의 개정안대로라면 겨우 학교의 비리 감시자의 역할이나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그칠 전망이 큽니다. 그런데도 이를 두려워하는 사학이라면 결코 건전 사학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셋째, 얼마 전 영화를 통해서 패러디된 바도 있었던 서울 모 고등학교 등은 앞에서 열거한 갖가지 범법행위를 저지른 사학재단 관계자를 사법처리했지만 수감 2년 후 다시 학교에 복귀하여 학교 민주화를 위해 싸운 교사들을 무더기로 파면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해 학교 운영에 심대한 해악을 끼친 것을 우리 국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넷째, 현재 사립학교의 운영은 약 98%가 학생들이 내는 수험료와 국가의 재정지원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사학재단에서 부담하는 재단 전입금이 불과 백만 원 안팎인 학교가 대다수이고, 심지어는 한 해 동안 일원 한 푼도 학교에 돈을 내지 않는 학교도 상당수 있는 것이 역시 국정감사 결과 보고된 내용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학교를 마치 사유재산인양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다섯째, 그동안의 정황을 미루어보건대 사학관계자들이 요구하는 자율은 저들의 왜곡된 교육관(입시교육)을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관철시키려는 욕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허울의 자율보다는 오히려 교육의 공공성이 확보됨으로써 사학의 자율이 아닌 학교의 자율이 확보되리라는 전망을 해보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여섯째, 사학비리가 적발된 학교에만 공익이사제를 도입하자는 모 야당의 주장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자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몰지각한 사학재단의 전횡으로 야기된 사립분규로 인한 최종 피해자는 죄 없는 학생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사로서 우리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에게 진정한 교육권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사립학교법 개정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깊이 생각하시어, 국민 앞에서 공언하신 사립학교법 개정의 직권상정 약속을 꼭 지켜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원기 의장님의 홈페이지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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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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