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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천선대 오르다 만난 비경.
ⓒ 송성영
35인승 버스가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남측 출입사무소를 빠져 나와 DMZ를 거쳐 20분 정도 달려왔다. 드디어 그토록 갈망했던 북조선에 첫 발을 내딛었다. 군사 분계선을 넘어 오면서 남측 관광 조장이 이야기한 금지 사항 때문이었을까? 어떤 이들은 애써 긴장된 표정을 숨기려고 실없는 웃음을 흘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표정이 굳어 있었다.

관광 조장은 DMZ를 통과하기 이전부터 금지 사항들을 당부했었다. 북측으로 들어서면 지정된 장소 외에 카메라 촬영은 절대금지, 북측 사람들을 향해 손짓을 하거나 흉내를 내거나 담배꽁초나 쓰레기는 물론이고 침을 뱉지 말라고 했다. 당연히 지켜야 할 사항들이었다

관광조장은 금지 사항을 어길 경우의 사례들을 일일이 나열했다. 카메라를 압수당하고 위반금을 물거나 심한 경우 강제 출국 당한다고 했다. 거기에 덧붙여 심사대를 통관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금지된 품목을 철저하게 검문한다는 것이었다. 북측의 통관 절차가 번거롭고 너무나 까다로워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라고 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긴장된 표정들 속에서 아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는 북조선 땅에 첫 발을 딛은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고개만 끄덕여 줬다.

심사대를 향해 질서 정연하게 줄 서 있던 우리는 옷가지가 들어있는 가방과 규정된 카메라를 손에 들고 북측 세관을 통과했다. 생각 외로 까다롭지 않았다. 정해진 규정만 지킨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600명 정도의 금강산 관광객들이 북측 출입사무소를 통과해 다시 금강산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기까지의 시간은 불과 40여분 정도.

머리통이 굵어지면서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북조선, 수십 년을 기다렸는데 40분은 아주 짧고도 짧은 시간이 아닌가. 그 짧은 시간이 지루하다며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그 사람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수십 년을 기다렸던 북조선... 40분 만에 검색대를 통과하다

나는 엑스레이 검사대를 통과하면서, 출입사무소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사로 심사대의 북측 통검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내가 군 복무를 할 당시 우리 부대의 인사계를 닮은 북측 통검원은 가볍게 눈인사로 답했다. 북측 사람들과의 첫 대화였다.

관광 버스는 다시 우리의 목적지인 금강산으로 향해 시동을 걸었다. 차창 밖으로 북측 군인들이 보였다. 북측 출입사무소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철길 부근에 새로 역사를 짓고 있었는데 거기에 몇몇 군인들이 지프 차 주위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부동자세로 서서 사진 촬영을 감시하고 있는 젊은 병사들과는 사뭇 달랐다. 흐트러진 자세로 우리 쪽을 바라보며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내 북측 땅을 밟았다는 감동에 젖어 있는 아내가 차창을 통해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저 사람은 우릴 보면서 뭘 생각할까?"
"누가?"
"저기 담배 피우고 있는 군인 보이잖아, 다들 뻣뻣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여유 있어 보인다."

아내가 말하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북측 군인은 지프차에 등을 기댄 채 한쪽 다리를 외로 꼬고 서서 우리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못 먹어 비쩍 말라 있네."

우리 앞쪽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아내의 기분을 무참히 깨뜨렸다.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살이 피둥피둥 찐 50대 후반의 어떤 아저씨였다. 함께 버스를 탄 사람들 중에는 노부모를 모시고 온 몇몇 젊은 여자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을 제외하고 40대 중반의 우리 부부가 가장 젊은 축에 속했다.

관광 조장의 어설픈 <우리농촌으로 시집와요>라는 북측 노래를 들어가며 우리는 점점 북측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었지만 나는 한 장면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할리우드 영화와는 전혀 다른 가슴 뭉클한 서정성 짙은 영화를 보듯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서정성 짙은 영화를 보듯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다

허옇게 머리를 벗어 둥글둥글한 바위산과 넓고 푸른 들판의 조화는 어떤 면에 있어서 제주도의 오름을 연상케 했다. 멀리 금강산이 보이기 시작하자 차별 없이 똑 고르지만 색 바랜 기와 지붕의 농가들이 가깝게 다가왔고 저 만치 외딴 집에서는 겨울을 대비해 지붕을 새로 올리는 정겨운 풍경도 보였다. 어떤 마을의 기와 지붕 위에는 이 호박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민가 주변의 너른 벌판에는 한창 여물어 가는 벼논이며 평수 너른 옥수수 밭과 콩 밭이 펼쳐져 있었고 간간이 김장 배추밭이 보였다. 철지난 옥수수대는 누렇게 말라가고 있었고 메주콩으로 짐작되는 콩들은 우리 집 밭의 콩들처럼 여물어가고 있었다.

거기 들판 사이로 몇몇 조무래기 아이들이 한가롭게 걸어가고 있었고 마을 앞에는 어린아이를 등에 업은 할머니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우리 집 옆집 희준이네 외할머니가 그러하듯이 아마 칭얼거리는 아이를 업어 달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풍경들 사이사이로 사진 촬영을 감시하는 병사들이 보였다. 함께 버스를 타고 가던 어떤 이들은 북측 병사들의 눈초리를 불만스러워 했지만 나는 북측의 사진 촬영 감시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군사 분계선과 멀지 않은 곳에는 군 시설이 있기 마련이고 또한 그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대처는 분명 당연한 일이 아닌가.

"저게 뭐 하는 짓들이야 한참 어린애들을."

버스 안에서는 간간이 북측 병사들을 향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로 저만치에서 사진촬영을 감시하는 병사들은 분명 스무 살부터 입대하는 남측 병사들 보다 어려 보였다. 북측에서는 열여덟 살에 군에 입대하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 감시병들은 대부분 군에 갓 입대한 신병들일 것이었다. 사진 촬영 감시라는 단순한 임무이기 때문에 경험 많고 나이 많은 고참병이 나올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사진 촬영 감시병들 대부분이 열여덟 살로 어려 보일 것이었다.

하지만 열여덟이 어리다는 생각은 순전히 나를 비롯한 남측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영국, 독일, 미국, 프랑스, 중국 등등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열여덟 살이면 선거권을 가진 성인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줄지어 가던 스물 한 대의 35인승 금강산 관광 버스는 온정리에 위치한 금강산 휴게소 부근에서 각각의 숙소를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 숙소는 불과 일주일 전에 문을 연 금강산 패밀리비치호텔. 온정각에서 금강산 패밀리비치호텔로 향하는 '관광 전용도로' 한 옆에는 북측 주민들이 이용하는 도로가 따로 있었다. 그 도로를 통해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북측 주민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저만치 떨어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관광조장 말로는 자전거 앞면에 번호 판이 부착되어 있다고 한다.

버스 안에서 누군가 "차가 없다보니 자전거만 타고 다니는 구만"이라고 쌀쌀맞게 말하자 아내가 톡 쏘듯 한마디했다.

"보기가 참 좋구만, 큰 사고 날 염려도 없고, 건강에도 좋고."
"글쎄 말여, 왜 이렇게 다들 뒤틀려 보는지 모르겠다, 그러려면 아예 오질 말던지."

나는 버스 타고 오는 내내 북측에 대해 뒤틀린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탄 버스는 자전거보다 훨씬 앞선 물질 문명을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그 안의 분위기는 반공교육이 필수였던 6,7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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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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