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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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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마신 술이 자꾸만 뇌 쪽에서 꿈틀대는 것 같다. 속이 미식거리고 왠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기분이다. 이런 요상한 기분도 떨쳐버릴 겸 보경사에 들려 머리 좀 식히고 오겠다하니 아내가 사과 3개를 깨끗이 씻어 물 한 병과 함께 배낭 속에 넣어준다. 투정부리는 아이처럼 칭얼대는 나를 받아주는 아내. 냉면을 후루룩 마시듯 먹은 뒤 모자를 눌러쓰고 잠자리에서 일어난 반바지 차림 그대로 차의 시동을 걸었다.

한 10분을 달렸을까? 전라도에서 친구하나 없이 이곳 포항으로 와 조그만 화원을 하고 있는 남식씨 가게를 스쳐 지나갔다. ‘들려볼까?’ ‘아니 별 할 말도 없는데 그냥 가자’ 노총각으로 사는 남식씨는 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생각나면 ‘어디 시집올 여자 없나?’하는 생각부터 떠오르는 건 왜일까? ‘여자도 부족한데 남식씨는 이래저래 도움 되는 사람이다’ ‘그런 여자 있으면 내가 하지 흐흐흐’ 이런 저런 되지도 않을 생각을 하다보면 입에서 실 웃음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하면서 30분을 더 달렸다. 보경사 주차장에 차를 대려니 매표소 직원이 다른 곳에 차를 대 달란다. 실랑이하기도 귀찮다. 나는 순순히 그의 의사대로 움직여 주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사람들이 그리 많아 뵈지가 않는다. 날씨가 꾸물꾸물해서 일까? 근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태세다. 절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한 바퀴 돌고 스님들이 뭘 하나 유심히 보고 물도 한 그릇 떠 마시고 고양이하고도 눈을 마주쳐도 1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왜 이리 한심하고 할 일이 없어 뵈는 것일까? 카메라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한 바퀴 돌면서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그럴 거 아냐 개 폼 잡는다고’ 맞는 생각이다. 그래 이건 내가 봐도 개 폼이다. 살이 찌고 나서는 뭘 해도 폼이 나질 않는다. 이것이 요즘 나에게 발생한 신종 걱정거리다. ‘뭘 해도 폼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각한 고민이다’ 살을 빼야 되는데 빼야 되는데 하면서도 되지 않는다. 술이 원인이다. 아내는 나에게 술 귀신이 붙었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싫든 좋든 술 먹을 일이 자동적으로 생기니 말이다.

여기 보경사는 연못을 메우고 그 위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절 아래에 늘어서있는 민가들을 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풍수적으로 지어졌다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거 같기도 하다. 어찌 지어졌든지 보경사는 볼 것이 많은 절이고 운치도 있고 주변 경관도 뛰어난 곳이다. 그렇지 않은 절이 어디 있겠냐마는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면 한 번 둘러 볼만 한 곳이다. 비가 지나간 뒤라 계곡의 물은 많이 불어 있었다. 짝짝이 바위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젊은 두 연인들이 놀이 삼아 들리기도 좋은 곳이다.

ⓒ 정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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