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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음력으로 8월 2일인 9월 5일은 제 남편의 생일입니다. 저는 우리 가족의 생일상에 화려하고 거창한 음식을 차려 놓지는 않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빠트리지 않고 준비하는 나물 세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매월 음력 초사흘(3일)이 되거나, 자식들의 생일날이 되면 안방 윗목에 상을 차려 놓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았습니다. 합장한 두 손바닥을 살살 비벼가면서 저희들이 잘 알아 듣지 못할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드리던 엄마의 모습은 우리 집에서는 참으로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매일 새벽이면 왕복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고 가며 새벽 기도를 하셨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침밥을 짓기 위해서 부엌으로 나가시면 가장 처음으로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을 사기그릇에 담아 부뚜막에 올려 놓고 또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며 기도를 하셨습니다.

당신의 열두 자식 모두 건강하고 무사하게 잘 자라게 해 달라고, 하고자 하는 일이 원만하게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엄마는 지치지도 않는지 하고, 또 했습니다.

▲ 지금도 엄마는 이른 새벽이면 정갈한 몸으로 한그릇의 정안수를 떠놓고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고 자식들을 위하여 결코 짧지 않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 한명라
물론 엄마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마냥 기도만 올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기도 뒤로 다른 엄마들보다 더 늦은 시간까지 밭일을 하셔야 했고, 혼자되어 치매에 걸린 친정엄마도 자주 찾아 봐야 했고, 100여리 떨어진 전주까지 아들들을 기차통학을 시키기 위해서 14년동안 새벽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런 엄마께서 자식을 위해, 또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저에게 이야기해 주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1991년 8월에 제가 딸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는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을 위해서 7일마다 7번, 49제를 지내주듯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위해서도 7일마다 7번에 걸쳐 상을 차려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당시 안양에 살고 계셨던 엄마는 매번 7일째만 되면 이것 저것 시장을 봐 가지고 잠실 석촌동 반지하 우리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손으로 여러가지 나물과 떡, 음식을 장만하여 안방 윗목에 상을 차려 놓고, 오랫동안 보아왔던 엄마만의 모습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어린 외손녀가 아무 탈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기도였습니다.

▲ 85세라는 연세에도 책도 읽고 한문공부도 하는 엄마의 책상입니다. 책꽂이에 쌓여 있는 많은 향과 꽂혀있는 예쁜 초들이 엄마와 같이 기도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한명라
하지만 저에게는 저 어느 세상을 향해서,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를 향해서 우리 가족에게 복을 달라고,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엄마는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너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자식을 낳았느니라. 지금 너보다 적은 나이에도 자식을 위해서 기도를 했는데, 기도하는 것이 무슨 부끄러운 일이라고 못한단 말이더냐? 에미가 자식을 위해서 못할 일이 무엇이 있다더냐?" 하고 나무라듯이 말씀하시고는 상 위에 차려 놓은 나물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습니다.

"나는 매월 초사흘날이나 너희들 생일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무나물은 빼놓지 않고 올린다. 무나물은 '무병장수'하라는 뜻이 있단다. 자식들이 아프지않고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도록 해 달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또 호박나물이나 오이나물은 자식의 앞날에 막힘이 없이 성공하게 해 달라는 뜻이 있다. 호박넝쿨이나 오이넝쿨을 보면 그 줄기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잘 자라지 않더냐? 그래서 나는 호박나물, 오이나물, 무나물 세가지를 생일상에 차려 놓는다. 특히 무나물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빠트리지 않는단다."

그때서야 저는 엄마가 생일상에 차려 놓은 나물 한가지에도 오로지 자식들 앞날에 대한 정성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 편이 뭉클해져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음 해인 1992년 11월에 제가 연년생으로 아들아이를 낳았을 때에도, 아이를 낳은지 7일째 되는 날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안양에서 성남까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서 당신의 정성이 담긴 무나물과 호박나물, 오이나물을 상에 차려놓고 외손자의 건강과 순탄한 앞날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당신 슬하에 둔 열두 명의 자식과 스물아홉 명의 손자, 손녀들. 엄마는 그 많은 자손들 어느 한 사람도 소홀하게 빠뜨리지않고 모두를 위해 마음을 다하여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엄마의 그런 정성 어린 기도가 있었기에 평소 엄마의 말씀대로 열두 자식이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지금까지 온전하게 잘 자랐는지 모릅니다.

▲ 13년 전 엄마의 가르침대로 오늘 아침 남편의 생일상에 무나물과 호박나물, 오이나물을 차렸습니다.
ⓒ 한명라
엄마께서 제게 여러 가지 나물에 담긴 뜻을 일러주신 지 14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저는 엄마께서 우리 열 두 남매와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정성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감히 엄마의 정성을 흉내내어 봅니다.

저의 두 아이들의 생일상과 남편의 생일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세가지 나물만은 정성을 다하여 빠트리지 않고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정성만큼 깊고 넓지는 않지만 기도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흉내내어 안방 윗목에 생일상을 차려 놓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립니다.

엄마의 말씀처럼 에미가 되어 자식의 건강과 성공을 위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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