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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결혼 전 아내는 꿈도 많았습니다. 잘 그린 그림 앞에 서면 그림도 그리고 싶었고, 어쩌다 대학 근처를 지날 때면 공부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꿈을 모두 접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족을 위해 종종걸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어느새 아내에게도 흰머리가 생겼다는 말을 들으니 문득 결혼해서 살아온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있었던 일

결혼식 후 피로연에서 친구 녀석들이 아내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쳤습니다. 토속적 이름이라느니, 향토적 정감이 물씬 풍기는 이름이라느니, 순박한 이름을 가진 신부를 훔쳐온 신랑을 가만히 두면 안 된다느니 하면서, 마른 북어로 내 발바닥을 두들겼습니다.

녀석들은 아내 이름을 수시로 부르면서 언제 처음 만났냐는 둥, 언제 처음으로 키스를 해보았냐는 둥, 노래 좀 해보라는 둥 짓궂은 장난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신부가 머뭇거릴 기세가 보이면 마른 북어를 휘두르기 일쑤였습니다.

웃으며 떠들며 장난치던 친구들이 거꾸로 매달린 내게 마지막 요구를 했습니다. 큰 소리로 신부 이름을 불러보라는 겁니다. 거꾸로 매달려 한참을 있었던 탓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봉~순~아!”

소리가 작다며 몇 번을 더 부르도록 강요하던 녀석들이 마지막으로 발목에 묶인 줄을 풀어주며 한마디 했습니다.

“신부 이름이 신랑 분위기와 딱 어울린다.”

결혼기념일, 아이들의 선물

몇 해 전인가 추석 이틀 전에 결혼기념일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고향 집에서 저녁 먹은 후 문득 날짜를 꼽아보니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맏며느리로 장남으로 시골에서 명절 준비에 바빠 결혼기념일은 생각도 못하고 날이 저문 것이지요.

신혼 티가 가시지 않은 동생 내외가 결혼기념일을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는 게 어디 있느냐며 타박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미 저녁을 먹은 뒤이기도 했고, 분위기 잡고 둘이만 오붓하게 보낼 상황도 아니었고,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살이에 굼뜬 사내와 함께 살아오면서 결혼기념일을 제대로 보낸 기억이 없어, 이번이라고 달라질 게 없다는 듯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 역시 무덤덤하게 그냥 넘겼습니다.

추석을 다 지낸 뒤 준수와 광수가 엄마에게 책을 한 권 사줬습니다. 공지영이란 작가가 쓴 <봉순이 언니>란 책입니다. 엄마 이름과 똑같아서 샀다며 결혼기념일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읽다 잠시 쉬면 그 책을 집어 읽고 내가 쉴 참이면 아내가 가져다 읽기를 되풀이하며 하루를 고스란히 <봉순이 언니>란 책에 묻혀 살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아내는 이따금씩 중얼거렸습니다.

“이거 꼭 내 얘기네.”

아내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질긴 가난 속에 먹을 입 하나 줄이기 위해 어린 나이에 도시의 식모가 되어 생활하는 소설 속의 봉순이 언니, 공장에 다니며 오빠 학비를 벌어주었던 아내, 그 시절 공장으로 일터로 떠난 우리들의 누이의 모습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현실로 되살아났습니다.

촌스럽지만 그리운 이름

“촌스러운 이름이지 뭐.”

아내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토속적이니 향토적이니 하는 겉치레를 걷어내면 남는 게 촌스러움 아니냐고 되묻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 촌스러움이 바로 오늘의 풍요를 만든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허리띠 옥죄며 살던 시절, 솜털 보송보송한 누이들은 학교와 가정을 떠나 공장에서 일터에서 남들보다 더 질긴 허리띠로 자신의 몸을 질끈 동여매고 살아왔습니다. 그 희생이 있었기에 보릿고개를 옛말처럼 얘기하며 살게 된 것입니다.

그 시절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중년이 되어 한 가정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또 다른 질긴 허리띠를 두르고 살고 있습니다. 밥술이나 먹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족을 앞에 두고 자신은 늘 뒷전에 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시적 현란함보다는 토속적 은은함이 더 어울리는 삶이었습니다. 가난했지만 정이 넘쳤던 그 시절의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삼순이, 금순이, 봉순이, 모두 그리운 이름입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으응, 아무것도 아냐.”

아내가 말을 걸어 겨우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여기 흰머리 보이지? 뽑아줘.”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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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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