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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혜
“엄마! 사범님이 토요일 날 엄마 태권도 학원에 오시래요.”
“왜? 무슨 일 있어?”
“그날 격파 시범 한대요.”
“격파? 무슨 격파? 복희 벌써 격파 배우는 거야?”
“그럼요. 저 격파 잘 깨요.”
“그래. 그렇구나. 근데 복희야, 격파 깬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격파한다고 하는 거야. 격파가 바로 깬다는 소리거든.”

지난 토요일(27일). 치약 공장 아르바이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이었지만 그래도 자식일인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딸아이의 태권도 학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남편도 시간을 내어 아이와 셋이서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제 아빠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아빠를 따르는 딸아이이다 보니 아빠와 함께 나서는 길이 제 딴에는 꽤나 신이 났던지 잠시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제 아빠를 향해 재잘재잘 수다를 떨어 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지난 3월 초. 딸아이를 태권도학원에 보냈습니다. 주위에선 여자아이에게 왜 굳이 태권도를 가르치려 하냐고 했지만 또래들에 비해 좀 작은 키가 내심 마음에 걸렸던지라 태권도를 하게 되면 키가 좀 크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6개월째인 지금 아직은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눈으로 실감은 못하고 있지만 가끔 보는 시아버님은 눈에 띄게 키가 많이 컸다고 다소 유별났던 제 선택에 대해 기분 좋은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십니다.

딸아이의 격파시범을 보러 갔습니다

학원에 들어서니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까지 족히 5,60명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하얀 도복을 갖추어 입고 시범준비를 하느라 매우 분주했습니다. 준비를 마친 아이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앉았습니다.

그 모습들이 어찌나 대견스러워 보이던지 격파시범을 보기도 전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그 틈에 가지런히 주먹을 무릎에 얹고 앉아 있는 딸아이가 그날따라 유난히 예뻐 보였습니다.

본격적인 시범이 시작되기 전 부모님들께 대한 감사의 의미로 간단한 이벤트가 미리 시작되었습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아이들이 평소 나쁜 습관을 이번 기회에 기필코 고치고 말겠다는 각오를 부모님께 약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 앞에서 평소의 나쁜 습관을 꼭 고치겠노라 큰소리로 외치고 나쁜 습관을 적어 놓은 송판을 단번에 격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차례차례 나온 아이들은 부모님들 앞에서 큰 소리로 다짐하고 큰 기합소리와 함께 저마다의 나쁜 습관이 적힌 송판을 단번에 격파하여 부모님들을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엄마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한결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집에서는 지독히도 말 안 듣는 말썽꾸러기인데 세상에 어찌 저리 의젓하고 듬직한지 내 자식이지만 다시 보이네.”

그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았습니다. 아직 딸아이의 차례가 되지도 않았건만 다른 아이들 시범 보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하물며 당사자인 그 엄마들 감격이야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드디어 딸아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태권! 저는 평소에 텔레비전을 가까이서 보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이번에 이 격파로 그 나쁜 습관을 한방에 날려 버리겠습니다.”

‘야!’하는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아이의 그 작은 주먹 한방에 송판이 ‘쩍’하고 갈라졌습니다. ‘와’하는 환호성과 박수소리로 그 큰 체육관이 들썩거렸습니다. 딸아이에겐 유난히 박수와 환호성이 컸습니다.

굳이 이유를 짐작해 보자면 대다수가 남자애들인데 여자애가 섞여 있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을 테고 또 체육관이 떠나갈 듯한 크고 우렁찬 목소리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허나 그 이유가 무엇이건 그 순간 그 감격스러움은 뭐라 표현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식이 받는 환호와 박수. 이 세상에 그것만큼 황홀한 게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참으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딸아이의 자신만만한 용기였습니다. 평소 아이는 숫기가 없는 편입니다. 엄마 아빠 앞에선 오만가지 재롱을 다 떨어도 막상 남들 앞에 서면 왜 그리 주눅이 들어 버리는지.

어쩌다 친척들이 모이면 고만고만한 것들을 앞에 세워놓고 꼭 노래를 시킵니다. 그때마다 딸아이는 언제나 제 할머니 치맛자락 뒤로 숨기 바빴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무척 속이 상했습니다.

딸의 약속, "텔레비전을 가까이서 보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날 딸아이의 모습은 이제껏 제가 봐오던 숫기 없고 주눅 든 예전 그 모습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 부모님들 다 합쳐 족히 100여명이나 모인 자리에서 그리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자기의 나쁜 습관을 소리쳐 외치고 기필코 이번 기회에 고치겠노라 선언하는 딸아이의 그 모습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아니 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뿌듯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르르 하는 전율을 일으키는데 급기야는 눈물마저 흘리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딸아이는 태권도를 배움으로서 체력도 단련시키고 또 자신감까지도 얻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아이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로 했던 처음의 제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뿌듯한 만족감이 거센 파도가 되어 마구 밀려 왔습니다.

그런 뿌듯함은 비단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정식으로 격파시범이 시작되자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부모님들의 탄성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정식격파시범에서 딸아이는 두 번 연속 격파를 하였습니다. 발차기로 한 번. 주먹으로 한 번. 폼이야 아직 엉성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우렁찬 기합소리만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참 무던히도 울어 대더니 어쩌면 그 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난데없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여간 그날 제 딸아이는 이 엄마에게 정말 크나큰 감동을 안겨 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오히려 남편이 저보다 더 큰 감동을 선물 받은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챙겨보던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일 중요한 격파 장면 사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딸아이의 장한 모습에 넋이 나가 사진 찍는 것조차도 잊어 버렸다는 실토를 했을 때 저희 부부는 함께 배를 잡고 웃고 말았습니다.

남편이나 저나 똑같은 팔불출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자식을 사이에 두고 그 자식이 예뻐서 웃어도 웃어도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 것. 그게 바로 부모마음이라는 걸 그날 저희 부부는 절실히 느꼈습니다.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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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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