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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책자에도 나와있는데, 관광객은 우리뿐이었다.
여행 책자에도 나와있는데, 관광객은 우리뿐이었다. ⓒ 양중모
그래도 여행 책자에 나온 곳인지라, 여행객들로 북적거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게다가 들어오는 길에 푸르게 펼쳐 있던 가로수 길과 달리, 강서 초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식당 주인과 숙박업소 주인들의 호객행위 하는 소리만 들릴 뿐 OK목장의 결투가 떠오를 만큼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칼을 꺼냈으면 무라도 베랬다'고 무언가 음산한 분위기를 떨쳐버리며 강서초원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좀 무섭다. 그지?"

겁 많은 난, 결국 그녀에게 무섭다며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막에 간다는 그녈 여기까지 끌고 왔던 것을 나였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 이왕 왔으니 초원에서 말이나 한 번 타보자라고 말을 빌려주는 곳으로 가보았더니, 빌리는 값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우린 돈을 아껴가며 베이징 이곳저곳을 여행해야만 했기에 말을 탈 수 없었다.

결국 말 타는 것을 포기하고 걸어서 강서초원 입구로 들어가는 길이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몇 번을 둘러봐도 걸어서 들어갈 만한 곳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헤매고 있던 차에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 남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차로 강서초원까지 데려다 줄 테니, 00원을 달라고 했다. 말 타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기에 이에 동의했고, 여자친구와 난, 그 차를 타고 강서초원 안으로 들어갔다. 전날 비가 와서 땅이 질퍽하기는 했지만, 넓게 펼쳐진 초원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그런데, 끝내 그 질퍽한 땅이 문제였다.

"빠아앙! 빠아앙!"

우리를 태우고 열심히 달리던 차는 진흙탕에 빠지고 말았다. 그 남자는 우리보고 차에서 내리라더니, 한참동안 뭔가를 해도 잘 되지 않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난 여자친구와 강서초원을 배경으로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그러던 중 지프차 한 대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경치는 더할나위없이 좋았건만
경치는 더할나위없이 좋았건만 ⓒ 양중모
그러더니, 우리에게 타라는 신호를 보냈다. 원래 우리를 태우고 왔던 남자를 보니, 그 곳에 옮겨 타라고 손짓을 했다. 그 때만 해도 난 그저 차가 진흙탕에 빠져 딴 차를 부른 것 인줄 알았다. 그리고 그 지프차는 강서 초원 끝에 있는 호숫가에 도달하더니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호수를 보며 참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두 번째로 우리를 태우고 왔던 남자가 내게 다가오더니 보트를 타라고 하는 것이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거절했지만, 그는 계속 권유를 했다. 다소 난처해진 난 기지를 발휘해 물을 무서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남자 이번에는 말을 타라는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난 이 남자가 우리가 놀러왔으니, 놀만한 것들을 권유하는 줄만 알았다. 이번에도 말을 타고 싶지 않고, 그저 강서 초원만 구경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 남자는 난데없이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차를 타고 왔으니,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그가 제시한 돈의 액수는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제야 머리가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부러 진흙탕에 차를 빠뜨리고, 다른 차를 부르고, 보트를 타거나, 말을 타거나, 그도 아니면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이었구나. 거기까지 생각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서야 멱살을 잡고 싸움이라도 벌이고 싶었지만, 난 그냥 그 남자가 달라는 대로 돈을 주었다. 잠깐, 차를 탄 것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비싸지만 목숨 값 치고는 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곳에 외국인이라고는 여자친구와 나 둘 뿐 이었으며, 중국인들도 장사를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더군다나 돈을 요구하는 남자 뒤로는 노름을 하는 듯한 건장한 체격의 5명이 있었다. 그들은 내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한국 유학생이 중국에서 납치당해 팔, 다리 다 잘리고, 혀도 잘려 서커스단 오뚝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르 물자 그냥 돈을 주고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 남자에게 돈을 쥐어주고 재빨리 돌아서 강서 초원을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 뒤통수 쪽에서 고성이 들렸다.

"아니, 돈을 왜 줘! 우리가 뭐 타기를 했어? 돌려달라고 그래!"

아, 이런. 한국에서도 자칭 ‘클레임 걸’이라는 여자친구가 상황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것을 참지 못하고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돈을 요구하던 남자는 여자친구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정황과 목소리 톤으로 대강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내 등에선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야, 너 저 뒤에 남자들 안보여? 오빠가 두 명이면 죽을힘을 다해서라도 싸울 수 있겠지만, 다섯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냐."

나의 부탁이 너무 간곡했나보다. 어쩐 일인지 그녀가 순순히 응해줬다. 부당한 일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건만, 역시나 내 싸움 실력이 퍽이나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저들을 막고 영아라도 빨리 도망가라 그래서 신고하라 그래야지.'

열심히 돌발 상황에 대한 작전을 짜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고 있었다. 처음 우리를 태웠던 남자였다. 그는 내게 아까 지프차를 몰던 남자에게 주었던 돈을 돌려주더니, 자신의 차를 타고 나가자고 했다.

혹시, 무슨 음모가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만, 그 곳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같은 패거리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신이 본래 받아야 할 돈이 엉뚱한 사람에게 간 것이 영 못 마땅했던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초원을 빠져나온 후 나나 내 여자친구나 발걸음이 빨라졌다. 말은 안했지만, 둘 다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나보다. 초원 앞에 있는 마을까지 빠져나오자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 때부터 또 다시 고난이 시작되었다. 처음 올 때 버스 아저씨가 매표소에서 강서 초원 마을까지 거리가 좀 되니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그 앞까지 와서 내렸으나, 이제는 버스가 없으니, 다시 버스가 서는 매표소까지 걸어가야 했던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보며 한숨이 푹푹 나왔지만, 방금 전 가슴 서늘했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행복한 고통이었다. 게다가 오는 버스 안에서도 봤던 그 예쁜 광경이 걸으면서 보니, 더 예뻤다.

초원내에서 겪었던 불쾌한 일들이 싹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매표소에 도착해 정말 불행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신들이 우리의 여행을 질투한 것일까. 또 다시 고난이 시작되었다. 햇빛을 피할 곳도 없는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40분이 지나도 버스가 안 오는 것이었다.

난 막차가 이미 떠났다고 판단하고 여자친구를 데리고 과감히 걸어 도심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여자친구는 반신반의했으나, 중국은 내가 더 잘 안다는 말에 끌려 같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갑작스레 우리가 타야 하는 버스가 반대편에서 오고 있었다. 열심히 손을 흔들어 그 버스를 타고, 정말 드디어 행복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으나, 그것도 잠시 난 여자친구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그 버스가 매표소 앞은 물론이고 강서 초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 입구까지 들어가서 정차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곳이 버스 정류장이라던, 여자친구를 억지로 끌고 나와 군에서나 할 법한 행군을 시킨 셈이었다. 담력 테스트에, 체력 훈련에, 인내심 테스트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날은 어쩐 일인지 여자친구가 잘 참아주었다.

애초에 여자친구가 가자던 몽고나 사막에 가기 싫어 잔꾀를 부리다가 결국 더 큰일을 당한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여우 피해가려다 호랑이 만난 셈이라고 하던가. 그렇긴 해도, 덕분에 난 소중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여러 경로를 통해 꼭 자세히 알아보고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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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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