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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찍은 곳이 혹 이곳 곰배령이 아닐까. 고갯마루 초원 위에 온갖 들꽃들이 가득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찍은 곳이 혹 이곳 곰배령이 아닐까. 고갯마루 초원 위에 온갖 들꽃들이 가득하다. ⓒ 이승열

저 너머에 한계령도 있고, 설악산 대청봉도 있다.
저 너머에 한계령도 있고, 설악산 대청봉도 있다. ⓒ 이승열

고무레를 닮아 곰배령이다. 곰배령 바람이 아이들을 날리고 있다.
고무레를 닮아 곰배령이다. 곰배령 바람이 아이들을 날리고 있다. ⓒ 이승열
바람이 불고 있다. 곰배령에 바람이 불고 있다. 어린 시절 날 날려버릴 듯 세차게 불었던 바람이 1100m 고갯마루 초원에 불고 있다. 초원 전체를 덮은 지천으로 깔린 들꽃들이 바람에 온 몸을 맡긴 채 기분 좋게 흔들리고 있다.

바람에 날릴까 조바심 내고 몸을 가누지 못해 불안해 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몸집이 작은 아이들은 온 몸이 휘청거리고 있다. 두 팔을 넓게 벌리고 바람을 맞으며 화음에 맞춰 노래라도 부른다면 알프스 초원 위에서 펼쳐졌던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이다.

점봉산 남쪽 능선에 고갯마루 너른 초원을 이루고 있는 곰배령은 인제군 귀둔리 곰배골 마을에서 진동리 설피밭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불현듯 펼쳐지는 초원 위에 온갖 들꽃들이 피어 있다. 고무레, 또는 곰배팔이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 입으로 전해지다 곤뱃령, 곤뱃골, 곰배령이란 글자로 옮겨졌다.

점봉산 곰배령은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 국내에서 생태보존이 가장 뛰어난 곳으로 희귀한 식물들이 많아 1982년 설악산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에 포함될 당시 함께 지정되었다. 산림청에서는 진동리와 곰배령 인근의 숲을 천연림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들꽃을 닮은 곰배령 가는 길 이정표. 콘테이너 박스 뒤에 가려져 한참을 찾았다.
들꽃을 닮은 곰배령 가는 길 이정표. 콘테이너 박스 뒤에 가려져 한참을 찾았다. ⓒ 이승열

곰배령 입구의 메밀밭. 허생원 노새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곰배령 입구의 메밀밭. 허생원 노새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 이승열
열목어가 서식한다는 진동계곡 끝 삼거리, 곰배령 입구임을 알리는 예쁜 팻말은 곰배령 초원의 들꽃을 닮았다. 콘테이너 박스 뒤에 가려진 팻말을 찾아 인사하고 비포장도로 접어드니 보름달 뜬 밤 허생원이 봤던 메밀꽃이 왕소금을 뿌려 놓은 듯 펼쳐져 있다.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오르면 단목령, 왼쪽 작은 오솔길로 접어들면 곰배령 가는 길이다. 고개를 빳빳이 든 세모꼴의 머리를 한 어린(?) 독사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속된 말로 ‘코딱지 만한 놈’이 혀를 날름거리며 빳빳이 노려보고 있으니 돌아가는 수밖에...

구불구불 이야기하듯 펼쳐진 숲 길, 언뜻 언뜻 하늘이 보이는 울창한 숲,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작은 폭포들, 잡념이 서릴 틈이 없이 온통 숲에, 자연에 오감을 맡긴 채 천천히 걷다 보면 숲 주위가 온통 들꽃들의 천국이다.

어두운 숲을 밝히려는 듯 총총히 작은 등을 매단 모싯대, 점점이 작은 꽃망울이 모여 비로소 숲을 환하게 밝히는 어수리,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보랏빛 금강초롱,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숲 속의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강선 마을. 화전민들이 살던 강선 마을 민가 빈터에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까지 2km,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작은 길이다.

양치식물 관중 군락 때문에 마치 중생대 쥬라기 공룡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온 듯하다.
양치식물 관중 군락 때문에 마치 중생대 쥬라기 공룡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온 듯하다. ⓒ 이승열

구불구불한 숲 속 오솔길, 시원스레 쏟아내는 작은 폭포, 징검다리 숲 길을 두시간쯤 걸으면 세상은 온통 녹색뿐이다.
구불구불한 숲 속 오솔길, 시원스레 쏟아내는 작은 폭포, 징검다리 숲 길을 두시간쯤 걸으면 세상은 온통 녹색뿐이다. ⓒ 이승열

금방이라도 거대한 초식공룡이 튀어나올것 같은 원시림 속 곰배령 가는 길
금방이라도 거대한 초식공룡이 튀어나올것 같은 원시림 속 곰배령 가는 길 ⓒ 이승열
이곳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중생대 원시림으로 가는 여행이다. 숲 전체를 양치식물인 관중이 덮고 있다. 금방이라도 덩치 큰 초식공룡들이 관중 숲 사이를 뛰어다닐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숲은 깊었다.

주홍의 동자꽃은 꽃을 떨어뜨리고 씨앗을 맺고 있었다. 작년 9월 첫 주 지천으로 피었던 보랏빛 투구꽃은 꽃망울을 맺은 채 가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올망졸망 새끼들을 데리고 오리 가족이 소풍을 나온 듯 흰진범이 한창이다.

원시림 숲속을 들어선지 어느덧 세 시간. 갑자기 하늘이 뻥 뚫리며 드넓은 초원이 나타난다. 장승 한 쌍이 고갯마루에 서서 백두대간으로 연결되는 점봉산 가는 길을 말없이 안내할 뿐이다. 설악의 능선 같은 웅장함도, 겹겹이 포개진 산 그림자의 신비함도 이곳 곰배령에는 없다. 드넓은 초원이 고개 마루에 펼쳐지며 수많은 들꽃들의 세상이 펼쳐질 뿐이다. 귀둔리 곰배골 사람들이 지게에 소금 가마니를 지고 진동리 설피밭으로 가다 지게 자루를 받쳐 놓고 잠시 숨을 고르며 엉덩이를 붙였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온통 분홍빛 이질풀이 바람의 애무를 만끽하고 있다. 불과 며칠 전 한여름의 폭염이 꿈인듯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분홍색 이질풀이 지나간 자리를 보랏빛 용담과 쑥부쟁이가 채우리라. 잿빛 하늘에서 내려온 구름이 바람에 흩날리며 비를 재촉하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곰배령과 들꽃들을 가슴에 담으려 하나 바람이,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검은 구름이, 구름이 몰고 온 세찬 바람이 곰배령에서 사람들을 내친다. 여행은 늘 아쉬움을 남기고, 그래서 다시 여행을 꿈꾸게 한다.

아쉬움이 자꾸 발길을 늦추게 한다. 곰배령 초입의 기린초등학교 진동분교. 부부교사 두 분 선생님에 전교생이 통틀어서 여섯뿐이다. 여섯 명의 전교생과 중학생 두 명이 잣나무 울타리 안 운동장 미끄럼틀 옆에서 사물놀이 연습이 한창이다.

전교생이 모여 사물놀이 장단에 몸을 맡기고 있다.
전교생이 모여 사물놀이 장단에 몸을 맡기고 있다. ⓒ 이승열

연습이 지루하면 편을 갈라 공을 차면 된다. 6명의 전교생, 2명의 중학생, 선생님, 아저씨 다 합쳐도 한팀이 안된다.
연습이 지루하면 편을 갈라 공을 차면 된다. 6명의 전교생, 2명의 중학생, 선생님, 아저씨 다 합쳐도 한팀이 안된다. ⓒ 이승열
사물놀이 장단에 몸을 맡긴 채 열심히 두드려 보지만 선생님은 자꾸 장단이 틀렸다고 지적이시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맨 땅에 앉아 연습하려면 춥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운동장을 한바퀴 신나게 달려 체온을 올린 뒤 다시 연습에 몰두한다.

인제군 초, 중, 고등학교를 돌며 사물놀이 장단을 지도하시는 분은 최남진 선생님이시다. 오후 1시쯤 시작하면 밤 11시가 되서야 끝나는 힘든 강행군을 하고 있단다. 사물놀이 장단에 흥을 돋우던 아이들이 두 편으로 갈라 공을 차기 시작한다. 선생님도 학교 아저씨도 팀을 갈라 열심히 작전을 짜고 있다. 만사를 잊고,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잠시 내려놓고 함께 뛰고 싶다. 하지만 벌써 어둠은 산허리까지 내려왔고, 무게를 이기지 못한 먹구름이 한 방울씩 비를 뿌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국유림 기린경영팀에 신고를 해 입산 허가를 받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곰배령 탐방의 길목은 기린면 진동리 설피밭 삼거리. 이곳에 주차하고 곰배령까지는 왕복 3시간30분쯤 걸린다. 온갖 들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가는데는 3시간이 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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