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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우선 최 의원은 "국정원의 5일 발표문은 '김대중 정부에서도 극히 제한적인 불법감청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 핵심 내용은 발표문 6쪽의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와 '이동 휴대폰 감청장비'에 관한 것인데 이것을 통신-감청 전문가들은 각각 'R2'와 '카스'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카스' 장비의 성능과 제원 그리고 '사용후기'는 지난 5일의 국정원 발표에서 상세하게 드러났지만 'R2' 장비의 이름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일 국정원은 이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와 관련, 이렇게 밝혔다.

"동 장비는 휴대폰이 유선구간에서 감청이 용이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통신회사의 유선 중계구간 회선에 감청장비를 연결하는 방식으로서 당초 위성 이동통신이나 공, 항만 중계통신망을 대상으로 국가안보 관련 통신첩보를 수집할 목적으로 총 6세트가 제작되어 98년 5월부터 사용하기 시작. 그러나 원래의 합법적 용도와 달리 디지털(CDMA 방식) 휴대폰에 대한 불법감청에도 일부 활용하다가 2002년 3월 전량 폐기."

국정원은 CDMA 휴대폰이 보급되기 전에는, 유선에 선만 꽂으면 다 들었다. 물론 합법감청의 경우이다. 예를 들어 788-0001번이 감청대상이라면 이 번호와 교신하는 모든 유선은 감청이 가능했다. 그런데 CDMA 휴대폰의 발달로 '유선―유선' 통화감청은 무의미해졌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788-0001에서 무선으로 걸거나(유선―무선), 788-0001번으로 걸려오는 무선(무선―유선)을 감청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 'R2'였다. 국정원은 총 6세트(1세트에 20회선)를 개발해 당시 서울지역 수만 회선 중에서 최대 120회선에 접속해 감청업무에 사용했다.

유선관문/지역유선교환기에서 120회선 끌어와 국정원 R2장비(6세트)에 연결

통신비밀보호법 상의 감청 기준

▲지방법원 감청영장 발부(5, 6조) 형법상 일반범죄 수사 등에 필요한 경우(통신 종류, 대상, 범위, 사유 등을 서면 청구)
▲고법 수석부장판사의 허가(7조 1항 1호) 국가안전보장에 상당한 위험이 있는 내국인
▲대통령 서면 승인(7조 1항 2호) 국가안전보장에 상당한 위험이 있는 적대국가, 반국가활동혐의가 있는 외국기관·단체·외국인, 대한민국 통치권 미치지 않는 한반도 내 집단이나 외국에 소재하는 그 산하단체 구성원(북한, 재일총련 등)
▲법원의 긴급감청 사후허가(제8조)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음모, 사망이나 심각한 상해 위험이 있는 범되 또는 조직범죄(36시간 이내)
국정원이 법원의 감청영장이나 고법 수석부장의 허가를 받거나 대통령의 안보감청 승인서를 받아 788-0001번 들으면 합법이다. 그런데 여기서 감안해야 할 점은 법원 감청영장은 대상과 전화번호 그리고 목적이 기재되어야 하는데, 대통령 승인을 받을 때는 전화번호를 기재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받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가안보상의 목적으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화를 들으려면 대통령 승인서가 있어야 하는데 김정일 전화번호를 어떻게 아느냐는 점이다. 결국 김정일, 또는 베이징에 있는 00사무소 등으로 인물이나 단체로 기재하지 전화번호를 기재할 수는 없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안보감청 승인서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788-0001번으로 감청영장 받으면 거기에 걸려온 전화는 다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현장요원들의 양심과 도덕에 맡겨야지 그것을 들었다고 불법감청이라고 몰아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식은 '유·무선 통신망 구성도'에서 보듯이, C사의 유선중계구간 회선에 선을 연결해 국정원에 끌어가는 것이다. 즉, C사의 유선관문/지역유선교환기에서 선(120회선)을 끌어와 국정원의 R2장비(6세트)에 연결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근거로 언론이 다들 '김대중 정부에서도 4년간 불법 도감청'이라고 대서특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 발표에는 이를 입증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물증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법감청을 했다는 '인적 증거'조차 없다. 다만, 최소한 감청을 지시한 지시자와 지시를 받은 사람 사이에 지시를 주고받았다는 '인적 증거'라도 있어야 하는데 국정원측은 "다들 안했다고 부인하기 때문에 인적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남은 근거는 감청정보를 필사하는 '메모보좌관'의 존재 같은 '정황'뿐인데 그것조차 김대중 정부 출범 1년 뒤에 이뤄진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림팀 폐지와 함께 폐지되었다.

카스는 체어맨 이상의 대형 승용차 트렁크에 실어야 하는 사실상 '채증장비'

유무선 통신망 구성도
유무선 통신망 구성도 ⓒ 정통부
국정원이 사용했던 또 다른 감청장비는 '카스'(CASS)라는 이동 휴대폰 감청장비이다.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카스 장비는 이렇게 설명돼 있다.

"동 장비는 45kg 정도 무게로 차량에 탑재하여 휴대폰 사용자의 200m 내까지 접근하여야만 감청이 가능한 것으로서, 99년 12월 20세트를 개발해, 2000년 9월까지 약 9개월간 사용한 후 기술적인 한계로 사용을 중단. 이 장비는 특정 대상자를 근거리에서 추적해야만 감청할 수 있는데다, 휴대폰 사용자가 기지국 섹터를 옮겨가면 감청이 중단되는 등의 단점이 있어 효용성이 매우 떨어졌으며 2000년 9월부터 휴대폰의 기술이 업그레이드된 CDMA-2000 방식을 채택해 감에 따라 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감청장비로서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2002년 3월 유선 중계통신망 감청장비와 함께 전량 폐기."

그런데 이 장비는 우선 휴대폰 사용자의 200m 내까지 접근하여야만 감청이 가능하다. 그리고 카스만 무게가 45kg이고 거기에다가 컴퓨터와 암호를 해독해서 음성으로 바꾸는 장비를 포함하면 최소한 체어맨 이상의 대형 승용차의 트렁크 용량이 되어야만 싣고 다닐 수 있다.

또 전원이 연결되어야 하기에 늘 자동차 시동을 켜 놓아야 하는데 전원 과부하로 생기는 열 때문에 수시로 켰다 끊었다 해야 한다. 게다가 200미터 안에서 앞에 장애물 있으면 방해를 받고 심지어 달리는 차 안에서는 200미터 유지하며 쫓아가도 잘 안되는 원시적 초보적 감청장비였다. 즉, '감청장비'라기보다는 '채증장비'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국정원 내부에 설치된 R2와 달리 카스는 이동식이기 때문에 국정원도 이 장비를 엄격히 관리했다. 분실 위험성과 사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비해 특수장비 관리규정을 만들어 통제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8국의 기술연구단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수사, 방첩국 등 사용 부서에서 대출신청서를 내고 가져갔다.

이번에 검찰이 국정원 압수수색 과정에서 압수한 40-50장의 사용 신청서도 바로 사용부서에서 과학보안국에 낸 카스 대출 사용신청서이다.

"국제범죄 추적 과정의 절차미비와 정치적 목적의 불법감청은 구별되어야"

이와 관련 최 의원은 "국정원이 대통령의 안보감청 승인서를 받았으면 합법이지만 수사권이 없는 국정원 6국이 국제마약 밀수사범, 조직범죄, 위조지폐, 산업스파이 등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영장없이 '카스'를 대출받아 사용했으면 불법이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확인한 바로는 40-50건 가운에 4-5건이 영장 없이 산업스파이나 밀수사범을 추적하는 데 쓰였다"면서 "그러나 이것은 일부 직원들이 국가를 위해 국제범죄 혐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절차상의 미비라는 점에서 정치공작을 위한 불법감청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검찰이 압수한 40-50건도 대부분은 절차를 지켰고 절차를 지키지 않은 4-5건을 제외한 것은 전부 대통령 안보감청 승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제하고 "물론 엄격히 따진다면 영장기재하지 않았으면 불법이고, 조직범죄는 수사권이 없으니 불법일 수 있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선량한 일반국민을 상대로 한 불법감청이 아니라 범죄 혐의자에 대한 미행·채증의 수단으로 카스를 가지고 다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최 의원에 따르면 산업스파이와 밀수사범을 추적하다가 저지른 4-5건의 절차상의 미비를 가지고 감청영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정부 시절에 불법감청이 있었다고 발표한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것이다.

최 의원은 "경찰이 강도를 잡으려고 자동차를 몰고 추적하다가 인도에 올라가면 그것도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지탄받아야 하냐"고 반문하면서 "그런데 국정원 발표는 그런 국민의 정부에게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벌금을 물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부는 전혀 질서를 안지키는 정부'로 몰아간 것이다"고 지적했다.

결국 현재의 국정원 수뇌부는 이런 절차상의 미비를 저지른 직원들에게 '앞으로는 이런 짓도 하지 말라'고 경고하면 될 것을 '국민의 정부에서도 불법 도감청이 있다'고 '오버'하는 바람에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서 "정권 차원에서 책임질 불법행위는 없었다"고 해명할 정도로 사태를 악화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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